장례식과 가족
2024.12.10 화
오후 3시 45분, 할머니 발인이었다. 작년 8월, 1953년생이신 시아버님을 보내드리며, 올해 12월 1935년생 친할머니를 보내드리며, 장례식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되었다.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한 가정이 살아온 삶이 보인다. 그 가족들이 눈앞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드러난다. 더 나아가는 개인이 삶을 추구하는 방향도 알아차리게 된다.
아버지는 사남 일녀 중 둘째였다. 실질적 장남 역할을 하며 살아오셨다. 집안의 큰일이 생기자 아버지는 형제를 불려서 의논을 하셨다. 막내삼촌이 상조가입해 둔 것을 쓰셨고, 많은 일들이 원활하게 지나갔다.
리본상조에서 인상 좋은 장례지도사분들이 나오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알뜰하게 챙겨봐 주었다. 아버지는 말씀을 잘하시는 편이다. 막내삼촌은 유머를 담당하고 있다. 두 분은 KT에서 근무하셨었다. 큰 조직에 30년 이상 근무하셨던 분들은 사회에 적응을 잘하셔서 인지, 천성이 유하신 분들이라서 그런지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신다.
예전에는 결혼하면 끝까지 사는 것이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양쪽의 노력 또는 한쪽의 큰 희생이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 집에서 살 부대끼며 오랜 세월을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12년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사셨다. 60-70여 년을 한 사람과 같이 산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누군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영역이기도 하다. 결혼은 한 사람이 손을 놓으면 연결될 수 없기에.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멀리는 여수에서부터 김해, 부산, 양산, 포항 등. 오랜만에 경주 최 씨들이 모여서 어떻게 사는지 대화를 나누었다. 둘째 삼촌은 배 타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다. 항해사이다. 마침 육지에 내렸을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주말에 가족들이 찾아뵙고 나서였다.
장례식장은 슬프지만, 여러 가지 감정을 들게 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 의지되는 따뜻한 무언가,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연결감 등이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눈물을 흘렸고, 특히 손녀 중 할머니를 엄마처럼 지냈던 사촌여동생은 편지를 적어와서 낭독하기도 했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할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대목에서 목이 메었다. 한참 뒤 이동하면서 동생에게 듣게 되었다. 어젯밤 나의 친정엄마와 동생이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친정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린 적 이 있는데 그 대목을 인용했다고 했다.
가족은 연결되어 있구나.. 느꼈다.
그간 가족에게 너무 무심하게 살았다.
내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되었다.
당분간은 가족들과 연결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할머니는, 나에게 가족과 연결감을 선물하고 가셨다.
*둘째 동생과 팔짱 끼고 할머니 운구행렬을 뒤따라갔는데, 그 팔이 참 따뜻했다. 사남매를 키워준 엄마한테
새삼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