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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함과 친밀함 사이

by 스타티스

2025.1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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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 영화 배경은 1953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웰즐리(Wellesley) 여자대학이다. 그 시대는 미국 사회가 전쟁 후의 안정기였고, ‘여성의 삶 = 결혼과 가정’이라는 보수적인 가치관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들이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대부분은 ‘더 좋은 남편을 만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여겨졌고, 전문직 여성이나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런 사회 속에서 캘리포니아 출신의 진보적인 교수 캐서린 왓슨이 등장한다. “여성도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라고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사고의 자유를 일깨우는 게 바로 영화의 핵심이다.

즉, 1950년대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개인의 자율성 사이의 충돌,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여성이 바로 캐서린 왓슨이다.


크리스마스 날 연인에게 청혼을 받지만 거절한다. 학생들에게 결혼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라고 전한다. 그녀는 진리, 독립, 진정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바로 그 ‘명확함’ 때문에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어려워진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동료인자 연인이었던 사람이 자신을 속였다는 걸 알게 된다. 과거 있었던 사실을 숨기려 했던 것은 아니고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진실을 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당신은 너무 완벽해서 솔직하기가 어려워요.”


그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 존경심을 느끼기도 했겠지만, 동시에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모순이나 타협이 그녀 앞에서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예일대 법대 원서까지 가져다주었던 똑똑한 제자는 '결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선생님께 전하지 못한다. 아마 올곧은 그녀 앞에서 무의식적으론 느꼈던 무언가가가 작동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그녀 앞에서 부족함을 드러내기가 두려워한다. 캐서린이 ‘완벽해서’라기보다는, 그녀의 분명한 신념과 정직함이 거울처럼 작용해 다른 사람들의 불안과 부정직함을 비추기 때문이었다.


자기 확신이 분명한 사람은 동시에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힘을 둘 다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한편으론 영감을 받고, 또 한편으론 위축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너무 완벽해서 솔직하기 어렵다”는 말은 결국 존경과 두려움, 이상화와 친밀함 사이의 긴장을 표현한 문장이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에게 솔직하기 어렵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만 진짜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안전하다'라고 느낄 수 있게 했었나?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아니다'였다. 나의 올곧음이 누군가에게 거리가 되진 않았을까.


최근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중이다. 연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진심이려 했지만, 그 애씀이 한편으로 부질없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위축되는 시기였다. 이 모습을 알아본 수퍼바이저 선생님께서 카톡을 보내오셨다.


"사람들과 같이 지내려면 상처받을 각오를 해야 하죠.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군요.

균형이 가끔 깨어져도 그러려니 하세요.

우리 모두 둥근 공 위에서 안 떨어지려고 이리저리 균형 잡는 동작을 하며 살고 있잖아요."


70대 중반까지 인생을 살아오며,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오셨을 교수님의 톡을 읽으며

나에게 '그려려니..'라는 말을 되새기며 들려주고 있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완벽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러려니,, '속에 허술함을 선택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배워야 할 용기는,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의 진심’을 나누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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