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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May 03. 2024

마감시간에 오역 하나가 발견되었다

처음 출판사에 출근하던 날.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여기에 내가 있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앞에는 ’환영합니다‘라는 글귀가 있었지만, 나를 환영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각자 컴퓨터 앞에서 자신들이 할 일들을 하고 있는 선배들, 누구 하나 다가와 말을 걸어 주지 않았다. 심지어 컴퓨터는 암호가 걸려 있었고, 뒷자리에 앉은 선배에게 비밀번호를 물어보았지만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편집부 전체가 내향형이라고.


그날만 사무실이 조용했던 건 아니었다. 보통 편집자의 업무는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 원고를 보는 일인 듯했다. 하지만 그날 특별히 사무실이 더 조용했던 것은, 다음 날 마감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판사에서 가장 신경이 예민할 때는 아마도 마감시간이 아닐까. 책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순간이 바로 마감시간이기 때문이다. 마감시간이 지나가면, 그렇게 책의 제목과 내용들이 마감되면, 그 이후에 오타가 있거나 고치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고칠 수 없다. 그렇게 마감을 하고 나면 약 천 권 이상의 책이 인쇄되고 제작된다. 문제는 하필 내가 출근하는 그날이 마감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다들 예민해하는 듯했다.


하루는 어느 번역서 신간 마감을 앞두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번역에 조금 어색한 부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오역이었다. 단어 하나가 ’오역‘이라는 사실을 마감시간에 알게 되었고, 그 책은 약 1년의 시간 뒤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 한 단어 때문에. 단어 하나가 잘못 번역되었다는 것을 마감시간에 발견했다면, 그 단어만 수정해서 출간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담당 편집자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오역이 하나 있다면, 아마도 어딘가에 다른 문제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 문제 하나가 발견되면, 다른 곳에 문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있을 확률이 높다. 마치 책을 읽다 소위 ’책벌레‘라고 불리는 벌레 한 마리가 지나간다면, 어딘가에 책벌레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눈에 보이는 벌레 한 마리를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듯, 문제 하나를 발견해 해결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는 ’대청소‘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저기 쓸고 닦고 치우고 버려야 하는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요즘에는 책 한 권을 편집하다 문제 하나가 발견되면, 책 전체에 그런 문제가 없는지를 살핀다. 어쩌면 시야가 조금 넓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감시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감시간에 문제가 발견되지 않도록 책의 모양새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책은 마치 인생과 닮아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 듯하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눈앞에 보이는 문제 하나를 해결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문제들을 살펴야 한다. 아니 어쩌면 눈앞에 보이는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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