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쎄 May 30. 2024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일

뒤에 앉은 편집부 선배의 말이 들려온다.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너. 노래가사인 듯한 이 문장은 마감하고 있는 책을 바라보며 한숨 쉬듯 나온 말이다. 외주 작업자에게 책을 맡겼지만, 며칠 동안 고생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하는 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외주 작업자는 책 한 권을 맡아 오로지 책만 작업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부에 있는 출판사 직원은 대표와 끝까지 책을 두고 씨름해야 하고, 결국 마무리는 내부에서 그 책을 관리하는 편집자가 해야 한다. 이러니 그 책을 마무리하고 있는 선배는 자신이 만드는 책인 것 같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만드는 책은 아니고, 반대로 자신이 만들지 않는 것 같은데 자신이 만들고 있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회사에서 회사원들이 난감할 때는 이렇듯 애매한 일들을 맡게 되었을 때다. 내가 하는 일인데, 마치 내가 하는 일이 아닌 것 같은 그런 일들 말이다. 심지어 어떤 일은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오랜 시간 매달려 있어야 하는 일도 있다. 열심을 다하지만 정작 성과는 나지 않는 그런 일들. 노력이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 일, 성과로 평가받지 못하는 그런 일.


최근 동아일보에 ‘문학동네-창비 울고 민음사 웃었다’ 기사를 보았다. 문학동네와 창비는 실패했고, 민음사는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성공한 출판사는 낮은 인세와 새로운 저자들을 통해 매출을 높였고, 실패한 출판사는 높은 인세와 유명한 저자들을 중심으로 기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평가였다. 나는 그 기사를 보고 ‘정말 그러한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실패한 출판사든 성공한 출판사든, 아무래도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들이 더 있지 않을까 싶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는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고가 많이 담겨 있다. 다만 그 성과를 주도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주변에 여러 사람들의 도움 없이 단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회사에는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옆에서 힘내라고 응원하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지나가는 말로 영감을 주는 동료도 있고, 일이 되게끔 상황을 꾸리는 사람도 있다. 이외에도 기타 등등의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이유만으로 성과를 섣부르게 평가하는 건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몰라주는 일이 되기도 하고, 또 서로 도와주지 않는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


오늘도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가끔은 나도 그런 일들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때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현타가 올 때도 있지만, 그래도 묵묵히 함께하는 사람들과 어깨동무하며 걸어가는 것 정도에 의미를 찾곤 한다. 회사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물론 어느 정도 회사가 안정적인 곳에 한해) 성과를 내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