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감에 속아 존재감을 잃어버리다
한 해를 시작하며 다짐했던 일들을 보고 있으면,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번 년도에는 논문을 쓰겠다고, 외국어를 공부하겠다고,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써보겠다고, 기타 등등의 것들을 해보겠다고 줄줄이 써 놓은 걸 보며, 6월의 나는 1월의 나를 탓하기 시작한다.
1월의 나뿐 아니라 5월의 나, 4월의 나, 과거의 나는 도대체 무얼 했니. 5월에 쓴 글을 보니 고작 1개의 글이 전부다. 5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쓰여 있는 글을 보니 러닝머신을 뛰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전부다. 체력을 기르고자 아침에 일어나 5분이라도 뛰자고 결심했단다.
약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일어나 러닝머신을 뛰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침뿐 아니라 하루 일과가 마치면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러닝머신을 뛰러 간다. 오늘 아침에도 눈이 떠지자마자 러닝머신으로 뛰어가 한 시간을 꽉 채워 걷고 뛰고 돌아와, 지금 이렇게 스스로 뿌듯해하며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요즘 글이 잘 안 써진다. 쓰고 싶은 말도 없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내용들도 없다. 어쩌면 러닝머신을 뛰면서 모든 생각들을 정리하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뛰다 보면 어느새 생각은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다.
오늘은 왜인지 몇 년 전, 약 4년 동안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모든 걸 다 바쳤다고 할 수 있었던 직장이었다. 근무시간도 없었다. 매번 일을 생각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느 때든 연락하며 지냈다.
문제는 직장을 그만둔 이후였다. 잠시 쉬고 싶은 마음에 일을 그만두었지만, 정작 쉬는 방법을 모르는 나였다. 성취감을 느낄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곳은 피시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피시방에 가서 도파민을 충전하고, 게임을 하는 데서 성취감을 찾아야만 했다. 아침저녁으로 피시방에 출근했던 것이다.
오늘은 러닝머신을 뛰는데, 왜인지 그날이 떠올랐다. 미친 듯이 성취감을 느끼고 싶던 그날이.
4년 동안 나는 내 존재를 일에서 느꼈다. 어쩌면 성취감과 존재감을 착각하며 지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을 그만두고 나는 내 존재감을 다시 물을 수 있었다. 매일 울리던,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괴롭히던 휴대전화는 조용했고, 사람들은 나를 찾지 않았고, 나는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졌고, 그렇게 나는 존재감을 잃어가는 듯했다.
그 이후로 나는 존재감과 성취감을 떨어뜨려 놓으려 부단히 노력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회사, 일은 일, 그리고 나는 나. 나라는 사람과 일을 분리시켰다.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나라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다. 성취감에 속아 내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요즘에는 걷고 뛰는 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