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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탓 Mar 20. 2018

날씨가 데려오는 것들

날씨는 기억을 데려온다.

인생의 대부분은 날씨라는 무적물에 달려있다.

나는 현재의 내가 아닌 나를

하루에도 몇번이고 떠올린다.

어느날은 과거의 나를, 또 어느 날은 미래의 나를.

그리고 그 어느날엔가의 나는

항상 그 어떤 날씨 속에 잠겨있다.


비가 온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적적한 폐 안으로 축축한 비냄새가 훅 들어왔다.

우산이 없어 멍하니 빗속을 헤아린다.

그때의 내가 너와 함께 걷고 있다.

익숙하지만 전혀 익숙하지 않은.

너와 내가 마주하며 웃는 장면들이 낯설다.


“비 냄새 맡아봐. 깊숙이 숨을 쉬어야 해.”

“좋아, 너와 함께여서.”

너와 나만 느낄 수 있는,

너와 나에게만 허락된 분위기와 그때의 모든 것들.


행복함에 소름이 끼쳤던 기억.

잊고있던 갑작스러운 기억으로 한기가 돈다.

비는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가둬두었던 모든 추억이 비와 함께 후두둑

곤두박질친다.


그리움에 목이멘다.

세상의 모든 아픈 단어들이 가슴에 와 박혔다.

그런 널 볼 수 없게 만든 내가

너무

미웠다.


고막에 비가 찬다.

울먹이던 목소리가 빗물에 고여있다.  

밤을 새워 니가 왔다가, 간다.

비가 행복이었던 기억들이 하나 둘 지나간다.


잘지낸다는 너의 소식을 떠올렸다.

“잘됐네.” 대답할 밖에.


비가 오면 가끔은 너도

너와 함께 걷던 내가 보일까.


이 비에, 냄새에, 소리에,

너와 함께 전율하던 그때의 내가 묻어나길

나 바라도 될까.


이렇게 또 끝까지 이기적이게

그래도 될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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