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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탓 Sep 12. 2018

모든 걱정은 순간이고

그걸 알아야 행복해진다

일주일 전 다리를 다쳤다.

워낙 덜렁거리는 성격과 안챙기는 습관 탓에 넘어지는 일이 잦던 나였다.


그날도 창피함에 얼굴부터 가리고 벌떡 일어서려는데 이상하게 발이 말을 듣질 않았다.

창피함보다 아픔이 큰 게 얼마만인지.


아픈데도 이상한 희열이 몰려왔다.

아픔이 창피함을 물리친 그 순간의 기분이 잊혀지질 않아서였다.


아마 내가 그정도로 아프지 않았다면

앞서 걷던 고딩들이 킥킥대던 장면이 문득문득 떠올랐겠지.


그러나 순간에 대한 희열의 대가로는 가혹하게도

곧바로 난 눈부신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수술이 끝나자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아 두려움을 느꼈고,


마취가 깨자 회사에 뭉텅이마냥 뭉쳐놓은 일들이 생각나 답답해졌고,


깁스를 4주간 해야한다는 말에 회사의 일보다 외발로 걸어다닐 한달이 걱정됐다.


건강에 대한 그리움이란
전 애인들에 대한 미안함과 비슷한 설움이었는지.
그와중에 아쉽던 예전의 연애가 떠올랐

깁스고뭐고 그대로 아득해져버렸다!


누워있는 순간 순간
크고작은 걱정과 무의미한 감정낭비가 쉴새 없었다.


가장 큰 걱정이 뇌를 지배했고

그 걱정이 사라지면 작았던 걱정이 부풀었다.
그러다 굴러온 감정이 걱정을 밀어버렸다.


아픔이 창피함을 물러가게 해준 것처럼


작은 걱정은 큰 걱정이 해결되지 않았으면

그냥 그대로 잘 끝났을 일인 것을 깨닫는다.


결국 나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감정에 얽매여

이토록 29년을 괴로워했던 거고.


친구가 그랬다.

죽을 때까지 수술한 부위는 비가 오면 아릴 거라고.

예전 같았으면 앞으로 남은 생의 비오는 날에 대해 걱정했겠지만,
아직 난 깁스도 풀지 않았고

올해 장마는 지나갔다.


모든게 웃기고 가볍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볍게,

그날 난 넘어진 기억을 몸에 일기처럼 기록했다.


29살의 가을 문턱이 보인다.

창문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색이,

이 오랜만의 바람 냄새가,

죽기 전 비오는 날마다 생생하길.


순간뿐인 걱정 말고
평생가는 추억을 안고 살아가는 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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