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앞둔 12월 어느 날
나는 꾸준히 연애를 해온 편이다.
사실 연애를 할 땐 내 시간을 가지고 싶어도 상대의 불편한 기색에 그냥 내 의견을 눌러놓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의견을 피력하지 않았어도, 벌써 내가 꺼내버린 그 '나만의 시간'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감정싸움은 점점 커져 오해가되고
결국엔 이별의 씨앗이 되어 이별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가끔 연애를 좀 쉬어볼걸 하면서도,
또 어느땐 그 시간들이 없었으면 아마 우울증에 밤낮 시달렸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연애를 할 때 좋았던 것들을 생각해보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던 것과(물론 가끔 혹은 자주, 혼자일 때보다 더 큰 미친외로움이 온다)
덜렁거리는 나를 챙겨주었던 것들(우산이나 지갑, 저녁밥 같은)
같이 무언가를 쌓아가는 뿌듯함이랄까.
그리고 가장 큰 건 역시나 퇴근길 하루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묻을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상자가 되어주는 상대였다.
늦은밤 츄리닝차림으로 집앞에서 먹었던 맥주나 일요일 아침 컵라면을 사먹으며 동물농장을 보는 것과 같은 소소한 행복도 은근 대단히 큰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가끔 어느 시절의 내모습이 궁금할 때면 엔드라이브를 열어 그때를 찾아가곤 한다.
그러면 그때의 기분들이 생생히 떠올라 돌아가고싶기도, 다신 생각하고 싶지 않기도, 한다.
오늘 갑자기 지난 인사이동때의 나를 생각했다.
19년 인사발령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
문득, 현 부서로 오기 직전의 내가 궁금했던 거다.
그때 난 무슨 생각으로 이 과를 지원했을까.
그때 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때 내 행복은 뭐였을까.
사진을 찾아봐도 채워지지않는 것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내 이야기 보따리였던 사람이 떠오른다.
내가 그때 어땠는지 물으면 금방이라도 그당시의 나를 꺼내 보여줄 것만 같은 사람.
좋았던 그때를 함께 회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연인이었던 사이가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것들이 이럴 땐 참 한탄스럽다.
물론 둘 중 한명의 감정만 식어버린 이별 관계는 밀려가는 파도처럼 당연한 거지만,
상대는 내말에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좋은 사람을 언젠가 잃어야 한다는 슬픔은
연애의 가장 큰 단점일지도 모른다.
지난 시간들을 다시 한번 껴안는다.
내 시간들 속 연애는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한, 지금의 내 일부.
좋았던 일도 좋지 않았던 일도
지금 나를 좋게 만든 좋은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