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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탓 Sep 06. 2021

일기라도 쓸걸

오늘의 날씨 비

일기라도 쓸것을

이라고 말했다.


웃기게도 어설프던 시간이 흘러

부서엔 나보다 높은 직급이 그리 많지 않게됐다.

물론 지금 있는 부서는 대부분 신규로 채워지는 곳이지만, 그래도 며칠 전까지 “막내가 해야지” 하면

벌떡 일어나지던 내 모습과는 적잖이 다른 풍경이다.


신규들은 하나같이 경직되어있다.

재밌는 얘기를 해도 나만 재밌고

웃기지? 해도 강요가 되어버린다.


어렸을 때 그 어렵던 선배들을 보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신규와 둘이 밥먹다 할말이 없어진 나는

쩝쩝대며 열린 창문으로 쓸데없이 하늘만 쳐다본다.


스물여섯에 매번 야근을 하는 그친구를 보며

진짜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물었다.


“너는 집에 가면 뭐하냐?”


정말 드럽게도 할말이 없나보다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3초 고민하다가 정말 드럽게도 대답할 거리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냥 가족들이랑 얘기하다가 자요!”


너무 재미없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구겼다.

스물여섯에 왜 인생을 저렇게 보내지? 왜?


“너무 재미없는데?”


“그럼 스물여섯에 뭐하셨어요?”


“.. 나는 엄청 놀았던 것 같은데..?”


진짜 재밌었던 나의 스물여섯을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기억이 안난다.

뭔가 한방 먹은 것 같았다.

그친구의 삶에 표정을 구길만큼의 멋진 인생이었나?


정말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스물여섯에 뭘하고 살았는지 특정한 일을 생각해봐도 도무지 제대로된 기억이 안나는 거였다.

기억도 안나는데 무슨 조언을하지


이 기억의 부재는

“나는 엄청 놀았던 것 같은데”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

알코올성 치매에서 왔을 확률이 높다.


기억이 안나서 네이버클라우드를 누른다한들

삼겹살과 막창 그리고 연어와 광어우럭사진(+소주)만 득실거릴게 분명하다.


뇌세포와 뒤바꾼 “엄청 놂”이 살짝 부끄러워졌지만,

물론 후회하진 않는다! 그래도 재밌었! 던 것 같 으 니 까!

근데 나 정말 재밌는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

왜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걸까..


그래도 그순간

한가지 조언은 확실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기라도 써라

야 일기라도 써라

할거없으면 일기라도 써


하 씨 일기라도 쓸걸


앞으로 진정 떳떳한 꼰대질을 하기 위해서는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서른 두살에는 말야

어?

하려면

먼저 서른두살의 기억이 차곡차곡히 있어야한다.

기억에 더해 느낀점까지 있어야

누군가에게 쓸데있는 조언이 가능하다.


오늘의 꼰대짓은

조금 없어보였다.

그래서 오늘은 반성의 의미로 일기를 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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