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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진 Feb 20. 2019

내가 주지 않은 위로

가게를 준비하며 상상했던 이미지가 있다. 한 명의 손님이 오면 극진하게 맞고 그 손님을 위해 정성껏 식사를 준비해 대접하는 따뜻한 식당의 모습. 손님이 오지 않는 여유시간에는 책을 본다던가 음악을 들으며 내 시간을 즐기는. 지금은 당시의 우리를 떠올리며 어이없이 웃는다. 상상은 가게 오픈과 동시에 처참히 붕괴되었다. 


손님은 머릿속 그림처럼 한사람씩 차례로 와주지 않았다. 둘이 함께, 넷이서 왁자지껄하게, 때로는 일곱이 무더기로 들이쳤다. 한 순간에 몇 테이블이 차면 한 사람을 집중해서 응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일단 가게로 들어와 앉은 손님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반복적이더라도 모두에게 반갑게 환영 인사를 해야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물, 반찬, 수저 등을 잘 전달해야한다. 누락없이 모든 주문을 잘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아야 하기에 동시에 들어온 주문을 ‘한꺼번에’, ‘빠르고’, ‘맛있게' 조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곳에서 손님과 교감하며 식당을 운영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라치면 또 다른 손님이 들어오거나, 반찬 더, 밥 더, 수저가 떨어졌어요, 등의 추가 서비스 요청이 여기 저기서 들어온다. 그게 아니라면 주방에 쌓여가는 설거지와 여타 준비해야하는 일이 부담이 되어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아마도 환상이었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포착된 이미지, 혹은 일상 속에서 만난 순간의 장면들이 조합되어 만들어 낸 환상. 우리 같이 생의 전선에 있는 이들은 결코 충만히 누릴 수 없는. 수입에 관계 없이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 .  신선도와 수량에 착오 없이 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시간대 별로 빈틈 없이 인력을 채워넣어야 하고, 직원들 사이의 갈등도 해결되어야 하며, 눈 깜짝할 새 쌓이는 산더미 같은 설거지도 끊임없이 해치워야 하고, 무엇보다 매출과 매입의 비율이 적절해야 하며, 주방 설비가 고장이 나지 않아야 하고, 가게 전반의 물리적 환경도 문제가 없어야 하고, 하루 10시간 이상을 서서 움직이며 버틸 체력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됨과 동시에 그 이미지가 그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난 2년간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불가능한 꿈이었을까? 그렇다고 단정짓고 살았다. 가게의 1차적 목적이 일을 해서 수익을 남기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젯밤 잠들기 전 습관적으로 sns를 확인하다 가게 이름이 태그가 되어 만나게 된 글, 그 글이 또 다른 생각으로 안내했다. 약간 늦은 저녁 시간이었나,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두리번 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던 여자 손님을 기억하는데 그분의 사진과 글 같았다. 그분은 어제 우연한 걸음으로 우리 가게에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음식을 먹고 나오며 배가 아프지 않았다고, 밥 한끼를 먹고 왠지 모르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내 기억으로는 손님과 우리 사이에 아무런 대화도 없었고 교감이라 부를만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주문을 받았고 평소와 똑같이 식사를 냈고 "맛있게 드세요" 한 마디 정도 던졌을 뿐이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을까? 찰나의 눈빛, 대답 한 마디, 몸짓 하나, 등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들 때문이었을까?  그냥 그곳 그 시간 속에 조성된 분위기 -조명의 밝기, 색, 테이블의 재질,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 공간을 채운 음악 선율... 등 - 때문이었을까? 




회색빛 보도블럭 사이에 솟아난 노란 민들레가 왠지 모르게 눈물을 핑 돌게 하며 얼어있던 마음을 녹이는 순간 처럼,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준 사람은 준지도 모르는, 누가 주었는지도 모르는 갑작스런 순간이 가끔 찾아온다. 그분에게 어제의 저녁 한끼를 하는 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언제, 어떻게, 왜를 정의하기 어려운 그런 우연한 순간...


이 순간들 덕분에 당장의 앞 길 조차 잘 분간이 되지 않는 회색빛 삶 속에서 겨우 신선하고 깨끗한 들숨을 쉴 수 있는 것일까? 이 들숨이 앞을 헤쳐나갈 힘을 마련하는 것일까? 나는 주지 않았는데 받았다고 하는 손님이 말한 위로 덕에 가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토록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기에 존재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잘 보이지 않던, 환상 같던 그 꿈이 현실이 되긴 했구나. 비록 너무나 짧고 희미하긴 했지만.   



‘어둠 속에서 빛이 있다. 빛 속에도 어둠이 있다’
-구니키다 돗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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