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이진 Feb 20. 2019

그때의 일기 #3

2017.1.5

2017년 1월 5일


노동과 생각을 병행하기란 얼마나 힘든지. 흘러가는 시간 가운데 순간적으로 피어나는 생각들이 많은데 눈 앞에 놓인 일을 하다보면 생각들이 금세 시든다. 그릇을 닦는 세제 물에 뒤섞여 하수구로 빠져 버리고, 빵가루 통으로 떨어져 기름 가득한 튀김기 속에서 녹아 버린다. 순간 살아서 반짝거렀던 것 같은데. 글자 옷을 입혀주지 못한 상념들이 죽어간다.  


손님 입장 - 어서오세요 - 메뉴판 - 물컵 - 수저 - 반찬 -네, 등심하나 안심하나요-... 기계처럼 움직이는 동작 사이에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가 자리잡을 공간이 없다. 기계가 되는 일이 편할 때도 있다. 동일한 명령에 동일한 반응을 하면 된다. 감정은 필요 없다. 미소와 친절 정도의 입력값만 준비 해 놓으면. 기계가 되어 인사하고, 기계가 되어 웃고, 기계가 되어 음식을 만들고. 좁은 곳에서 박작박작 최단시간 최대 효율만을 목표로 삼아 움직인다.     


“생각하지 마, 시키는대로 해. 아무 말 하지마.” 갑자기 들려온 말에 기계처럼 움직이다 깜짝 놀랐다. 기계가 되어 시키는 일을 하고, 기계가 되어 명령을 수행하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나였구나. 그런 말 어디서 배웠니? 군대 아니야? 이럼 안되지. 시스템에 매몰되지 말아야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되어야지. 반짝이는 생각이 죽어 나가지 말도록 애쓰자. 사람으로 살기 위한 싸움. 이번 해의 목표다. 생각은 돌아가는 기계를 잠시 멈추게 만든다.


바라는 바는, 기억력이 좋았으면 좋겠고, 문장이 쉽게 써졌으면 좋겠다. 기억하고 있던 생각이 키보드 위의 손가락 아래로 단번에 스르르 새겨지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조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