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이진 Jan 09. 2019

그때의 일기 #2

2015.9.14

2015년 9월 14일 



경험의 폭이 넓어졌을 때 시야도 넓어진다. 존재했지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길 옆에 늘어선 작은 상점들. 그곳에는 우리처럼 12시간을 서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화장실에서 쉼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었고, 매일 기약 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관계없이 성실해야 하는, 아프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힘겨운 노동을 해도 하루의 매출이 좋으면 조금 힘이 나는 것 같다. 하지만 매출이 떨어지면 더 힘이 든다. 감정은 만족과 불안 사이를 끝없이 오간다. 어깨를 짓누르는 빚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이 가게를 만들기 위해 투자한 돈이 회수 가능할지 고민된다. 매일 마음 졸이는 삶인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여태껏 이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에게 거리의 상점은 단순했다. 돈을 주면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해주는 곳, 그냥 딱 그 정도. 그곳이 누군가의 삶의 현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나의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얼마큼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려야 하고 고민하고 신경 써야 하며 인내해야 하는지... 이 노동의 무게를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의 노동은 무슨 의미일까? 왜 하루 12시간이 넘도록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왜 지지 않아도 될 빚을 져서, 사서 하는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렵다! 아직도 명확히 답을 찾지 못한 물음이다. 그 답을 찾기란 너무 어렵다. 마치 그 어렵다는, "나는 왜 살고 있는가?"와 비슷한 질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을 다시 한번 몸으로 알게 되었다. 행복은 순간으로 찾아오며, 그 순간 이외에 살아내야 하는 길고 긴 지난한 시간이 있다는 것. 그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것. 우리는 모두 서로의 ‘순간’만 보고 부러워할 때가 많지만, 사실은 모두가 보이는 순간이 아닌 보이지 않는 길고 지루하고 힘겨운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작은 공간 안에 있으면 놓치는 게 많은 것 같다. 주방에서 바라보는 시야에는 약 20명이 앉을 수 있는 자그마한 홀과 창 너머의 앞 건물 풍경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세계가 전부는 아닐 텐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문을 열고 가게 앞 테라스로 나가본다. 순간의 행복이라도 놓치지 말아야지. 하늘이 높고 파랗다. 살갗을 스쳐가는 바람이 선선하다. 아, 가을이 오고 있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주방에서의 전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