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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진 Oct 11. 2020

합정에 갔다.

합정에 갔다. 2012년 몇 개월간 이 부근의 회사에서 근무하던 이후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당시의 기억들이 점 처럼 떠오른다. 기억력이 워낙에 없어 무수한 점은 아니고, 작은 점이 하나씩 가끔...


500미리 정도 크기의 일회용기에 새송이 버섯같은 걸 올려 팔던 작은 여자분이 있던 작은 덮밥집의 풍경이 생각나고, 회사 안 뜰에 자란 벚꽃나무와 작은 의자들, 카페에서 팔던 노란 한국식 카레라이스, 늦은 밤 형광등 아래서 페인트 칠을 하며 새로운 가게를 꾸미던 남녀의 모습, 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사무실의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던 작은 한식집에서의 어색한 표정들, 짧게 일하고 퇴사 의사를 밝힌 후 어쩌다 잡힌 전체 회식에서의 어색한 분위기, 결혼 소식 전한다고 같이 일하던 동료를 찾았다가 어쩌다보니 그다지 친분이 없던 사람들까지 함께 식사를 하게 되고 주고 싶지 않았던 부담감을 주어 지금까지도 생각하면 민망한 시간 같은 것... 맥락 없이 하나 둘 씩 떠오르는 기억의 이미지다. 쓰고 보니 먹었던 순간이나 어색한 순간들이 먼저 떠오르네.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휘 둘러본 그 길은 익숙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길이었다. 곳곳에 자리한 기억 속의 공간이 빠짐없이 사라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그 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 이었을까. 합정이니까. 그 말로 다 설명이 되는 걸까.


자영업자들이 폐업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높게 쳐주는 권리금을 받고 더 좋은 상권을 찾아 떠났을 수도 있고, 점점 이윤이 줄어들어 타협하는 수준에서 팔아버렸을 수도 있다. 일이 너무 힘들거나 건강이 안좋아져서 수익과 관계없이 그만두는 이도 있고. 그 중 최악의 시나리오는 밀려나는 일. 헌 옷을 벗고 새옷 입고를 반복하는 분위기 속에서 끝도 없이 올라가는 셋 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버티고 싶어도 버틸 수가 없어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


내 사정에 골몰해있던 그 시간동안 또 다른 어느 곳의 변화, 그 안의 누군가의 시간을 막연히 그려본다. 골목에 처음 와서 가게를 새로 단장하던 날, 하나 둘 손님이 들르며 이런게 장사구나 알게되던 시간, 생각지 못한 사건들이 터지며 당황했던 때, 여느 날과는 달리 너무 한가해서 이러다 망하는 건가 마음 졸이던 날, 그런 날이 지속되던 암흑의 시간들, 주변 가게들의 철거나 새 단장의 분주함 속에서 부동산을 드나들며 나의 길을 묻던 시간, 같은 것...


저기도 없어졌네, 어 여기도 바뀌었네. 일 년도 안된 것 같은데. 이젠 너무 익숙해진 도시의 문법을 보며 피맛골에서 마주친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세상은 다 변하는거야~” . . . 다른 어떤 가치를 꿈꾸거나 상상해 볼 겨를조차 없는, 말 그대로의 생존. 본인의 의지나 능력과 관계없이 찾아오는 위협을 막아주는 안전망이 튼튼하지 않은 도시에서의 피터지는 생존 현장을 세상은 다 변한다는 말로 치환시키는 건 너무 납작한 이해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이제는 기억에만 남아있는 공간들. 사라지는 것들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무너뜨리고 세우는 행위에 가려진 누군가의 시간들. 그런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 일이 아쉽다.




202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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