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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진 Oct 12. 2020

우리가 모르는 위대한 삶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없는 이에게 한 시간 동안 밥을 떠먹여 주는 일이란 내 시간을 온전히 타인에게 넘겨주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이 시간이 어서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시간. 빨리 끝나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느낌에 신이나고, 상대가 시간을 지체시키는 행위를 반복해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분노가 일어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내가 왜...'로 시작되는 한탄 같은 것들이 휩쓸려온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내가 왜 아이를 낳았지... 내가 왜 결혼을 했지...”같은 것들. 근데 결혼 뿐일까. 어떤 선택이든 그 선택을 후회할만한 일들은 무조건 생기지 않나. 다시 되감기 버튼을 눌러본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뭐 그렇게 대단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 선택에는 어려움이 없고 후회가 없을까? 


언젠가부터인지 몰라도 어렵고 힘든 시간도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을 하게되었다. 고난 없는 성장은 성장이 아닐거라는.. 그런데 이런 생각은 고난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책임을 따지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는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그렇다고 나의 탓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남이나 나의 탓이든 아니든 버텨낼 수 밖에 없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사람의 모습은 버텨야만 하는 지난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로 결정되는 것 같다. 회피하거나, 쉬이 남 탓으로 돌리는 대응으로 일관한 시간들로 채우는 사람, 힘들지만 이겨내보려고 하는 시간들로 채우는 사람. 그렇게 본다면 똑같은 기간의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버텨라! 어둠 뒤에 해가 뜬다!' 같은 꼰대스러운 생각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삶을 옹호하고 싶은, 혹은 변명하고 싶은 욕망일까?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좋은 시간이 반드시 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삶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힘든 시간들로만 점철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항상 쨍쨍 해가 뜨기만 하는 삶이 마냥 부럽지만도 않다. 해 아래서 추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삶도 많으니까. 그냥 한 사람의 모습. 어떤 얼굴. 말... 그 완성도.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약해보이더라도 그 시간은 누군가의 모습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것, 우리가 모르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 알려지고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때로는 놓쳐버리지만 계속 기억해야하는 생각이다.    



20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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