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게에는 유명한 남자 연예인이 종종 들러 밥을 먹는다. 몇 번은 가족들과 함께, 몇 번은 혼자서. 손님이 없을 때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테이블에도 손님이 있었다. 주로 모자를 쓰고 오는데 신기한 건 사람들이 귀신같이 알아차린다는 것. 누군가는 흘끔흘끔. 누군가는 뒤로 몸까지 돌려보며 쑥덕쑥덕. 누군가는 그가 나간 후에 “여기 OOO자주 와요? 들어가는거 보고 따라들어왔어요~” 한다. 하긴. 유명한데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누가봐도 헉 할 얼굴임에 틀림없으니. 그 빛을 어떻게 가리랴.
어제 오랜만에 그가 왔다. 아무도 없는 가게로. 문 앞으로 걸어오는 모습에 얼핏 동네 청년인가 싶었다. 그러나 다가올수록 문 앞이 환해졌다. 빛이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흡. 아무렇지 않게 평소와 똑같이 대해야 한다. 이분도 손님. 날 보러 온게 아니라(이런 가당찮은 생각을) 밥 먹으러 온거다. 침착 침착. “저, 돈가스 카레로 부탁드립니다." 두근두근. “네 감사합니다!” 어김없이 밝은 톤 장착. 아니, 이번은 장착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이 우러나온 것 같다. 이럴 때는 정확히 알게된다. 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아마도 배가 많이 고플 때 카레를 먹는 듯 하다. 어머니의 마음을 빌려 밥과 카레를 넉넉히 퍼주었다. ‘많이 먹어라. 나는 너의 멋짐에 항상 감사한다.’ 음식을 내고 주방 30인용 대형 밥솥 뒤로 시선을 숨겼다.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일을 열심히 하(는 척 하)며 살짝 보았다. 우와 반팔. (고기 만지다가) 우와 근육. (후추 뿌리다가) 우와 옆선. 뚫어지게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민망했고 미안했다. 식사 때까지 시선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한그릇 가득했던 카레를 싹싹 긁어먹고 일어서는데,
“연말에 많이 바빴겠어요~ TV에서 많이 보이던데”
갑자기 어머니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오. 주방 밥솥 뒤에서 눈알만 바삐 움직이던 나와 차원이 다르다. 이건 얼마나 어떻게 더 살아야 나오는 내공일까.
“네 많이는 아니고 조~금 바빴어요. 이제 봄 되면 바빠질 예정이예요.”
“아 영화...?” (내가 용기를 냈다.)
“아니 드라마예요.”
“아아.. 기대하고 있을게요.” (이거 부담 주는 말 아니었나;)
“네 감사합니다 하하.”
“힘내세요!” (더 용기내봤다. 하고나니 민망.)
대형 운전면허에 취미 삼아 도전했던 남편이 칠전팔기로(칠전팔기 정신이 아니라 진짜 칠전팔기였다) 드디어 합격 면허증을 들고 당당히 돌아왔다. 그동안 줄기차게 이어졌던 불합격에 애꿎은 나와 어머니만 시달렸다. 이제 끝이구나. 한껏 기분이 좋아진 그가 합격 수기를 열심히 말해준다. 기쁨에 얼굴에서 빛이 난다. 보는 내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 없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자연스러운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여유도 있다. 아, 이 남자 앞에서는 밥솥 뒤에 숨을 필요가 없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