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브런치에서 처음 인사드립니다. 제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위로와 함께 "어, 나도 괜찮을 수 있겠는데?" 하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저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음, 제 어린 시절은 그리 여유롭지 못했어요. 화목하지 못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꽤 어린 나이부터 '아, 우리 집은 가난하구나. 돈이 부족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일찍이 알아버렸죠. 그러다 보니 가슴 한켠에 박힌 아픈 기억들도 꽤 많아요.
엄마가 늘 남들이 입던 옷을 물려만 입던 제게 난생처음 새 내복을 사준 날이 있었어요. 어린 저는 그 내복을 자꾸만 가위로 자르고 싶었지 뭐예요. 하루 종일 저를 말리던 엄마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전 그만 가위로 내복을 싹둑 잘라버렸고, 엄마는 처음 사준 새 옷이었다며 저를 안고 펑펑 우셨어요.
학교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손을 들면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있었어요. 엄마는 꼭 손을 들라고 몇 번이나신신당부하셨지만, 저는 부끄러워서 차마 그럴 수 없었죠. 나중에 엄마가 '손 들었냐'고 물을 때, 아무 대답도 못 하고 눈물만 펑펑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겁고 아팠던, 가난이 주는 수치심이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은 누나와 저를 불러앉히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따로 살기로 했으니, 너희도 성인이 되었으니 엄마와 살지 아빠와 살지 선택해라." 누나와 저는 엄마와 함께 살겠다고 선택했고, 아빠는 딱 두 달만 생활비를 보내고는 그 이후로 어떤 금전적인 도움도 없었어요. 평생 주부로 살아온 엄마는 갑자기 누나와 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거죠.
다행히 스무 살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된 저는 나름 열심히, 또 재밌게 일하면서 돈을 조금씩 벌었어요. 그 돈을 모아 대형마트 안에 작은 화장품 매장을 차리기도 했고요. 이제야 좀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희망도 잠시, 오픈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마트 자체에 손님이 너무 없어서 '이건 아니다' 싶었던 어머니는 매장을 본사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재고분과 인테리어 비용은 감가상각해서 환급받을 수 있었으니, 단기간에 큰돈을 날리긴 해도 더 좋은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던 거예요.
그런데 재고 조사 후 감가상각을 거쳐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을 공지받았을 때, 업체 대표는 황당한 말을 했습니다. 고소를 하든 직접 운영을 하든, 회사 측에서는 절대 돈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거였죠. 여기저기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다녀 봤지만,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1년에 360일을 매달려 일했지만 돈 한 푼 벌지 못했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매장을 본사에 넘기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이때의 저는 정말이지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나갈 때, 저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화장품 매장은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었어요. 게다가 의무 공휴일조차 없던 대형마트라 저는 예비군과 명절 휴무를 제외하면 1년에 360일을 매장에서 꼬박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엄마와 저는 매일 9시간씩 일했지만, 한 달에 100만 원 벌기도 힘든 상황에서 남은 돈은 점점 줄어만 갔죠. 저는 그 돈이 타임리밋처럼 느껴졌어요.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두 달에서 한 달로, 한 달에서 3주로 줄어드는 게 눈앞에 보였습니다.
어떻게든 앉아서 온라인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고, 그러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공부가 곧 투자다'라는 생각으로 중고서점에 가서 제목에 돈이나 부자가 들어간 책은 닥치는 대로 읽어댔죠. 매장에서 일하는 시간에도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주식 차트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운명처럼 만난 책이 바로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였습니다. 정말이지 제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책을 읽은 후 저는 블로그에 글을 쓰고 카페를 만들며 '부자 되는 모임'을 만들어 주 1회씩 정기적인 모임을 진행했어요. 모두가 같은 목표로 모였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자. 그것이 진정한 부자다!"
우리는 매주 책에 나오는 '쥐 경주 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을 진행하고, 주식 이야기도, 부동산 이야기도, 사업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금융 지능을 높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는데, 거의 유일한 승리 방법은 주식을 저가에 살 수 있는 기회에 대출을 내서 매수하고, 고가에 매도한 후 부동산으로 패시브 인컴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 똑같은 게임을 매주 플레이하며 이 방법만이 정답이라고 스스로 세뇌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는 가난이라는 벼랑 끝에서 과감한 도박을 감행합니다. '이대로 있으나 투자에 실패하나 똑같이 굶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죠. 실제로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 회사의 주식을 매수하고, 그 주식을 담보로 주식담보대출까지 받아 재투자하는 올인을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대출금은 커지고, 하루하루 주식의 변동폭도 엄청났습니다. 저는 주식에 온전히 휘둘리기 시작했죠.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몇백, 몇천만 원의 금액이 하루에도 왔다 갔다 하는데, 현실은 한 달에 50만 원도 못 쓰며 살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너무 불안했어요. 정말 운이 좋게도 투자한 회사의 주식은 우상향하며 큰 수익을 안겨주었지만, 이건 그저 목숨 건 도박에서 행운이 따랐을 뿐, 절대로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쥐 경주 게임에서의 부동산처럼 꾸준히 제게 패시브 인컴을 만들어 주는 자산을 손에 넣어야만 안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자산을 소유하면 절대로 가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죠. 자산에서 나오는 수입이 제 지출보다 크게 유지되기만 하면 시간이 지나기만 하면 제 돈은 가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저에게 낮은 지출을 유지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다만 책에서 읽었듯이 안정적인 자산이란 걸 찾지 못하고 10년이 흘렀는데, 갑자기 시장에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미국 주식 시장을 누구나 아주 쉽게 투자할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했죠. 그 트렌드에 맞춰 한국에서도 수많은 월 배당 ETF들과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펼치는 회사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럼 계산은 단순해집니다.
자산에서 나오는 소득 > 지출
이 공식만 끝까지 유지하면 내 돈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자산은 바로 현대차 우선주 2,000주였습니다. 현대차 우선주 2,000개를 갖고 있으면 제가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저를 위해 스스로 일하는 거죠. 그리고 이 수량은 계속해서 늘어날 수 있고요. 그럼 적어도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삶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해외에서 생활하면 한국보다 물가가 훨씬 싸기에 해외여행이나 다니며 살아도 돈은 늘어나는 구조였죠.
제가 이 깨달음을 얻은 시점에 따라 필요했던 금액은 달랐습니다. 2023년 1월 1일에 깨달았다면 약 1억 5천만 원이면 파이어를 할 수 있었고요. 2024년 1월 1일에는 약 2억 원으로, 그리고 2025년 1월 1일에는 3억 원의 돈으로 파이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파이어족이라고 하면 돈이 아주 많은 부자가 평생 돈 걱정 없이 펑펑 쓰며 즐기는 이미지를 떠올리곤 합니다. 파이어족이라기보단 그냥 '부자'에 가까웠죠. 그런데 스콧 리킨스가 쓴 『파이어족이 온다』라는 책을 읽어보니, 파이어족이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아주 현실적인 삶의 태도였습니다. 파이어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립, 조기 은퇴)의 줄임말로, 극단적인 절약과 투자를 통해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고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의미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었던 거죠. 극단적인 절약과 투자를 통해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바로 '파이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저 역시 파이어족이라면 수십억의 자산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돈이 없으니 평생 노동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굳게 믿었고요. 그러나 신기하게도, 제 생각의 변화만으로 제가 일용직 일을 전전하던 시절과 파이어족이 된 지금, 제가 가지고 있던 돈의 합계는 완전히 똑같습니다. 단지 아주 작은 생각의 변화로 '돈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마음이 바뀌었을 뿐이죠.
그 결과 저는 지금 방콕에서 태국어를 배우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라일레이 비치의 에메랄드빛 해변가에 누워 여유를 만끽하기도 합니다. 치앙마이에서는 춤을 배우거나 재즈바를 다니며 새로운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하고요. 말 그대로 꿈에 그리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치앙마이에선 좋은 여자친구까지 만나 더욱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에요.
3억이 채 안 되는 금액으로 평생 일을 안 하고 살겠다니, 누군가는 코웃음 칠 내용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파이어족이 된 지 1년이 지났고, 현재 조금도 불편하거나 불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금액으로 파이어를 해도 누구보다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제 삶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처럼 힘들고 지친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다니던 정신과 병원에도 예약 없이 가면 진료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요. 저 역시도 이 불안과 우울, 압박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생각의 변화로 저는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여러분도 괜찮을 수 있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저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가지고도 '돈이 없다'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자아실현을 하며 일을 즐기시는 분들은 계속 일하는 것이 더욱 즐거울 거예요. 하지만 저처럼 하루하루 출퇴근길을 생각만 해도 지치고 우울한 사람이라면, 저처럼 일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의 씨앗을 마음에 심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삶이 제가 하는 이 모든 말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브런치를 통해 파이어족으로서의 경험을 꾸준히 공유하며,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들과 그 속에서 얻은 지혜들을 솔직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자유로워지는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