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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Apr 08. 2024

<패왕별희> 여섯 번째 손가락

[노파의 글쓰기] 사는 것은 원래 추잡한 일이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중국인들은 때로, 아니 꽤 자주, 한 사람의 정신으론 도무지 담아내지 못할 거대한 것들을 만듭니다. 

<패왕별희>도 그런 영화였습니다.

 

역발산기개세. 

힘은 산을 옮길만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만하다. 

2200년 전 패왕이 노래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너무 거대한 이야기를 만나면 섣불리 말을 얹기 어렵습니다. 내 말이 너무 작고 하찮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고 한동안 저는 두지의 여섯 번째 손가락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왜 주인공은 육손이었어야 했을까?


경극학교에 두지를 버리려던 어머니는 아이가 육손이라서 극을 시킬 수 없다는 단장의 말에 문 앞에서 아이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식칼로 잘라버립니다. 그러니깐 이 손가락은 처음부터 제거될 운명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잘려나간 손가락은 앞으로 두지의 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어디로 가든, 그곳엔 상실이 있을 겁니다.


프로이트였다면 옳다구나 하며 이 손가락이 성기를 상징하는 것이고, 따라서 손가락 절단은 거세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이것은 어린 시절에 거세당한 주인공의 남성성 상실에 관한 이야기라고 침을 튀기며 설명하겠으나, 제발, 그 입 다물어줘.


그러나 제 호오와 관계없이 상실된 여섯번째 손가락에 집중하는 순간, 이 영화는 정말 많은 부분에서 그렇게 읽힙니다.

단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두지를 패왕의 최후의 연인, 우희의 역에 발탁합니다. 그리고 두지가 자신의 남성을 주장하려고 몸부림칠 때마다 즉, 가사를 바꿔 “본래 사내아이로서 계집아이도 아닌 것”이라고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를 죽도록 두들겨 팹니다.


결국 두지가 자신의 남성을 포기하고 가사를 제대로 부르게 됐을 때, 즉 “본래 계집아이로서 사내아이도 아닌 것”임을 그 스스로 받아들이게 됐을 때, 그리하여 이름도 두지에서 페이로 바뀌게 된 날, 그는 극단의 후원자인 거물급 내관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그러나 내관은 거세된 자이므로 페이가 당한 것은 진짜 강간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순간 페이가 느꼈을 상실감과 참혹함만큼은 칼에 베인 듯 선명한, 진짜였을 겁니다.


그 참혹한 기분을 이기며 간신히 극단으로 걸음을 옮기던 중 페이는 길한가운데 버려진 아기를 보게 됩니다. 그 아기가 마치 자신의 상실감을 채워줄 존재인 양 페이는 아기를 소중히 안고 극단으로 데려갑니다만, 이 역시 진짜 모성은 아닙니다. 페이는 이후 아기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이후 페이는 상징적으로 거세된 남자들에 의해 정신적 강간을 당하고, 무대 위에서만 자신을 연인으로 여기는 패왕을 홍등가의 매춘부에게 빼앗기고, 두 번째로 거둔 아이에게서(페이가 데려온 그 아기) 배신을 당하는 등 온통 가짜투성이인 세상에서 오직 상실감만을 실제로서 실감하며 조금씩 병들어갑니다.


그 사이 청 왕조가 무너지고, 일본 제국이 무너지고, 대만 정부가 무너지고, 공산당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의 세상이 들어섰다가 무너지는 사이 페이는 민족 반역자로 끌려가 재판을 받기도 하고, 아편에 중독되기도 하고, 마지막엔 퇴폐 예술가로 낙인 찍혀 인민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 가운데 어떻게서든 생을 부지하려고 발버둥치는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연민보다는 오히려 진저리가 쳐집니다.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아내를 팔고, 동료를 파는 패왕의 모습을 보며 인간이 저렇게까지 추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생존.

중국인들이 만든 거대한 이야기를 볼 때마다 어김없이 이 두 글자가 떠오르는데, 저는 대체로 이 단어를 좋아합니다만, 이들의 이야기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것은 너무 지독하고, 징그럽게 느껴집니다.


예술가는 이런 추하고 징그러운 것을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페이는, 거물급 내관의 손에서 원대인을 거쳐 비로소 패왕의 손에 들어오게 된, 그 위대한 검으로 자결을 택합니다. 마치 2200년 전 우희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영화 내내 보여주는, 검에 대한 페이의 과도한 집착 역시 여섯 번째 손가락에 대한 상실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쓰려고 했더니 어쩐지 좀 과한 해석인 것 같아서 보류하겠습니다.


그러든저러든, 산다는 것은 원래 추잡하고 징그러운 일이니 페이도 장국영도 남들처럼 그냥 그렇게, 묵묵히 그 추함을 견디면서, 계속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사실 당신을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당신의 손만큼은, 그 손짓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지금도.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404526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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