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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May 01. 2024

[노파 단상] 호암미술관, 테무, 7천원

호암 미술관에서 여성을 주제로 불교 미술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어젯밤부터 착착착, 모험을 떠날 준비를 했다.


리움 미술관(용산)에서 호암 미술관(용인)까지 가는 셔틀이 있어서 시골쥐는 아침 7시 20분에 집을 나서 경의선을 타고 부지런히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경의선 열차 중에는 폭탄이 있다.

저 혼자 경로를 이탈하여 서울역으로 가버리는 미치광이 열차. 하필 그걸 타고 말았다.


신촌역에서 그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부리나케 뛰어나가 버스를 잡고, 뛰어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뛰어서 리움 미술관으로 올라가는데, 맞은편에서 이 세련된 부촌에 어울리지 않는 육중한 고속버스가 뒤뚱이며 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무심하게 나를 지나쳐 방금 내가 헉헉대며 올라온 골목을 매끄럽게 내려갔다.

차창 속 사람들이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죽은 자식 거시기 만지는 심정으로 몇 걸음 앞에 서 있던 리암 미술관 경비원에게 물었다.

방금 저게, 호암 가는 셔틀인가요?


친절한 경비원은 괜히 자기가 미안해하며 그렇다고 했다. 나는 가방을 두 팔로 안은 채 함께 미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방을 두 팔로 안은 이유는 뛰어 오는 길에 가방 끈을 연결하는 금속 고리가 부러졌기 때문이다. 금속 고리가 부러진 이유는 예쁘다며 테무에서 7천 원을 주고 산 가방이기 때문이다.


7천 원.

어제 내가 고작 7천 원에 책 사보면서 남의 글 욕하지 말라고 뭐라 했던가? 바로 그 7천 원이다.


이런 지구 쓰레기를 생각하면 글 일곱 편에 7천 원이라는 가격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인지!


부러지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는 아름다운 문장과 기발한 상상력이 삼백 페이지 가까이 이어져 있잖아, 등등을 생각하며 보따리장수의 몰골로 아침 9시 2분부터 한남동 골목을 쑤시고 다녔다.


리움 미술관은 10시 오픈이고, 근처 카페들도 사정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윤선생님은 출근을 하시는 모양인지, 네이버 지도도 먹통이 돼버렸다.

 

아, 모르셨습니까? 윤선생님이 출근하는 시각 앞뒤로 용산 일대의 지도 맵이 먹통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한강 한가운데에 있는 걸로 나오지요.


마치 나의 2024년을 두 시간 안에 압축해 놓은 것 같은 아침이었다.

나는 그저 누군가 일생을 바쳐 완성한, “완벽함”의 개념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나저나 이 지구 쓰레기 가방은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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