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 대출로 갈아타면서 이자가 1%대가 되었다. 감당해야 할 이자가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여유자금도 생겼다. 그동안 미루었던 차를 사야하나? 분양을 받아야 하나? 집 사지 말고 아이들과 매년 해외여행을 계획해 볼까? 집은 꼭 사야하나? 주식을 해야하나? 경제공부를 좀 해둬야겠다. 행복한 고민이 이어졌다. 빚도 없고 차있고 집있는 사람들은 고민할게 뭐 있겠나 싶었다. 물론 그 밖의 문젯거리들이 즐비해 있다는 건 안다. 그래도 경제적 자유만이라도 허락된다면 인생이 훨씬 수월하지 않겠나 싶었다.
어제는 밥도 서서 먹을 정도로 바쁘게 보낸 탓에, 귀가 후 다시 수업준비를 하기가 벅찼다. 새벽에 해야지, 했는데 오늘 아침은 아들의 소풍 도시락을 싸야했다. 할일이 있고 있고 또 있었다. 학교가 다행이 한가한 때여서 수업 준비를 짬짬이 마무리했다. 오늘도 저녁 9시까지 수업으로 꽉찬 일정을 보낼 예정이다.
어제 수업은 진이 빠졌다.
중1 여학생인데 말이 정~~말 없고, 질문하면 나를 빤~~히 쳐다만 보고 있다. 6개월 여는 그러려니 하고 대답 안하면 내가 하면서 그렇게 보냈다. 중간 중간 답답해서 "생각중이니?" "하기 싫으니?" 따위의 말들을 하긴 했지만, 대체로 이해하고자 했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책은 더 안읽어왔으며, 숙제는 늘 까먹었다고 했다. 어제 나는 폭발했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태도의 문제야. 펜을 들고 끼적거리는 너의 모습, 선생님 눈에는 귀찮아하는 걸로 밖에 안보여. 힘든건 알지. 선생님도 하루종일 일하고 수업하고 힘든데, 그럼 선생님도 똑같이 해볼까? 선생님도 사람이야. "
정색하면 아이는 갑자기 긴장해서는 눈물을 고일 때도 있고, 몰랐다고 할 때도 있고, 모른다고 할 때도 있고 그렇다. 그럼 또 나는 언제 화냈냐는 듯 그랬냐며 수업을 이어간다. 마음같아서는 그만 두고 집에 오고 싶었지만. 아이 마음은 어땠을까? 수업이 재미없고 힘든건 알겠는데..이 수업을 이어가는게 맞는걸까? 다른 선생님을 소개 시켜줘야 할까? 내가 어디까지 품어줘야 하는걸까? 나는 품어줄 수 있는 선생님인가?
새벽에 수업준비를 하며 김사량의 [빛속으로]를 읽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재일동포로 살면서 겪는 수난, 조선인으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은 단편이었는데, 책의 주인공이 야학의 선생님이다. 그리고 주인공을 괴롭히는 아이가 있다.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 엄마로부터 받은 조선의 피를 거부하는 아이는 선생님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고 조롱하지만, 선생님은 그 아이를 품어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아, 이게 선생님이지. 한낱 사교육 독서선생님이지만 이런 마음 자세가 있는가! 나에게 주어진 학생과 얼마나 마음적으로 교류하고 있는가. 진도 나가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가.
오늘도 수업을 하러 간다.
수업보다 학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선생님이 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