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마지막 행사만 남았다. 한 해의 결산이나 다름없는 각 동아리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축제 날이다. 나의 중학시절엔 축제라는 게 없었고, 준비해 본 적이 없어 막막했지만, 담당 선생님은 어차피 그날 지나면 버릴 것이라며 부담 갖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간의 행사들 사진을 뽑아 사진전을 준비하고, 부스별로 책표지 퍼즐과 룰렛, 책표지로 종이백 만들기, 크리스마스 타투로 축제를 준비했다. 본 행사 외에도 책 눈사람을 만들고, 풍선을 달고, 전시물을 게시하는 등의 도서관 환경을 조성해야 했다. 혼자였으면 똥손인 나는 몇 날 며칠 밤새야 할지도 몰랐으나, 도서부 친구들이 있었고, 금손인 오전 봉사 선생님이 계셨고, 행사의 경중을 따져줄 국어 선생님이 계셨으니, 2~3일 초과근무를 하는 것 정도로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휴, 다행이었다.
행사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 전구를 밝혀 최대한 게시물을 밝혀주고, 신나는 크리스마크 캐럴로 배경음악을 틀고, 일하는 도서부 친구들을 위한 간식을 준비하며 도서관 문을 열었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런 일이구나. 내가 있는 이 장소가, 대화가, 일이, 누군가에게 기쁨이나 변화나 무엇인가를 이끌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좋아했구나, 이 일을 하기를 참 잘했다 싶었다.
비록 세 시간 후 열심히 꾸민 풍선 따위를 떼어내고 버리는 수고가 이어졌지만,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동료가 있었고,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으며, 다 했다는 뿌듯함이 자리 잡을 뿐이었다. 내년에는 어느 학교에 간다면 이런 일들을 해봐야지, 개인적으로는 이런 글들을 쓰며 사서로서의 역량도 키워봐야지 생각하면서 축제를 마무리했다.
내가 만약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도서관에 취업했으면, 도서관의 일들에 지금만큼 진심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10여 년의 회사 생활 중 북소믈리에 시절에는 책은 있지만 사람이 없었고, 고객상담 시절에는 사람은 있지만 책이 없었다. 육아에 전념할 때는 책도 시간도 여력도 없었고, 독서지도사의 일을 하면서는 학생 모집과 유지가 녹록지 않았다.
반면에 회사에서 배운 행정적 업무들, 글쓰기, 책, 고객 상담에서부터 육아에서 배운 인내와 끈기, 독서지도사를 하며 배운 교육적 스킬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고, 도서관을 우연한 기회에 만나 사서로서의 일에 비로소 재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목회자의 자녀로 산 세월이 힘들어서 배우자감으로 목회자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건만, 여러 명의 연애 상대를 거쳐 지금의 남편에게 도달하여 비로소 안정감을 찾아 결혼한 것처럼, 도서관 역시 돌고 돌아 나의 자리를 찾은 것 같다.
비록 정규직도 아니고, 내년에는 어떤 학교를 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 이 일을 계속할수록 매너리즘 따위로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 이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이 길 위에서 나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 나갈 일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