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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Jan 26. 2024

계약만료자의 방학

계약이 만료된 지도 보름이 넘었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교육도 듣고, 워크넷에 등록도 하고, 가장 크게는 육아의 자리로 채워지고 있다. 그간 가지 못했던 친구네 아이들과의 여행도 가고, 방학한 아들과 오전 내내 비비대며 지내는 날들이 좋다. 


물론 방학하면 해야지 결심했던 글쓰기, 독서 루틴은 잊힌 지 오래고, 아이들과 함께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 먹고, 티브이 보고, 다시 먹고, 아이 공부 좀 봐주다가, 아이들 픽업을 오가며 하루하루가 지나지만, 다시 일하기에 이 시간이 소중한 탓인지 기억도 가물한 나의 청춘처럼 뭉텅뭉텅 시간이 새어나가 아쉽기만 하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수다쟁이였나, 책 하나를 둘이 어찌나 낄낄대며 보는지, 왜 아들과 연애한다고 하는지 알 것도 같다. 내 시간이 여유롭다 보니 화낼 일도 줄었다. 내 일정에 아이들이 따라주지 못하면 불같이 화내던 내가 어디 갔나 싶게 온순해졌다. 이 정도면 집에 있는 게 맞는 건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일 하러 나가는 게 좋아, 집에 있는 게 좋아?"

"응? 갑자기 왜?"

"아들이랑 집에 있으니까 좋아서~엄마 집에 있으니까 좋아?"


"음... 쪼끔 좋아! 엄마 없으면 나 밥은 어떻게 먹어~~~"


아.... 역시 짝사랑이었구나. 아들 덕에 쿨하게 내년 일자리를 찾으러 노트북을 켠다. 다행히 작년 학교에서는 올해 함께 할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단, 교사 공고가 끝나야 강사 공고가 나기 때문에 교사로 지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 나도 살 길을 찾아 집 근처 고등학교에 이력서를 냈는데, 면접 보러 오란 소리도 못 듣고 맥없이 떨어졌다. 다시 이전 학교에서 연락이 왔고, 교장 선생님이 휴가 중이라 돌아오시면 확정이 난다고, 교감선생님까지는 통과됐다고 알려주었다.


80프로 확정의 소식을 듣고도, 앞으로 집 근처 자리가 나오면 응시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이 세계가 다 그렇다며 집 근처가 된다면 무조건 가라고 하지만, 나를 처음 고용해 준 학교(라기 보단 담당 선생님)의 손을 놓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나는 교장선생님의 싸인이 떨어지면 이전 학교로 돌아갈 가능성이 99프로다. 


비정규직은 매년이 갈림길이고 고민이고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한다. 마치 전셋집과 같달까. 정해진 계약기간에 나와야 하고,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집 없는 자처럼. 정규직이 그립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소중하니까. 어디를 가더라도 나의 일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직장'이 중요한 게 아닌 '직업'이 중요한 거니까, 나의 일을 소중이 쌓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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