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하게 갑의 입장이 되어봤다.
이전 학교와 일하기로 했지만 집 근처 일터라는 장점을 뿌리치기가 힘들었다.
최종 목표는 우리 첫째 둘째가 다니는 학교로 두고, 근처 초등학교에 이력서를 살포시 넣었다.
일주일 후 면접에 오라는 문자가 왔다. 갈 곳이 있고, 마음속으로는 옮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면접을 갈까 말까 여기저기 물어보며 고민했다. 면접 때 입을 마땅한 옷도 없고, 가기도 귀찮았지만, 근처 초등학교에 얼마나 지원자가 있으려나 동태를 살피자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도착하자마자 면접장으로 갔다. 교감선생님과 남선생님 두 분이었는데, 교감선생님만 질문하셨다. 한 5분여 얘기했을까, 바로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내가 더 당황하여 면접자가 저뿐이냐고 물었다. 한 분은 면접날이 겹쳐서 못 오고, 한 분은 자격조건이 안 되는 분이었다고 한다. 단독면접자였다. 사실 이전 학교와 재계약하기로는 되어있다고 고백했다. 반전은 이미 교감선생님도 알고 계셨다. 통화를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선택은 나의 몫이니 내일 오전까지 고민하고 알려달라고 하셨다.
초등학교는 아이들도 많이 오고, 책 배치는 오롯이 사서의 몫이라 앉을 틈도 없다고 들었던 터라 실제로 초등학교에서 일할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면접에서 들어보니, 대학생 봉사자가 2명이 있고, 자원봉사자 1명도 추가 배치 될 거라고 했다. 매월 행사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걸어서 10분 거리라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남편과 상의하고, 사서직종에 있는 친구와도 얘기해 보고, 절친과도 상담해 보니, 무조건 가까운 곳이 좋고, 자녀가 초등학생이기에 초등학교 근무가 도움이 많이 된다는 조언에 힘입어 이전 학교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근처 초등학교로 가야겠다고 알렸다.
그런데 웬걸, 담당자가 펄쩍 뛰며 작년 조건과 똑같이 해줄 테니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한다. 작년 조건이라 함은 4시간 근무에 주휴수당을 주는 것인데, 미취학 플러스 초등 1, 2학년을 둔 나에게는 오전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급여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이쪽저쪽의 줄다리기 끝에 나에게 가장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하겠노라고 결정했다.
10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하고, 어디엔가 뽑히기만 하면 감지덕지했는데, 내가 결정권자가 되어 가장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게 되다니 새삼 감격스러웠다. 사서교사를 무조건 배치해야 하는 학교는 늘었는데, 사서교사는 우리 지역에 턱없이 부족하고, 그리하여 나처럼 사서자격증 소지자에게까지 기회가 온 덕분이었는데, 이런 사서마저도 부족한 실정이라, 가고 싶은 곳을 골라 갈 수 있는 나이스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던 동네 친구가 도서관 일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 물었다. 그러고 보니 같이 일하던 한우리 선생님도 물은 적이 있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던 사서의 길. 사서자격증을 소지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방통대나 온라인으로는 취득할 수 없고, 학부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거나, 교육원에서 공부하면 준사서 자격을 얻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사서의 자리가 꽃길은 아니어서 추천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래도 앞으로 얼마간 일지는 모르나 정규 임용의 티오는 많이 없어도(학생들이 계속 줄기 때문에), 계약직이나 공무직으로는 계속 자리가 날 것이라고 한다. 이것 때문에 사서교사들의 반발도 많은 것으로 안다. 어찌 되었든 학교도서관이 살아나고, 사서가 일할 곳이 많은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