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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May 08. 2024

[1-1] 죽이고 싶은 아이/이꽃님 장편소설

사람들이 믿고 싶은 진실에 대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학부모 회장입니다. 잠시 여쭙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통화 가능하실까요?"


얼마 전, 학부모 회장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올해 바뀐 사서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서로 일하고 있기도 했고, 학교 도서관 학부모 도우미로도 참여하고 있어 나의 견해를 듣고 싶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민원이 많다는 것이었다. 도서부 고학년 학생들에게 책을 못 찾아서 화를 낸다거나, 교내에서 실내화를 신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서관 안에 실내화를 별도 비치하여 (이전까지는 도서관 실내화가 따로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갈아 신지 않을 경우에도 화를 내시며, 학부모 도우미에게는 매시간 물티슈를 주시며 서가를 닦게 한다고 하는 등, 거의 불친절에 관한 불만이었다.


"사서가 그렇게 할 일이 많은가요?"


학부모 민원에 더불어 회장님도 쌓인 게 많으신 듯했다. 한 달 여 지켜보셨다고 한다. 여태까지 1인 사서였지만 이런 사서선생님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에게 불친절하고 화를 내는 건 참기 힘들다고 했다. 가뜩이나 책 안 읽는 아이들인데 도서관 선생님이 무서우면 도서관에 가겠냐고 안타까워했다.


학교 도서관 도우미로는 한 번 가본 게 다여서 딱히 아는 건 없었지만, 잠깐 있었던 것만으로도 선생님이 좀 독특하시다는 생각을 했었다. 도우미 출석으로 궁금한 게 있어서 도서관에 전화 걸었을 때는 빨리 말하라며 재촉하시기에 '아침시간에 매우 바쁘신가 보다' 했다. 도우미로 훼손 책을 보수하고 있는 중에는 다래끼가 났는지 눈이 아픈 아이가 책을 반납하고 대출하러 온 듯했다. 하지만 사서 선생님은 아이의 의견도 묻지 않고 눈이 다 낳으면 오라고 보내시기에 '저럴 수도 있구나' 생각하긴 했다. 


생각만 했었는데 회장님의 여러 민원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줄줄이 생각이 나 민원에 덧붙였다. 아들이 동네 도서관 책을 학교에 반납했는데, 한 달이 지나서야 확인을 하셨다는 이야기도 함께. 함께 혀를 끌끌 차며 통화를 마무리했는데, 이상하게 계속 찜찜했다. 내가 동료인 사서 한 분을 골로 보내버렸구나, 동료를 지켜주지 못했구나, 회장은 왜 나에게 전화해 물었을까, 내가 사서이기에 그 분야 전문가의 말을 힘입어 민원을 넣으려고 하셨던 건데 나도 그냥 학부모처럼 이야기했구나.. 삽시간에 후회가 몰려왔고, 부랴부랴 회장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사서도 교사와 공무직과 강사에 따라 하는 일이 더해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초등학교는 대출 반납만으로도 일이 많아서 사서 선생님 혼자 감당하기가 어려워 도와줘야 한다, 그것 외에도 각종 공문서 처리, 이벤트 기획, 추천도서 기획, 환경관리, 장서점검, 수업준비 등 보이지 않는 일이 많다 등 사서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글로 마무리했다. 회장님은 교감선생님께 민원을 넣어 선생님께 전달하고자 했으나, 내 마지막 글에 힘입어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고, 사서선생님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했다. 휴, 이제야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한 아이가 학교에서 죽었다.

용의자는 그녀의 단짝 친구가 지목되었다. 

지주연과 박서은, 그 둘은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 같아 보였으나, 지주연의 평소 행실로 인해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다. 


지주연은 부유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아이였다. 하지만 엄마는 남의눈만 의식하기에 바빴고, 아빠는 돈만 벌어다 주느냐 딸과 함께 보낼 시간이 없었기에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왕따 당하고 있던 박서은을 구해주면서, 둘은 각별한 사이가 된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랐다. 

지주연은 어른들 앞에서는 세상 착하고 모범생이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기 맘대로 하는 이기적인 아이일 뿐이었다. 선생님 중에서도 자신을 나무라는 사람은 가차 없이 복하는 안하무인인 아이였다. 박서은에게도 둘도 없는 친구 같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말에 무조건 따르게 하는 주종의 관계로 보였다.


이 모든 증언들을 더해 이야기는 지주연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대놓고 이야기가 범인을 지목하고 있다면, 사실 진범은 따로 있다는 것이겠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큰 틀에 이야기를 붙이기 시작하면, 없던 사실도 진실이 되어 버릴 수 있다. 

내가 사서 선생님의 일화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덧붙였듯이, 그저 평범한 사건에도 생각이 더해지면, 그것도 여러 사람이 동의하는 생각이 더해지면, 굳건한 진실이 되어버릴 수 있다. 한 사람을 구렁텅이로 빠트려버리게 될지라도. 이런 게 역사 속 '마녀사냥'일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이 아닐지라도, 내가 본 사실일지라도, 어떤 상황에 어떤 말을 보태느냐에 따라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것, 진실 자체보다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따져 묻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진실도 죽은 진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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