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박씨 Jun 28. 2024

차를 버렸더니 찾아온 것들

모닝에서 카니발로 차를 바꾸고 생각보다 잘했던 운전 실력에 자신감이 뿜뿜 했던 것도 잠시..

2주 정도 되었을까.. 등산 후 들렀던 국숫집에서 나오다가 낮은 쇠기둥을 발견하지 못하고 '쿵' 박아버렸다.

트렁크 쪽이 쇠기둥 모양대로 꽤 깊고 길게 파였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매번 가는 학교 주차장 길이라 자신감이 사그라지지 않아, 자신 있게 휙 꺾었는데, 그 구간이 좁은 구간이란 걸 깜빡했다. 모닝 몰 때처럼 좁게 돌아서 주유구 부분에 검게 '쭉쭉' 스크래치가 생겼다.


마음이 쓰렸다. 스크래치 난 부분을 어루만져 주었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두 번의 잔사고로 요즘은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덥고, 땀이 나고, 체력이 소모되었지만, 

속이 편했다.


버스를 타러 가는 정류장이 15분 정도는 걸어야 하는데,

걷는 경로를 요리조리 바꿔가며 걷다 보니, 걷기 딱 좋은 산책로를 발견했고, 시간도 단축되었다.

맛있는 커피집도 들를 수 있게 되었고, 출근 루틴이 생겼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걷는 동안 이런저런 기분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삼성헬스에서 제공하는 걸음 수를 달성해서 좋았다.

하루 이틀 지나며 좋아지는 체력이 좋았다.


없어봐야 더 좋아지는 것들이 분명 있다.


위층에 사는 할머니 손주가 내 딸과 한 학년이라 최근 가깝게 지내게 됐다.

아이 엄마는 가끔 봤는데 아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이혼가정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들 등하교부터 시작해 학원을 선정하고 보내고 스케줄 짜는 것까지 엄마의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고 계셨다. 딸은 그저 밖에서 일하고 거들뿐이었다.


그 엄마하고는 딱히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매일 노는 탓에,

할머니가 아이 엄마를 소환했고, 엄마들끼리 소통하라고 자리를 주선하셨다. 


아이들을 재우고 위층으로 올라가 엄마 셋이 이야기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도,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도,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치고, 자신의 이야기만 했다.

자신의 이야기는 오로지 일얘기뿐이었다.

나도 일을 하고 있지만, '일'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엄마들의 만남이니 더더욱 일얘기는 잘 꺼내지 않게 된다.

다른 일하는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엄마는 달랐다.

육아에 대해서는 아예 잘 모르는구나..

오히려 할머니가 엄마들과 소통이 더 잘됐다.


엄마가 되면서 배울 수 있는 것들, 

책임감, 포기해야 할 것들, 부대끼는 마음 따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가 이모가 이모부가 풀케어해 주는 아이 엄마의 세상은 훨씬 좁아 보였다.

세상 편하게 육아하고 있는 그녀가 다른 때 같았으면 부러웠을 텐데,

웬만큼 키워낸 지금에 보니,

그렇게 부러워할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 알게 되는 감사한 것들,

소소한 일상들,

작은 배움들,

아이와 함께한 시간들,

누가 대신해 주면 절대 알 수 없는 찐 교육.

그런 걸 내가 다 알고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매거진의 이전글 모닝에서 카니발 운전 도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