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바라 Jul 27. 2020

두 여자

글쓰기 좋은 질문 642 (1)

012. 한 여인이 채용된 지 일주일 만에 해고당하는 장면을 글로 써보라. 참고로 지금 이 여자를 해고하려는 사람은 일주일 전만 해도 그녀의 채용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K과장의 맞잡은 두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말하기 곤란한 이야기임이 분명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대체 뭘 잘못했지?


  - 음....수정 샘, 일단 이건 선생님 잘못이 아니예요. 내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힘겹게 입을 뗀 K과장이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자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30대 후반의 K과장은 나이에 비해 어려보였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다녔지만, 관리를 잘한 듯 흰 피부는 건강한 핑크빛이었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들은 다 비싸보였다.


  - 알겠지만, 내가... 육아휴직을 1년 가기로 했었잖아요. 그래서 대체 인력으로 수정씨를 뽑은 거고... 그런데...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K과장을 바라봤다.


  -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바로 복귀하게 됐어요. 사정이 생겨서...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눈가를 매만졌다. 뭐지 지금? 우는 건가? 눈을 둘 데가 없어 다시 시선을 회의실 책상에 두고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K과장은 말이 없다. 결국 대체 인력인 내가 필요 없어졌다는 얘기 같은데, 이게 막 울 정도로 미안한 일인가?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일찍 복귀하는 이유는 아마 진급 때문일 거다. 사촌 언니가 그러는데 언니네 회사는, 여자들이 육아휴직 갔다오면 인사평가가 무조건 C라고 했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갔다와도 되지만 알아서들 3개월만에 복귀한다고. 언니는 그래도 육아휴직을 다 쓰고 복귀한 바람에 정말로 C를 받았다고 했다.

  

  - 그럼 이제 저는... 이제 안 나와도 되는 건가요? 언제부터요?

긴 침묵을 견디다 못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약간 진정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 오늘자로 퇴사 처리될 거 같아요.

 - 아, 네...

 - 급여는 일할 계산해서, 늦어도 다음 주 금요일까진 들어갈 거예요.

오늘 바로 퇴사 처리된다는 건 좀 충격이었다. 하긴, 대체 인력 자체가 필요 없어졌으니 내가 하루라도 더 나올 이유가 없겠지. 월급을 괜히  이유도 없지.


  이전 회사에서는 미친듯이 야근하고 밤샘해도 월급을 받으면 남는 게 없었다. 하지만 이 곳 분위기는 일정 압박도 없고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고, 점심 때 차를 타고 나가더라도 얼마나 맛있는 걸 먹을지가 최대 관심사인 곳이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연봉도 높다. 1년 계약직이지만 그래도 잠시라도 이런 곳에 몸 담아보고 싶었는데... 결국 다시 연봉은 이곳의 2/3 밖에 안 되고 사람 목을 죽을 때까지 조르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나.

  - 수정 샘은 아직 젊고 똑똑하니까 더 좋은 직장 금방 구할 거예요. 어쨌든, 이렇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요.

 

여기까지 말한 후 그녀는 갑자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애써 쾌활하게 말했다.

  - 음, 30분 후면 점심시간이니까 나랑 같이 점심 먹고 가요. 내가 사줄게요.

  - 아니예요. 괜찮습니다. 30분 있다 퇴근할게요.

  5일치 월급이라... 얼마나 되려나.

  내가 나왔는데도 K과장은 회의실에 계속 남아있다. 회의실 통유리 너머로 보니 하나로 묶은 그녀의 윤기있는 머리칼과 비싼 트렌치코트 깃이 더 귀티나 보인다. 남편은 5급 행정관에, 부인은 대학교 정규직 교직원. 대체 걱정이 뭘까? 내가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안정적일 수 있을까?




  수정 씨에게 차를 마시자고 할까 밥을 먹자고 할까 하다가, 이런 일은 빠르간단하게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수정 씨를 회의실로 불렀다. 당장 짐 싸서 돌아가라는 얘기야 어떻게 들어도 기분이 별론데 짧게 끝내는 게 낫겠지.


  대학을 졸업하고 웹에이전시에서 웹사이트 운영 업무를 2년 해봤다고 했다. 꼼꼼하고 말귀도 잘 알아들어서 내 빈자리를 충분히 채워줄 것 같아서 잘 뽑았다고 생각했다. 난이도 있고 중요한 업무는 같이 일하던 우 선생이 맡고, 우 선생과 내가 하던 업무 중 단순한 업무들은 전부 수정 씨에게 넘기기로 했었다.


수정 씨는 성적이 떨어져 교무실에 불려온 학생처럼 겁 먹은 표정이었다.

  - 수정 샘, 수정 샘 잘못한 거 없어요. 내가 사정이 있어서... 육아휴직을 안 쓰고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바고 복직하게 됐어요.

  친구가 회사에서 진급 누락될까봐 출산휴가만 쓰고 바로 복직한다고 했을 때 독하다고 혀를 내둘렀었는데, 내가 이렇게 될 줄이야.


  일반인들보다 타격이 훨씬 큰데도 연예인들이 왜 이혼을 더 많이 는지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결국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안정된 직장이 있고 결혼 후 착실이 저금을 해왔어도, 당장 서울 한복판에서 아이랑 둘이 살만 한 집을 구할 목돈이 없다. 그리고 내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아이를 봐줄 사람에게 줄 돈까지 생각하면 월급도 빠듯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혼 후 남편에게 받을 수 있는 양육비는 70만원도 되지 않는다. 아이가 나이를 먹을 수록 양육비가 조금씩 늘기는 하나, 당연히 충분한 액수는 아니었다. 아니, 아이에게 드는 비용을 반으로 나눠서 책정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제공하는 노동력과 시간은 계산하지 않고, 어째서 아이에게 드는 '비용'만을 똑같이 1:1로 나누는 건가? 아이를 보는 동안 돈은 어떻게 벌라고? 수정 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가자 갑자기 내 처지가 한없이 서글프고 초라했다.


  - 그럼, 저는 언제부터....

 수정 씨 표정이 곧 울 것만 같았다. 이제 26살. 저 친구는 무슨 걱정 거리가 있을까? 남자친구? 여드름? 다이어트?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지금 사는 집의 전세 보증금은 3억이 조금 넘는다. 남편이 결혼할 때 해온 1억을 빼고 대출 받은 1억을 빼면 1억 정도가 남는데, 그 돈이랑 그동안 모아놓은 저축액을 합쳐서 그마저도 반으로 나누면, 이 근방에서 살 집은 도저히 구할 수가 없다. 당연히 육아휴직은 쓸 수가 없다.


- 오늘자로 퇴사 처리돼요.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갑자기 이렇게 되어서.

  대학교 전산실 1년 계약직이면 그다지 좋은 일자리는 아니지만, 그 사이 정규직 공채가 있을 때 지원하면 분명 유리했을 텐데 그 점이 안타까웠다. 물론 채용하면서 그런 어드벤티지를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저 나이면 무슨 일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겠지.


  - 30분 후면 점심시간인데, 맛있는 거 먹고 갈래요? 내가 사줄게요.

  - 아니예요. 괜찮아요. 그냥 퇴근하겠습니다.

 다행히 수정씨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수정 씨가 회의실에서 나가고 나서 나는 한참을 회의실에 앉아있었다. 내가 여기에 앉아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화가 나고 믿을 수 없이 서글펐다. 아이를 낳아서 크는 모습을 볼 새도 없이 100일 된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복직해야 하고, 20대 청년이 잡았을 수도 있는 좋은 기회마저 빼앗은 꼴이 되다니.

 내가 수정 씨 나이였을 때, 30대 후반에 싱글맘이 될 걸 한 번이라도 상상해 본 적이 있던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