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그저 막연히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국문과에 가면 그냥 자연히 소설가가 되는 건 줄 알고 국문과가 갔어요.
초등학교 때는 책을 닥치는대로 읽는 아이었어요. 몇 십권짜리 전집도 이삼 일이면 다 읽었죠. 백일장, 독후감, 창작동시대회 상장 같은 글짓기 상을 80개 정도 받았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 책과 담을 쌓고 말았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엄마의 영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초등학교 때부터 입이 마르고 닳도록 엄마 친구 딸 얘기를 했어요. 그 언니는 공부도 잘 하고 글도 잘 썼는데, 떡잎부터 저완 달랐죠. 학생 때 대산청소년문학상을 타고 크고 작은 문학상에서 계속 입상을 했죠. 엄마는 그 언니의 수상 소식과 전교 등수, 선생님과 교수들에게 받은 칭찬, 장학금 액수 등을 저에게 실시간으로 생중계했어요. 결국 20대 후반에 굴지의 출판사 공모전에서 대상을 타 문학계에서 입지를 굳히게 되었죠. 지금은 자기 이름을 건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해요.
그 정도 실력이니, 저하고 비교가 되었겠어요?
그런 사람과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결혼해서까지 계속 비교를 당했어요. 엄마는 엄마 친구가 전화해서 딸 자랑하는 거 듣기 싫고 짜증난다면서 들은 얘기를 저에게 죄다 쏟아냈습니다. 상한 음식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쏟아 붓듯이요.
몇 년 전에, 제가 그 언니랑 평생 비교 당한 게 상처였다고 하자 엄마는 그 언니 남편이 장모에게 200만원짜리 선물을 했는데, 네 남편은 양산을 선물했지 않았느냐 응수하더군요.
소설가를 꿈꾸던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저는 완벽을 추구하는 불안한 직장인이 되었고, 아이에게는 엄마가 나한테 한 것과 무조건 반대로 하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하며 아이를 낳고 키웠습니다.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소설가가 되기를 포기한 적은 없지만 한 번도 열정적으로 꾸준하게 써본 적은 없었어요.
어느 날부턴가 그냥 서러운 마음을 추스리려 한 자 한 자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 때 그 때 글을 썼습니다. 글이 좋고 나쁘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끄적거렸습니다.
하지만 다른 종류가 아니라 제 첫 책은 꼭 '소설'이어야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렇게 첫 소설집이 나오기까지 힘을 주신 브런치 구독자 여러분과 편집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원치 않게 큰 딸로 태어나, 엄마의 친구이자 남편, 종교이자 삶의 희망,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느라 마음 여기저기 찔리고 피가 나고 딱지가 앉은 것도 모르고 살았을 큰 딸들에게 제 첫 소설집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