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역까지는 1분만에 도착한다. 게다가 지하상가 안에는 떡볶이가 진짜 맛있는 작은 꼬마 김밥집이 있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너댓 번 정도 떡볶이와 순대, 꼬마 김밥을 먹은 적이 있다. 모두 엉거주춤하게 서서 먹어야 하지만, 만석인 적이 많았다. 가끔은 다른 사람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먹곤 했다.
떡볶이 국물이 맵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살짝 달짝지근한데 감칠맛이 있어서, 순대를 찍어서 한 입 먹는 순간 온 몸에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몸 밖으로 한 방에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거기에 꼬마김밥까지 같이 먹으면 금상첨화다. 여자 혼자 오면 보통 3,000~4,000원어치를 먹던데, 나는 떡볶이와 김밥, 순대까지 해서 항상 6,000원어치 정도를 먹었다.
하지만 A역으로 가면,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몇 번 가본 후(주로 그 꼬마김밥집 때문에)로는 안 가고 있다.
B역으로 가려면 회사에서 8분 정도 걸어야 하고, 역 안으로 들어가서도 지하상가를 한참 통과하고 광장 같은 곳을 지나야 개찰구가 나온다. 하지만 갈아타지 않고 집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이 광장 같은 곳에도 꼬마깁밥을 파는 분식집이 있는데, 꽤 오래되고 유명한 곳이다. 앉아서 먹을 수 있는데, 여기도 퇴근할 때 보면 사람이 늘 많다.
일하는 이모님이 세 분 계신데, 세 분 모두 기본적으로 손님들을 아주 귀찮아하고 아래로 보며, 온 몸으로 짜증과 화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분들이다.
특히 현금이 없는 날은, 내가 내 돈 내고 음식 사먹으러 온 손님인지, 불륜을 저질러서 소송을 당한 상간녀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나는 지갑을 잘 안 들고 다녀서 보통 카드 결제를 했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 늘 일부러 많이 시켰다. 그래도 계산할 때는 꼭 한 마디씩 핀잔을 들어야 했다. 계좌이체를 할 수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죄송한데 현금이 없어서..."
마치 선처를 해달라고 찾아온 상간녀와 같은 자세로 카드를 내밀면,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에휴. 현금 없어, 현금? 에휴."
또는
"아니, 이런 걸 카드로 결제하면 어떻게해... 이러면 우린 남는 게 없지. 다음부턴 카드 결제 안 해줘"
차라리 얼마 이상부터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고 커트라인을 정해놓든지, 아니면 계좌이체가 가능하다고 안내를 해줬으면 서로에게 좋았겠지만, 그 분들은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한 번은, 거기 혼자 앉아서 순대랑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옆 자리 남자 손님이 갑자기 내 쪽으로 음료수를 불쑥 내밀었다.
"이것 좀 드세요."
"????"
절대 헌팅이나 이런 건 아니었다. 나보다 열 살 이상은 어려보였는데, 남자 분이 약간 외모와 목소리, 말투가 보통 사람 같지 않았다. 깍쟁이 같은 말투에, 목소리 톤은 굉장히 하이톤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줌마, 이게 뭐예요, 이게? 내장을 이렇게 많이 주면 어쩌자는 거예요?"
"????"
갑자기 그 무서운 이모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모님도 얼마나 황당했을까. 당황한 이모님은 오히려 보통 사람을 대할 때보다 108배는 더 누그러진 태도로 응수했다.
"아니, 내장이 싫으면 내장을 빼달라고 말을 하지."
"아니, 그래도 장사를 이렇게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누가 내장을 이렇게 많이 줘요? 순대 많이 먹어봤지만 이렇게 내장만 잔뜩 주는 데는 처음 봤어요."
"아휴...."
말문이 막히시는 게 당연했다.
"그럼, 다음부터는 꼭 내장 빼달라고 말을 해."
"아휴, 몰라요. 나 다 남기고 갈 거야. 돈 여기 있어요."
"????"
남자 손님이 떠난 자리엔, 그가 남기고 간 내장과 내 쪽으로 떠밀고 간 음료수가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나는 씩씩대는 이모님과 음료수를 번갈아 보다가, 이모님이 나를 그 남자 손님의 일행으로 생각할까 두려워 음료수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나는 마침 순대 1인분을 시켜서 먹고 있었는데, 혼자 먹기엔 양이 좀 많았다. 게다가 나는 내장은 좋아하지만 간은 못 먹는데, 간이 전체 순대+내장의 거의 2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간이 많이 나온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이렇게 간을 다 남겼다간 안 그래도 화가 난 이모님의 뚜껑을 열리게 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억지로 간을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정말 뻣뻣하고 쓰고 유난히 맛이 없어서 두 개 반을 먹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간을 잔뜩 남긴 접시를 이모님께 건넬 간땡이가 내겐 없었다.
그래서 이모님이 화를 삭이며 음식을 만들고 계신 틈을 타 조심 조심 긴 의자 밖으로 몸을 뺐다. 재빠르게 그러나 조용하게 일어나서 개찰구 쪽으로 종종걸음으로 내달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내 심정은 마치 적진에서 무사히 빠져나와야 하는 스파이 같았다.
그 공포스러운 곳에서 두세 번 먹은 후에는 다시 가지 않는다. 퇴근할 때, 배가 아무리 고프고 당이 떨어져도, 집에 도착하면 밥 먹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 쫄쫄 굶은 채 잠이 들 것 같아도 그 곳에서 음식을 사먹진 않는다.
그래서 A역 김밥집의 떡볶이가 무척 그립다. 그래도 A역으로 가면 한 번 갈아타야 하니 잘 안 가게 된다. 요새는 나이가 들어 그런지 전만큼 입맛도 없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