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멎었을 때
나는 죽어야 한다
어느 날의 퇴근길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랄맞은 출근과 지랄맞은 오전…
지랄맞은 말과 지랄맞은 일…
지랄맞은…
지하철에는 나의 하루가 또 지랄맞은 수백의 하루와 함께 흔들린다
덜컹덜컹덜컹
바라는 것이라고는 그저 눈앞에 자리가 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람이 얼른 일어나야 한다)
에스컬레이터 앞의 사람이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것,
(대체 왜 여기서 이렇게 꾸물럭대는지, 참)
끊어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한 맥주캔을 또 사들고 들어가는,
퇴근길, 집 앞의 화단, 그리고 쑥부쟁이…
쑥부쟁이!
쑥부쟁이가 끌어올려낸, 그리고 피워낸
그 꽃 앞에서 나는 다짐한다
시가 멎었을 때
나는 죽어야 한다
이러한 다짐 없이 쑥부쟁이는 꽃을 피워낼 수 없다
이러한 다짐으로 쑥부쟁이는,
이렇게도 푸른 꽃을 피워냈다,
검은 흙, 노란 불빛,
쑥부쟁이의 세상에는 없던 빛깔을,
쑥부쟁이는 이렇게도 피워냈다
그리고 나는,
쑥부쟁이 앞에서, 그저…
나도 쓸 수 있을까, 나도 그런, 세상에 없던 빛깔을, 과연 쓸 수 있을까, 쑥부쟁이야…
노란 불빛 아래
쑥부쟁이가 웃는다 푸른 빛으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