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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May 15. 2020

[, 쉼표] 퍼스트 8당damn

2020.04.26 새로운 모임의 출발

 서울에 이사 온 후로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아무래도 옆 건물에 살고 있는 홍이일 것이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이 엄청난 접근성을 이길 수가 없다. 걸어서 4분 정도 거리에 사는 홍이는 현재 내가 가장 자주 만나고 자주 연락하는 친구다. 게다가 둘 다 일 없는 날이 많고 느지막이 일어나 새벽 시간을 보내는 생활패턴도 잘 맞다. 그래서 종종 새벽에 싸게 나온 차를 빌려 드라이브를 가기도 한다. 3월 제주도 여행에서 서로의 운전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왜인지 그 이후로 둘 다 차를 몰 일이 계속 있어서 운전 실력이 많이 늘었다. 아직은 경차가 편한 나와, 이제는 이 차 저 차 다 몰 수 있게 된 홍이 매일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운전하고 싶다.'일 정도.


 2020년 4월 26일, 그날도 종일 운전하고 싶다, 놀러 가고 싶다, 그런 이야기만 하다가 새벽에 결국 홍이 차를 빌렸다. (나는 면허 딴 지 일 년이 되지 않아서 빌릴 수가 없다.) 적적한 마음에 혼자 집에서 술을 먹고 있던 나는 텀블러에 양주와 사이다를 황금비율로 말아 집을 나섰다. 집 앞 마트에서 홍의 차에 올라탔다. 홍이는 내 텀블러를 보고 기겁하며 '술주정뱅이는 태우기 싫다.'라고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아메리칸 같네.' 하며 감탄했다. 그리고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딱히 가고 싶은 목적지가 없었다. 어쩌지 고민을 하다 차로 30분 거리에 살고 있는 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슬프게도 웅자는 다음 날 아침 건강검진이 예약되어있어 안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또 다른 30분 거리의 동네에 사는 머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3초 정도 고민했을까, 그녀는 나오겠다고 했다. 왠지 너무 좋을 것 같다며.


 머지를 픽업하러 달리기 시작했다. 심야의 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었다.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달리며 우리는 음악을 들었다. (물론 나는 술도 마시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던가? 예전에 함께 갔던 촬영장들의 얘기, 아는 사람들의 근황 얘기 그런 것들을 나눴던 것 같다. 어찌저찌 달리다 도착한 곳은 한강공원이었다. 머지네 집 앞이어야 하는데..? 확인해보니 네비를 잘못 찍었다. 그래도 멀지 않은 곳이 머지네 집이어서 다시 돌아갔다. 머지에게 '야! 타!'를 시전 하며 픽업을 완료했다. 뒷자리에 앉은 머지는 과일 도시락을 싸왔다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락앤락 통 두 개를 꺼냈다. 메뉴는 토마토와 오렌지였다. 이 얼마나 양주에 걸맞은 안주인지! 머지에게 목적지를 정해달라고 했다. 그녀가 확신 없이 꺼낸 목적지는 팔당댐. 홍은 액셀을 밟았다.


 팔당댐을 가는 길에 머지가 싸 온 과일 도시락은 절반이 엎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가방에서 나온 치즈들은 다 내 입으로 들어가 홍이 '혹시 치즈 처음 먹는 거 아니제?'라며 놀렸다. 5명의 동방신기 세대인 우리는 오래된 동방신기 노래를 듣고 거기서 파생된 추억으로 온갖 옛날 노래들을 찾아들었다. 구불구불한 길에서 물 비린내가 살짝 나기 시작했다. 창을 열고 노래를 들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컴컴한 길을 달렸다. 팔당댐에 도착해서 내렸을 때는 새벽 두 세시 정도 되었다.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코 앞이 팔당댐이라는데 이게 물인지 칠흑 같은 어둠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머지는 조금 더 걸어보자고 했지만 네비에 찍힌 바로 앞은 공동묘지였기에 거절했다. 가로등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 똑같았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팔당댐에서 내렸을 때가 가장 웃겼다. 아무것도 없는 그 칠흑 같은 어둠이 어이가 없었다. 팔당댐 한 번 보겠다고 여기까지 달려왔건만, 세상에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가! 셋 다 어이가 없어서 계속 웃었던 것 같다. 그래도 기념하자고 셀카를 찍어보려 했으나 플래시 없이는 사진도 찍히지 않았다. 홍이와 내가 차 앞에서 두둠칫 거리는 걸 머지가 찍어줬는데, 무슨 집 앞 슈퍼 가는 사람처럼 입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뚝딱거리는 사진 같아서 정말 웃겼다. 돌아오는 길에는 무지개 빛 모텔이 있어서 또 웃었다. 그 화려한 불빛이 왜 그리 웃겼는지 모르겠다.


 출출해진 우리는 맛있는 24시 순대국밥집을 찾아갔다. 너무 맛있다며 먹는 홍과 머지를 보며 어딘지 보람찬 기분이었다. 머지가 자기를 내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같이 돌아가자고 해서 집 까지 같이 돌아왔다. 차를 반납하고 우리 집 앞에서 헤어졌다. 이미 해가 떠서 동네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별 것도 안 했고 무슨 진지한 대화를 하거나 생산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어딘지 에너지가 채워진 기분이랄까?


 헤어진 우리는 사진 공유를 위해 단톡 방을 만들었다. 이름은 '8당damn'

 모임 8당damn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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