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oating Kabin Dec 28. 2020

긴장이 풀릴 때면 마음이 급해진다

20201227

초대받았던 크리스마스 디너 덕에 올해도 정신 없이 지나갈 뻔한 크리스마스 연휴를 추억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크리스마스 쉬프트가 끝났다. 5일 동안 지겹다면 지겨울 정도로 호텔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었던 탓에 26일에 더 이상 캐롤이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심 기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크리스마스는 참 행복한 연휴이지만, 졸업하고 난 후에는 크리스마스 때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로 바빴다.

보통 일이 한창 바쁘고 난 후에는 마음에 긴장이 탁 풀리는 시간이 꼭 온다. 이번에는 오늘이었다. 바쁜 시간이 지나가니 비로소 5일 간 몸과 마음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보였다. 더군다나 오늘은 회사에서 다음 달에 다시 한번 50명 정도 구조조정을 할 것이고 무급휴가도 5일로 늘어난다는 소문을 아침부터 들은 터였다. 그냥 막막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꿈을 갖고 고생하고 고생하며 걸어온 길인데, 오랜 시간 동안 바라봐 온 산업이 코로나에 한없이 무너 저 내리는 것을 보니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아 가슴이 많이 답답했다. 회사 컴퓨터로 링크드인에 들어가 골드만삭스 리서치 부서에 이력서를 냈다. 이력서를 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그냥 리서치가 아니고 중국 자동차 산업 리서치이구나. 어떤 회사 인지도, 어떤 직무인지도 잘 찾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무작정 이력서를 내버린 나 자신이 한심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믿어 왔던 꿈을 조사도 없이 버릴 생각부터 할 정도로 내가 안 좋은 상황에 처한 것인가? 나의 호텔에 대한 열정은 사실 남한테 둘러 대었던 핑계였던 것일까?

학생 시절에는 호텔에서 일을 시작하기만 한다면 나의 인생은 너무나도 멋지고 화려하게 빛날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10살 때 해외로 가족여행을 처음 갔다. 우리의 첫 여행지는 푸켓이었는데, 그 당시 홀리데이 인 리조트에서 숙박을 했었다. 패밀리 스위트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내 눈에 가장 처음 보였던 것은 보물선 모양으로 생긴 키즈용 침대 두 개였다. 그 침대 위에서 여동생과 하루 종일 놀았다. 가끔 놀다 지치면 아버지와 함께 키즈용 풀장에 들어가 잠수 연습을 했다. 그 기억이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도 전혀 잊히지 않았다.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았던 나에게는 마법 같은 추억이었다. 그 추억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멋진 삶을 사는 걸까 하는 생각에 호텔리어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해서 현재는 해외에 나와 다국적 일류 호텔에서 일하고 있다. 그랬던 내가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며 한없이 흔들리고 있다. 직장만 믿고 살다가는 매일매일 급변하는 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릴까 봐 주식을 시작하고 코딩을 시작하고 일본어를 공부한다. 자기 계발이라기보단 살아남기 위해서 시작한 것들이다. 그 이유가 가끔씩 슬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더 이상 꿈으로 내 마음을 불태우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을 무시할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작년 4-5월부터 회사에서 무급휴가를 주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번 12월을 지내며 나는 무급휴가가 얼마나 사람을 가난하게 할 수 있는지를 체감했다. 처음에는 고작 몇십만 원이었고 예전에 받은 보너스로 충분히 충당이 가능했던 부분이었지만, 가면 갈수록 최대한 절약하며 살아가는데도 메워지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그리고 그 부분이 커져만 간다. 절약하고 절약하면서 12월 한 달을 보내다가 약속을 세 번 나가자마자 절약했던 돈이 하염없이 빠져나가 버린 것을 보며, 이렇게 살다가는 영영 가난해지는 길을 걸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사는 게 조금 덜 팍팍했을까. 하지만 코로나 시대는 이미 확산에 확산을 거듭하고 있고, 요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세상의 풍파를 정통으로 맞는 느낌이다.

어떻게든 글을 계속 써야겠다 싶어 다시 쓰기 시작한 브런치가 이렇게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될 지도 사실 몰랐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좌절감으로 하루를 보내도 사실 내가 왜 낙담하고 있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어 2-3일을 그냥 우울하게 보낸다. SNS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면서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하고 있는 습관이 무서워 최근에 폰에서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대신 조금 더 빨리 출근을 한다거나 지금처럼 자기 전에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식으로 빈 시간을 쓰니 확실히 삶이 조금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최근에 시작한 코딩이 꽤나 재밌어 노트북 용량이 정말 적은데도 불구하고 몇 기가 정도 되는 아파치 서버를 깔았는데, 크리스마스 연휴가 너무 바빠서 코딩 공부는 하지도 못한 채 며칠을 보냈다. 일본어도 언제 손을 댔는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뭐든 손에 잡으려 노력을 하니 24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사실 이렇게 계속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해도 마음이 급하니 사실 내가 이렇게 들이붓는 노력들이 잘 풀리게 될지 잘 안 풀리게 될지도 긴가민가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내가 찬 밥 더운밥 가릴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내년 12월 23일의 나는 어쨌거나 찾아온 큰 변화를 정말 잘 맞이하여 홍콩을 떠나 일본이나 뉴욕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그렇게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잠이 오지 않을 때엔 여느 날 꿈에서 보았던 고요한 설산에서 스노보드를 타는 장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린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아무도 넘을 수 없을 거라던 설산 언덕 하나를 내가 넘었다. 그 뒤에는 더 큰 언덕이 있었는데 순간 욕심이 생겨 두 번째 언덕을 향해 가파른 경사를 무섭게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언덕의 정상 언저리에 보드가 닿은 순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깊은 크레바스에 빠지고 말았다. 몇 번이고 도와달라며 소리쳤지만 그 언덕에 있던 사람은 나뿐이었기 때문에 내 고함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정말 무섭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설산이 주었던 이상하리만큼 포근한 느낌과 어쨌거나 목표 하나를 정복했다는 성취감에 요즘도 그 장면을 자꾸 그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든다. 조급함에 마구 쿵쾅거리는 심장을 유튜브 자기 계발 영상으로 달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침대에 누워 설산을 그리는 나 자신이 연상되어 자조하게 된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더라도 나는 왜 그렇게까지 조급해하는 걸까.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해 왜 그렇게 항상 심각해야 하는 걸까. 가끔은 좀 내려놓고 싶은데 계속 달려온 탓에 자꾸 심장이 쿵쾅거려서 그럴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