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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ating Kabin Dec 30. 2020

3인칭 코로나

20201230

쉴 새 없이 바쁜 하루였다. 30분밖에 안 되는 식사시간마저도 잘게 쪼개어 20분은 잠시 눈 붙이고 남은 시간에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마저도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던 손님이 발을 다치셨다 하셔서 구급 용구 좀 보내달라고 보안팀에 연락하느라 몇 분 정도는 쉬지 못했다.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는 도중에 카카오톡 알림이 떴다. 갑자기 몸살 기운이 와서 코로나 검사받고 귀가해서 재택근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띵 했지만 전화를 할 여유조차 나지 않았다. 전화를 하면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몸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너무 무서웠다. 정말 확진되면 어쩌지. 나는 한국에 없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내기에는 내 앞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죽이라도 사주고 싶어 배달의 민족을 켰다. 하지만 이리저리 뛰며 손님 안내하랴 체크인 도와주랴 하고 있는 내 매니저를 두고서 내 개인사 때문에 핸드폰을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번 달에 무리해서 적금과 CMA통장에 저축해버린 탓에 전 계좌의 예금을 합쳐도 15300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죽집 몇 개를 찾아봐도 최소 금액은 15500원부터인 것을 확인하고 동생에게 도와달라고 카톡을 보냈다. 동생도 카톡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걱정스레 답장을 보내왔다. 언니 내가 도와줄게. 자기가 반 낼 테니 죽이라도 넉넉하게 보내자, 하는 말에 고마워서 만원 송금해 주었다.

그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송금 버튼을 누르자마자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걱정 외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내 처지가 분했다. 하지만 직장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눈물을 훔치는 순간에도 몇 분 간격으로 전화는 울렸고 손님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클럽 라운지에 찾아왔다. 엘리베이터가 딩동 하고 울릴 때마다 밝고 힘차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체크인을 하고 페덱스 택배를 준비하고 매니저를 도와 틈틈이 라운지 업무도 봤다. 몸이 두 개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출근 해서부터 뛰어다니면서 일했는데도 결국 한 시간을 야근했다. 몇 번을 전화해도 받지를 않아 혹시나 쓰러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집에 가는 길 내내 불안해했다. 20분쯤 후에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 잠시 잣었다고 했다. 괜히 서운했지만 아픈 사람 두고 내 마음 서운한 것 생색낼 것도 아니니 더 자라고 했다. 점심도 저녁도 내가 사 준 죽은 안 먹고 집에 있는 갈비탕을 먹었다고 했다. 서운했다. 하지만 제 몸 챙기느라 정신없을 사람한테 투정을 부릴 것도 아니었다. 속상한 마음을 꾹 누르며 증상은 어떻냐고 물었다. 열은 잘 모르겠는데 근육통이 너무 심하다 했다. 울컥했다. 진짜 코로나인 거 아냐, 하면서 마음이 쉴 새 없이 요동쳤다. 몸살감기약이라도 먹어야 하니까 약국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길래 ‘정말 양성 뜨면 그 약국도 이틀 이상은 문 닫아야 하잖아.’ 라며 모질게 말해버렸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몸도 마음도 지친 탓에 한번 동요하니 쉴 새 없이 걱정되었지만 자기 챙기기도 힘든 사람한테 내 감정의 무게까지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자라하고 끊으니 그제야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그저 너무 걱정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어떡해 하며 발만 동동 구르는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2020년 12월 30일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몸과 마음이 힘들고 마구 흔들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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