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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ating Kabin Jan 09. 2021

가난과 낭만 사이

20210109

요즘 들어 홍콩이 부쩍 추워졌다. 어제 한국은 영하 21 도를 기록했다지만 그에 못지않게 홍콩도 습도가 높은 탓인지 뼈를 에는 듯이 춥다. 무엇보다도 집에 난방 시설이 없어서 기온이 10 도 밑으로만 떨어지면 정말 너무너무 춥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역시 올해도 1 월 초는 지독하게 춥다. 사실 춥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난방 시설이 되어 있는 신식 건물로 거처를 옮기거나, 전자 샵에 가서 히터를 하나 사면 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 돈이 없다. 여유 자금이 정말 작게나마 생기더라도 모조리 저축해버리고 만다. 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쓸 수 있는 돈 따위는 없다.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나에게는 일하는 날이다. 일곱 시쯤 일어나서 단어책을 잠깐 보고 한 시간 후 길을 나섰다. 옷을 갈아입는 와중에도 너무 추워서 닭살이 돋았는데, 길을 나서니 바깥 찬 공기가 소매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벌벌 떨었다. 한 번이라도 집에서 더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더운 적이 한 번 있긴 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아는 언니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갔을 때였다. 집이 참 예쁘고 난방이 정말 잘 되어 있어서 정말 부러웠다. 나도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돈이 없다. 나는 가난하다.

가난. 모든 것이 번쩍번쩍한 홍콩에서는 참 낯선 말이다. 홍콩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잘 사는 것 같다. 모두가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고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한다. 모두가 좋은 복지와 좋은 환경 속에서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멋진 명품도, 넓고 근사한 집도, 고가의 옷도 없다. 심지어 히터도 없어서 퇴근해서는 그나마 가장 따듯한 침대에 박혀 나오질 않는다. 가끔 괴리감에 먼 산을 바라볼 때면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화려한 마천루와 거리를 달리는 형형색색의 고급 차들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살아야 되나 생각하게 된다. 어리고 철없던 나는 종종 가난을 낭만으로 여기곤 했었다. 이상의 날개를 막 읽고 난 후부터였다. 나는 집이 어수선해도, 후줄근하게 옷을 입고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가난은 자유라는 이름 아래 참 멋진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낭만을 삶에 치여 한동안 잊고 살았다. 졸업하고 한창 집을 찾을 때에는 이 빌딩 숲에서 내 보금자리 한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했었는데, 어렵사리 집을 찾은 후부터는 그랬던 나의 소원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불편함은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럴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달리기만 했다.


나는 언제쯤 여유롭게   있을까? 자금도, 월급도, 타이틀도 초짜인 나에게 현실은 겨울철 출근길처럼 쌀쌀맞다. 미래의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오늘의 일상을 웃으며 추억할 날이 올까? 그때가 언제가   모르겠지만 미래에는 지금의 불편함을 회상하며 하하 웃을  있을 정도로 여유 있고, 똑똑하고, 프로페셔널한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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