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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ating Kabin Jan 11. 2021

오늘의 할 일

20210111

오늘은 드디어 신년이 밝고 난 후 첫 휴일다운 휴무 날이다. 신년 기간 직후 쉬었을 때는 허겁지겁 잠을 몰아 자고 필요한 것들을 처리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5일을 다시 바쁘게 일하고 드디어 찾아온 황금 같은 이틀의 휴무인 만큼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최근에 회사에서 잡담을 나누다가 매니저님께서 농담조로 우리에게는 10일 정도의 자유시간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매니저님의 말에 나는 "아, 황금 같은 240시간이겠네요"라는 말로 응수했다. 지나가듯 이야기 한 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황금 같은 240시간이라는 말이 뇌리에 계속 남았다.


호텔리어는 산업 특징상 남들 일할 때 쉬고, 쉴 때 일해야 하기 때문에 휴무일이 곧장 토 일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 활용의 자유도도 남들에 비해 높다. 마음먹기에 따라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몇 시간이고 늘어져 자도, 아무 시간에나 헬스장에 가도, 그림을 그려도, 카페에 가도 인파는 항상 한산하다. 내가 무엇을 해도 나에게 잔소리하는 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가장 어렵다. 비슷한 또래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학원에 등록하고 독서 모임이라도 가입할 텐데, 애초에 수업 시간에는 다음 날 새벽 조를 위해 취침에 들었거나 호텔에서 근무 중인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습으로만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안쓰럽다는 표정과 "힘들겠네요"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호텔리어라서 더 힘들고 더 편한 점은 딱히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산업에서 마주하게 되는 고충과 처한 환경이 다르듯이 호텔리어에게는 '개인플레이'가 미션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며 매일을 살아간다. 나처럼 남들과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성장과 발전의 주 매개체가 자습일 뿐이다. 물론 그만큼 결단력도 강해야 한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환경에서 24시간을 쉬기 때문에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않으면 그저 침대에 누워 폰만 보면서 하루를 낭비하기가 정말 쉽기 때문이다.


이번 달 나의 목표는 "휴무일에는 11시 전에 일어나기"이다. 원래는 7시로 하려 했지만 처음부터 나 자신을 너무 채찍질하면 너무 쉽게 풀어질까 봐 목표치를 쉽게 잡았다. 일할 때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 탓인지 휴무일만 되면 11시쯤 눈을 뜨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11시에 일어나면 하루가 너무 빨리 간다. 나는 조깅도 하고 싶고, 단어도 외우고 싶고, 프로그래밍도 공부하고 싶은데 침대에서 빈둥대다 보면 어느새 저녁 8시일 때가 너무 많다. 포스트 팬더믹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는데, 시기가 도래했을 때 나 역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코딩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서려면 자유도 높은 휴무일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우선 폰에서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대신 To-Do-List 어플을 깔았다. 우리 회사는 빌 게이츠가 메인 주주여서 그런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프로그램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언제든지 클라우드를 통해 내가 작성한 리스트를 체크해 나갈 수 있으니 탄력 있게 그날그날의 할 일을 성취해 나갈 수 있어 좋다.


10시쯤 오들오들 떨며 일어나 찬 손으로 열심히 키보드 두드리며 작성한 오늘의 기록이 미래의 나에게는 어떻게 읽힐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오늘의 나는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갈 작정이다. 이 여정의 종착지가 어디가 될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으니 참 행복하다. 내가 사랑하는 산업의 미래를 위해 프로그래밍을 열심히 공부해서 호텔의 미래를 지휘할 수 있으면 좋겠다. 테크 마법사가 되는 그날까지!


사실은 글을 쓰려고 앉은 것이 아니라 미뤄둔 CSS 수업을 들으려고 앉은 것이었다. 오늘 홍콩은 10도 정도로 기온이 조금 올랐는데 그래도 우리 집은 난방 시설이 안되어 있어서 많이 춥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젊지만 가난하기에 어수선한 낭만도 있다며 멋진 척을 한다.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옆에는 어제 먹다 남은 과자봉지가 있는데 그 탓에 자꾸 달달한 냄새가 난다. 집이 좀 작아서 그런지 조금만 어질러져 있으면 집이 어수선하다. 귀찮기는 하지만 오늘 꼭! (할 거 하다가 지루해지면) 집 청소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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