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진 Jan 15. 2022

'초식동물'도 행복해야 해

정글같은 세상에서


얼마 전에 TV 프로그램인 '싱어게인2'를 보다가 어느 한 참가자의 인터뷰에서 마음에 쿵하는 울림이 있었다. 아마도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노래나 혹은 이름은 한번 들어봤을 법한 밴드 '브로컬리너마저'의 리더 '윤덕원'님이 무명가수들의 경연무대에 무명가수로 참여를 한 것이다. 워낙 오랫동안 활동한 밴드여서 심사위원들도 '너가 왜 나왔어?' 이런 놀라는 분위기였는데 윤덕원님(12호)은 본인 스스로 정의하기를 '나는 초식동물인 가수다'로 본인을 소개했다. 


JTBC '싱어게인2'



음악계가 정글같은데 
다른 사람들처럼 이빨이나 발톱이 없이 
초식동물처럼 배회하는 거 같아요.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음악 혹은 노래라는 장르를 사랑했기에 가수라는 직업을 선택했을텐데 오랜 기간동안 활동하면서 본인이 몸담고 있는 음악계를 정의내린 한마디가 '정글'이라니. 디즈니 정글북의 우정이나 밀림의왕자 타잔의 낭만, 놀이동산의 사파리투어 정도를 이야기한 것이 분명 아닐테니 이 '정글'이라는 정의가 주는 무게감은 TV너머로 듣는 내게도 꽤 묵직하게 다가왔다. 정글의 초식동물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도 연상이 되긴 하지만 그와 함께 육식동물의 먹잇감으로 희생되는 이미지가 오버랩되기 마련이다. 






웹툰 '미생'에서 오과장이 퇴사한 전직장동료를 만나 술한잔 기울일 때 이런 대사가 오간다. 


윤태호 '미생'

한두마디로 어떤 필드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 느낌만은 무엇보다 명확하게 전달되는 순간이 있다. 내 가정, 학교, 일터, 부모와 자녀사이, 부부사이, 친구사이, 혹은 한사람의 시민으로서 나라를 바라볼 때 꼭 그 무언가를 정의내릴 필요는 없겠으나 그럼에도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이 있다면 그것으로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회사가 전쟁터이고 밖은 지옥이라는 표현은 좀 더 팩트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머리로 공감할 문장이라면, 음악계는 정글과 같다는 정의는 무언가 좀 더 서글프고 먹먹한 느낌이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필드, 그 안에서 웃고 울고 감동하며 괴로웠던 모든 순간들을 통칭하는 한 문장 안에서 윤덕원님의 고민이 고스란이 묻어나고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브로콜리너마저'의 곡을 아주 많이 알지도 못하고, 윤덕원님도 TV에서 두어번 정도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좋아했던 노래가 '졸업'이라 싱어게인에서 '졸업'을 불러주길 바랬지만 아쉽게도 다른 노래를 부르셨고 어떤 노래인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사실 임팩트는 거의 없었던 거 같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가끔씩 '졸업'의 후렴부가 머릿속에서 맴도는 순간이 있었는데 윤덕원님의 인터뷰를 들으니 이 곡의 가사가 예전과 달리 좀 더 크게 다가온다. 오래 전 노래이지만 그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닌, 본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서전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cUfzIs_eeuQ

브로콜리너마저 '졸업'




2016년 09월 케냐 나이로비국립공원. fujifilm X-T2. photo by 어진


매거진의 이전글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이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