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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Mar 19. 2022

우리들

노리플라이


우스갯소리로 미국에서 네비를 찍으면 '858km 앞 좌회전입니다.' 라는 안내가 나올 정도로 길들은 길고 그만큼 단조롭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는 '광야에 서 있는' 어느 한 장면과, '광야를 달리는' 어느 한 순간을 떠올리며 설레지만 실제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면 그 소요되는 시간만큼 고스란히 광야에 서 있거나 광야를 달리게 된다. 자동차 여행을 하는 7일 동안 대략 2,500mi,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로 환산하면 4,000km 정도를 달리면서 고독을 즐기거나 철학적인 생각을 하기보단.. '지겹다' , '힘들다', '배고프다' , '덥다', '심심하다'는 원초적이며 부정적인 형태의 감정들이 거의 대부분 지배적이었다. 대개 상상과 현실의 간극은 어느 정도 존재하기 마련이고, 우리의 생각은 대개 즐거웠던 어느 한 면만 편집해서 슬라이드로 보여 주기에 그 좋았던 찰나의 순간을 계속 떠 올리게 마련이니까.


california. fm2. film



그러다가 때로 낯설고 신선한 풍경이 나올 때면 '와.. 역시 오길 잘했다' 라며 스스로를 독려한다. 어찌되었든 여행은 시작했고, 나는 아주 먼 타지의 이름도 생경한 어딘가에 위치해 있으며, 결국 온 만큼의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 구글 맵을 열어 내가 있는 위치를 검색하면 사실 눈 앞이 깜깜하다. '언제 여기까지 왔지.. 언제 돌아가지..' 그래도 감사한 건 언젠가 결국 돌아갈 곳이 있으니 지금을 즐기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때마침 블루투스로 연결한 차 안의 스피커에서 '노리플라이'의 '우리들'이 흘러 나온다. 젊은 날의 열병을 소심한 범생이가 읊조릴 법한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에 담아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더 극대화시켜주는 권순관의 목소리. 내리쬐는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의 길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듣기에 잘 어울리는 분위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용히 가사에 집중해서 가만히 따라 부른다.


아파했던 시간, 막연했던 미래
그 모든게 끝나긴 하는 걸까..
여전히 내겐 어려운 일인걸.


'막막하다'는 단어가 주는 사전적 의미를 알 수는 없으나 이 노래의 한 구절만큼 실제적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는 설명을 경험하지 못했다. 지금 내 눈 앞에 있어 내가 달려가야 할 길, 잠시 미뤄두고 온 더 큰 현실들. 언젠가 계속 달리면 그 끝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끝이 있기는 한건가? 다만 분명한 건.. 나만 막막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고 그 알 수 없는 동질감이 이 순간만큼은 내게 위로가 된다.



 똑같은 하루 속에 텅 빈 마음을 숨겨둔 채
시시한 농담에 웃어대며 그렇게
긴 하루 지나가고 엉킨 마음을 끌어안고
난 불을 끈 채로  오늘도 내 마음은 흘러가는 꿈이여
여전히 내겐 다 어려운 일인걸



삶의 의미를 찾고자 떠나온 여행에서 순간의 설레임은 금새 증발하고, 그조차 하나의 커다란 일이 되었다. 깜깜하고 굴곡져 위험천만한 1번 국도 위에 앞으로도 50mi은 더 가야 마을이 나오는데 이렇게 1-2시간을 운전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 어디서 잠을 자야 할지, 무얼 먹어야 할지와 같은 본능적인 반응 앞에서 나라는 사람은 철저히 현실주의자가 된다. 아니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모두 제각각 따로 놀다가 뒤섞이며 이를테면 '외로운데 배가 고프고 쓸쓸한데 졸음이 쏟아지는' 그로테스크한 인간이 되어 간다. 마치 텅 빈 마음으로 시시한 웃음을 지으며 하루를 보낸 뒤, 불을 끄고 누워서 난 뭐지? 라는 물음처럼.


여행 둘째날에 묵었던 세도나의 오래된 모델. fm2. film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지 어느 새 2년 반 정도 훌쩍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이 노래를 일부러 찾아서 듣곤 한다. 그때 느꼈던 막막함과는 다른 종류일테지만 그럼에도 잔잔하게 흐르는 목소리와 가사는 여전히 같은 무게로 위로가 되어 준다.


https://youtu.be/NQAtBlCYAA4




미국의 어느 렌터카에 본인 얼굴이 뜨는 걸 순관이형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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