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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Mar 21. 2022

낭만이 흐르는 밤.

like a LALALAND

아마도 '라라랜드'를 본 이들은 기억할 텐데 세바스찬과 미아가 서로의 호감도를 느끼며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이 '그리피스 천문대'였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하늘로 날아 춤을 추는 장면을 영화에서 보여준다.LA에 가기 전날 노트북에 '나의 아저씨' 전편과 함께 이미 극장에서도 여러 번 보았던 '라라랜드'를 담은 건 어쩌면 필연적인 이유였을 테다.


LA의 형네 집에 도착한 둘째 날, 형과 형수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서 다 같이 조카들을 라이드 한 뒤, 코스트코에 가서 잠시 장을 봤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오후 4시.. 형에게 이야기해서 차 키를 건네받고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리피스 천문대'로 향했다. 이미 15년도에 가족들과 함께 방문해서 천체관까지 둘러보았음에도 '라라랜드'에서의 그 장면 이후로 다시금 이 곳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형네 집에서 대략 50분 정도 거리이니 아마 지금쯤 출발하면 조금 밝을 때 언덕에서 LA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차를 몰았음에도 전혀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이미 퇴근시간에 접어든 LA 시내의 교통체증은 어마어마했고, 차는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뿐, 길이 뚫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4년 만의 운전이다 보니 약간은 긴장도 되고, '그래 뭐 급할 거 있나? 천천히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찰나 하늘이 노을로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아! 노을이라니...!!' 그때부터 다시 마음이 조급 해지며 평소보다 심장이 살짝 빠르게 뜀을 느낄 수 있었다.


집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네비가 알려주기로는 거의 다 왔다고 하는데 막판에 차선을 잘못 타서 직진을 못하고 우회전을 해야 했고, 그 바람에 10분이나 더 돌아야만 했다. 평소에 잘하지 않는 실수를 꼭 이런 순간에 한담. 스스로를 자책할 겨를도 없이 차를 달려 정문 앞으로 왔더니 이미 그곳의 주차장은 만차이고, 저녁의 풍경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꽤 붐비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길가의 주차장을 이용하려고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빈자리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 후에 다시 차를 타려고 천문대부터 내려오는 길에 '차를 도난당했나?' 싶을 정도로 엄청 많이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하긴.. 라라랜드에서도 미아가 턱에 리모콘을 대고 주파수를 높이는 것처럼 그 길이 엄청 길긴 했었지. 아무튼 그렇게 부랴부랴 주차를 하고서 넉넉하게 3시간 주차권(한화 2만원)을 끊어서 티켓을 유리창 앞에 둔 다음, 뒷좌석에서 카메라며, 삼각대며 정신없이 꺼내어 이고 지고 메고는 미친 듯이 오르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노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아주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보고자 달리면서 든 첫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 내가 그래도 사진 찍기를 제법 좋아하는구나' 평소에 걷는 것조차 싫어서 가까운 거리도 웬만하면 거의 차로 이동하는 내가 심지어 달린다니, 그것도 오르막길을, 그것도 카메라를 들쳐 메고. 아마 서울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은 이곳이 LA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LA의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과 선물처럼 걸려있는 달. fm2 film.

달리는 도중에 끝까지 미처 올라가지도 못하고 중간 즈음 급하게 삼각대를 꺼내어 설치를 하고서, 카메라 3대 중 필름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 노출을 맞춘 뒤 사진을 찍는다. 그 후에 다시 디지털카메라로 셔터를 연신 누르고 나니 조급했던 마음이 안정을 찾아간다. '그래 이거면 됐어. 오늘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이 사진들로 충분해' 그럼에도 주차장에서 3시간짜리 2만 원의 티켓을 끊었기에 3시간의 여유는 어찌 되었든 누려보기로 한다. 주섬주섬 장비들을 다시 챙겨서 이고 지고 메고는 천문대 위로 올라가 '라라랜드'의 주인공들이 거닐었을 그곳을 상상하며 나도 혼자 그곳을 괜히 서성거렸다. 이미 해는 지고 어둠이 내려 사진을 찍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지금 여기 아름다운 LA에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조금 더 가야하는 '그리피스 천문대' 둥근 지붕이 아름답다. fm2. film.


밤하늘을 즐기는 사람들. Leica m6. film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진자. Leica m6. film

https://youtu.be/VFUos9sYb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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