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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어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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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Mar 23. 2022

늦은 밤의 인앤아웃.

형과 함께 보낸 시간.

휴양지처럼 보이는 일상의 장소. fm2. film.
밤늦게까지 열심히 사는 사람들. fm2. film


여행 중에 설레는 순간은 이방인인 내가 현지인들의 안으로 한발자국 더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사실 사람 사는 모양새는 어디나 거의 비슷비슷하겠지만 그래도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나라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존재할 테니까. 형이 거주하는 '오렌지카운티'는 LA 다운타운에서 차로 대략 50분 정도 거리에 있으며 약간은 변두리로 봐도 좋을 만큼 복잡하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건물들은 넓은 대지에 대개 3층을 넘지 않고, 도로는 사각의 형태로 잘 정리가 되어 있다. 곳곳에 공원이 넓게 있어서 아침마다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하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헌팅턴비치가 차로 20분 정도면 갈 수 있어서 참 좋다. 어느 새 3번째 방문이다보니 이제는 제법 큰 길들을 보면 어디쯤인지 감이 잡히고, 곳곳에 위치한 가게들도 조금씩 눈에 익어간다.


글로벌시대에 스타벅스, 맥도날드, KFC, 피자헛 등 한국에도 런칭되어 있는 브랜드들은 익숙해서 오히려 그곳으로는 잘 가지 않고, 약속을 잡더라도 데니스, 잭인더박스, 치폴레 등등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매장들을 한번이라도 더 경험해보고 싶어서 일부러 가곤 한다. 그 중에 최고는 역시나 미 서부에만 있다는 인앤아웃버거인데, 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본인들이 커버할 수 있는 지역으로 한정해서 매장을 오픈한다. (미 동부는 쉐이크쉑 버거가 유명하다) 그렇기에 LA에 오면 한번은 꼭 들려야 하는 필수코스가 인앤아웃버거이다.


그리피스천문대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밤 10시. 형수와 조카들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고 형은 거실에서 쉬고 있다.

"잘 다녀왔어?"

"응 좋았어. 형 저녁 먹었어?"

"먹었지. 너는?"

"나는 아직 못 먹었는데.. 인앤아웃 갈까?"

"그럴까? 가자"

급하게 촬영도구를 내려놓고서 필름카메라 하나만 어깨에 걸고는 형이 시동을 거는 차에 올라타니 노곤하게 졸음이 밀려온다. 다행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인앤아웃버거가 있고, 지난 4년전에 왔을 때는 줄을 길게 서서 간신히 포장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저녁 때를 지나서인지 매장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그냥 햄버거 하나 먹으러 온 것 뿐인데.. 이국적인 생경한 장소에서 형과 이렇게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니 어쩐지 기분이 묘하다. 마치 몇 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며칠 전에 본 사람처럼 친근하면서도 이제는 왠지 서로를 모르는 낯선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같은 핏줄이면서 외모도 성격도 모두 다른 우리는 이만큼 멀어져 있었다.


"피곤하지 않아?"

"응 아직은 괜찮네"

"내일 어디로 가?"

"아침에 일찍 데스밸리로 가려고"

"그래 조심히 다녀와.. 좋은 시간 보내고"


사실 인앤아웃의 버거 맛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4년 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생양파를 넣었을 때는 양파맛으로 먹은 듯 하고, 이번에는 양파를 빼달라고 하니 그냥 치즈와 패티, 양상추 정도의 맛이 어우러진 평범한 버거였다. 그럼에도 그냥 흘러갈 수 있는 시간에 버거를 핑계로 형과 함께 둘이 보낼 수 있음이 좋았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이렇게 둘이 마주하는 자리가 어느 때 허락이 될지 가늠할 수 없는 결연한 밤이 그렇게 깊어졌다.


19년도의 형의 모습. fm2. film.
어떤 맛이었는지 다시 먹으러 가고 싶다. fm2.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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