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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Dec 25. 2019

병원 일기 1

20191209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 하니씩 옮깁니다.)


병원 일기 1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요?

토요일 아침 형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불길했습니다.
병원 응급실이었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직접 119에 전화해서 왔다더군요.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불과 이틀 전이네요.
긴 시간이었습니다.
차라리 생명이 위독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까요?

형님은 혼자이고
대부분 혼자 살았습니다.
삶을 즐길 줄 몰라서 늘 술만 마셨습니다.
언젠가부터 형님의 말과 걸음이 어눌해지는 것도
그런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따금 만나거나 통화하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만 했었죠.
잠시 같이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분가를 한 후 가장 좋았던 것은
술 마시는 모습 안 보는 것이었습니다.

절대 병원 안 가는 사람이
스스로 119에 전화했으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응급실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오자마자 무턱대고 수술부터 해달라고 했답니다.

형님은 현재 혼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부축을 해도 2m 앞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험난합니다.
수저만 겨우 들뿐, 젓가락질도 못하고
배변 활동도 어려워합니다.

토요일 MRI를 찍었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왔는데
뜻밖에도 목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추가로 CT를 찍었습니다.
오전에 의사가 저를 불렀습니다.
경추 후종인대 골화증
초기가 아니라 말기(?)입니다.
어눌한 걸음으로 걷다가 행여 넘어져서
사지가 마비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119에 전화하기 며칠 전부터 기어 다녔답니다.
밥은 어찌했냐니까 굶었답니다.
술만 마셨다고.
화나지 않았습니다.
미안했습니다.

일요일 저녁 의사가 저와 형님을 함께 불렀습니다.
저는 이미 아침에 들은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형님은 어리둥절했겠죠.
최대한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전 그 말이 그렇게 고마웠습니다.
오전에 소견을 들은 이후 하루 종일 피가 말랐습니다.
행여 수술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까 봐요.

병실로 돌아온 후 형님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변기에 앉아 소변을 보면서 그러더군요.
난 허리가 아픈데 무슨 목이냐고.
견적 올릴라고 그런다고.
그제야 말했습니다.
난 이미 아침에 다 들은 이야기고
하루 종일 피가 말랐다고.
수술한다니 그게 고마워 죽을 지경이라고.
다른 환자 들을까 봐 화장실에서 그 이야기를 하며
결국 형 앞에서도 울고 말았습니다.

2~3일 안으로 수술할 예정입니다.
많은 것이 두렵습니다.
그 흔한 보험도 없고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니까요.

제가 중1 이전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에 남은 삼 남매.
누님도 성치 않으나 지금도 공장에서 일하고
저 역시 그저 불안합니다.
친구들이,
네가 가장 오래 살 거라고 말할 때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습니다.

형님 상태뿐만 아니라
삼 남매가 모두 걱정인 상황.
삶이 더 비루해졌던 이유입니다.
누님에게 전화로 못할 소리도 했습니다.
우리는 저주받은 삶이라고.
이틀 사이에 삶이 너무 비참해졌습니다.
미련한, 혹은 대책 없는 삶을 살았다고
탓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삶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수술하면 좋아질 것이니까요.
그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24시간 형님 옆에 있어야 하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형님 앞에서 눈물 참는 게 어려울 뿐입니다.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아이가 되어 버린 형이 예쁘기도 합니다.
밥 먹는 것도 도와줘야 하거든요.

앞으로 제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선 당장, 수술 후 퇴원하면
제 집으로 데려가서 같이 있어야 하니까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달라지거나
생각했던 것이 기우에 불과하게 되거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너무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지만
일단 괜찮습니다.
형님을 살피기는커녕,
내가 나도 책임질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이 그저 막연한 가능성이나 우려가 아니라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라면.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두려운 미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괜찮습니다.

어제 올렸던 글은 1시간쯤 후 내렸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걱정 끼치는 글이었습니다.
위로와 걱정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이 자칫 삶을 더 구차하게 만들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어제 잠시 올려두었던 글 때문에
뭔가를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글을 그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글 정도로만 읽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게시' 버튼도 몇 번을 망설이다 누릅니다.
이제 밝은 글만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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