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찾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실패하리라
또 도졌다. 영어 공부 병이.
최근 조깅을 시작하면서 운동 뽐뿌를 받기 위해 <마녀체력>을 읽었는데, 그중 한 구절에 꽂힌 것이다.
반백 년을 살아 본 경험으로 나는 독서에다가 두 가지를 더 덧붙이곤 한다. 독서, 그리고 운동과 외국어다. 우리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세 가지, 사람을 매력 있게 만드는 세 가지이기도 하다.
출산과 육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가 올해 초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숨통이 트인 참이었다. 하던 일도 제작사의 검토 단계로 넘어가 당장은 마감에 치이지 않아도 되는 상황, 한마디로 자기 계발 의욕이 샘솟기 딱 좋은 시기였다.
'운동은 조깅을 시작했고, 책도 틈틈이 읽고 있으니 이제 외국어만 하면 되겠군! 그래, 이 참에 나도 영어를 정복해 보자!'
야심 차게 포부를 다잡으며 친구가 추천해 준 영어 학습지를 검색해 보았다. 다수의 후기를 읽고, 이런저런 이벤트에 혹하여 결제 버튼을 누르기 직전, 문득 나의 영어 공부 여정을 돌아보았다.
종로의 유명 어학원, 다녀봤다.
출근길 라디오 영어, 해봤다.
한때 유행한 팟캐스트 영어 방송, 들어봤다.
그뿐이랴, 화상 영어는 물론 주말마다 영어 소모임도 다녀봤다.
막말로 안 해 본 게 없는데 실력은 제자리다.
그러다 문득, 근본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근데 나, 왜 영어 공부 하려고 하지?
<마녀체력>을 읽으면서 다른 뽐뿌도 받은 게 있는데 바로 수영이다.
내 경우, 무엇을 배우든 최소 6개월은 배워보고, 그래도 재미없으면 그만두는데 수영이 딱 그랬다. 6개월 하고, 호흡이 좀 트일 즈음 영 재미를 못 붙여서 그만뒀다.
그때의 목적은 다이어트였다. 근데 생각보다 몸무게가 확 줄지 않았고, 재미도 없으니 더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왜냐, 명확한 목표가 생겼으니까!
좋은 호텔에 가면 근사한 수영장이 있다. 최근 가족과, 또 친구들과 호캉스를 몇 번 갔는데 그 좋은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앞으로 좋은 호텔에 갈 기회는 또 생길 테니 그전에 수영을 꼭 배워두고 싶었다. (기왕이면 크게 성공해서 해외 유명 호텔들을 다녀볼 야심 찬 포부도 가져본다)
이건 눈에 보이는 생생한 목표가 있다. 다시 수영을 배운다면 아마 쉽게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반면 영어는 이렇게 눈에 잡히는 생생한 목표가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영어를 잘하면 멋있으니까', '아이가 영어 공부할 때 도움이 되겠지' 생각할 따름이다.
아이를 낳고 나니 후자의 목적이 좀 더 커졌는데 정작 아이에게 어떻게 영어를 가르칠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영어 동화책을 활용할지, 노래를 활용할지, 그에 따라 내 영어 공부도 달라질 텐데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친구가 좋다는 학습지를 또 덜컥 결제하려 든 것이다. (이렇게 또 기부천사가 될 뻔했다)
돌아보니 그나마 영어 공부가 제일 잘된 때는 유럽 여행을 6개월 앞둔 때였다. 그때는 투잡을 뛰는 와중에도 주말마다 영어 소모임에 나가서 회화를 공부했다. 당장 6개월 뒤에 외국에서 영어로 기본적인 소통을 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영어를 해야 할 절박한 이유도, (앞선 수영처럼) 영어를 배워야 할 가슴 설레는 목표도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 어떤 획기적인 학습법으로 공부해도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왜 번번이 영어 공부에 실패했는가.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명확한 목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막연히 "잘하면 좋으니까", "남들 다 하니까" 정도의 목표가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절박하거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목표를 갖기 전까지는 영어 공부를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영어 공부만이 아니라 그 어떤 일이든 Why를 찾기 전에 How나 What을 먼저 찾으면 결국 시간 낭비, 돈 낭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번 사태의 교훈으로 삼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