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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Nov 27. 2019

거리가 애정에 미치는 영향(ft. 빨간머리 앤)

<빨간 머리 앤>의 주인공 앤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요즘말로는 볼꼴 못 볼꼴 다 봤을) 한 동네 친구 길버트 브라이스와 결혼한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길버트가 다른 동네로 이사갔거나 아예 에드워드 프린스 섬이 아닌 곳에 살았더라도 둘의 인연은 계속 되었을까?



대학시절 앤이 길버트의 애정을 거절하고 로이와 꽤 깊은 연애를 하는 동안에도 길버트는 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친구로써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까워지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않는다. 결국 로이의 프로포즈 순간이 되어서야 앤은 사실 자신의 마음 속에 누가 있는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길버트에게는 이미 새로운 여친이 생긴 듯. 처참한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앤은 길버트의 위독 소식을 듣고 영혼의 어두운 밤을 보내며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오랫동안 앤을 바라본 길버트와 맺어진다.



이는 두 사람이 항상 공통의 영역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SNS가 없어도 한동네에 살면 온갖소소한 소문이 현관문을 넘나들기 마련. 두 사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로의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보니 <빨간 머리 앤>에는 미스 라벤더와 같이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살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옛연인과의 재회, 한 동네에 사는 꽤 오래된 연인들 얘기가 많이 등장한다. 젊었을 때 홧김에 헤어진 후, 오랜 시간의 후회와 기다림, 재결합 뭐 이런 패턴이다.



이를 볼 때 애정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거리감이다.

비록 나이들어 모습은 변했을지언정 상대를 매혹시켰던 본질이 여전할 때 사랑의 유효기간은 연장된다. 반면 거리감은 고무줄에 가깝다. 여전함을 깨닫는 순간 거리감은 순식간에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아사코를 아니 만났어야 했다고 말하는 배경에는 그 세월동안 그녀의 변화하는 삶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SNS가 있어서 계속 소식을 접했다면 그처럼 쓰디쓰게 돌아서지는 못했으리라. 앤과 로이도 그렇게 깔끔하게 끝내지 못했을껄(훗).



물리적 공간을 거침없이 뛰어넘는 SNS의 시대에는 잊는 것도 잊혀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거리를 좁히고 싶은 생각이 아예 나지 않도록, 밑바닥을 볼 때까지 '지금' 치열하게 연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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