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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c Sep 02. 2015

메간의 풍선


사진 찍을 때는 꼭 폼을 잡는다

메간(Megan) 이는 올해 7 살 난 여자 아이다. 그의 별명은 천방지축이다. 너무 장난이 심하고 남자 아이들이 하는 것을 다 하려고 해서 내가 지어준 별명이다. 우리 집사람은 남의 집 여자아이의 별명을 왜 그렇게 사나운 이름으로 짓는가 라고 불평 했지만 메간 엄마는 마다하지 않고 그렇게 부른다.  

우리가 메간 식구와 알게 된 것은 약 5 년전 보스턴에서 이곳, 싼타바바라 (Santa Barbara)로이사 와서였다. 메간을 아는 모든 사람은 메간을 사랑하고 예뻐 한다.아니 예뻐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운 아이다.


메간은 형제가 없다. 그리고 아빠도없다. 메간은 엄마에게 자꾸 동생 하나를 더 낳으라고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그냥 웃을 수밖에 없다. 메간은 영어와 한국어를 둘 다 잘 하는 편이다. 가정이 힘들고 어려워도 메간 엄마는 한글을 쓰게도 하고 말 하도록 교육 시키고 있다. 동네 미국 아이들 하고 싸울때만 빼놓고는 한국말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특히 할머니하고 대화를 할 때는 반드시 한국말을 한다.


나는 메간이 울 때가 가장 귀엽다. 메간은울 때 자기가 왜 우는지를 꼭 말 하면서 운다. 예를 들면 엄마가 쵸클리트(Chocolate) 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가 너무 많이 먹어서 못 먹게 했기 때문에 우는 경우라면 이렇게 한다.


"흑흑(우는 소리).. 엄마가 나한테 흑흑 그것을 먹어도 된다고 하구선 흑흑이제는 먹으면 안 된다 구 하잖아 흑흑 나는 거짓말 하는 사람이 흑흑 제일 싫어 흑흑."


메간은 큰 눈을 가졌다. 그 큰 눈으로부터 눈물을 툭툭 떨어뜨리며 울면서 또박 또박 말 하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귀엽고 또 웃음이 나온다. 사람들은그 모습이 귀여워서 메간 엄마에게 메간을 좀 울려 보라고 할 정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은 이 아이를 예뻐하는 이유는 메간이 너무 어렸을 때 아빠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아빠가 주었어야 할 사랑을 메우기 위해서 누구나 메간을 사랑하고 예뻐 한다.  몇년 동안 서로 바쁜 이유도 있고 해서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서로 자주 만날 기회가 적어 지게 되었다. 어느덧그 메간이 7 살이 되었다. 


나는 컴퓨터 컨설팅을 하고 있었기에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웠다.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집에 오는 정규 직업이 아니어서 매일 회사에 출근 할 필요는 없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나는 나의 사무실에서 일 주일 내내 일을 하는 셈이기도 했다. 어느날 출근 길에 라디오를 들으니 우리 동네에 키츠 페스티벌 (Kid’s Festival) 이 있다는 방송광고를 한다. 토요일 아침 10 시부터 저녁 때까지 어느공원에 페스티벌이 있을 예정이니 부모들은 그 날 하루를 아이들을 위해서 시간을 내라는 내용 이였다. 


우리 막내 앤디(Andy)가 초등 학교를 졸업 한 뒤로는 어린 아이들에 관한 모든 관심을 잃은 듯 하다. 우리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이어서 그런지는몰라도 중학교를 들어 가고 나서는 부모들을 따라 다니기 보다는 그 또래 아이들과 많이 어울린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 관한 말을 들으면 전과 같이 신경을 쓰지 않고 또 그런 광고를 하는 구나 할 정도로 신경을 끄고 지낸다. 사무실 바로 앞에 있는 시그널 (Traffic signal) 에걸려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내 차가 서 있는 앞쪽의 횡단보도로 어떤 아빠가 딸을 데리고 뛰어 간다.  7 - 8 살 정도 되었을 것 같다. 미국아이들은어렸을 때는 정말 인형 같다. 치마를 입고 머리에 리본까지 단 여자아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깡충 대며길을 건너는 모습을 보자 나도 딸이 하나쯤 있어야 했는데 집사람이 아들만 둘을 나아서 … 이런 생각을하다가 갑자기 천방지축 메간이 생각이 났다.


사무실에 들어와 메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안부를전한 뒤 이번 토요일에 키츠 페스티벌이 있다는데 아느냐고 했더니 알고 있단다. 내가 메간을 데리고 갈까하는데 어떠냐 했더니 메간 엄마는 좋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메간이 자기 반 아이들은 다 가는데 자기는못 간다고 울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아빠가 없이 혼자 아이를 기르는 엄마의 하소연 그 자체다. 아빠와 엄마가 둘이 힘을 합쳐서 아이들을 길러도 힘이 드는데 혼자 아이를 기르는데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하며 토요일 10 시 반 정도에 메간을 데리고 가겠노라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토요일이 되었다.  아침에는 메간이 일로 계획이 잡혀 있었고 또 오후 1 시에는 미국 학생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 어떤 영어 교재를 만들고 있었는데 원 어민 선생님과 녹음을 할 일이 좀 있었다. 학기말 시험이다 뭐다 해서 서로 시간이 안 맞아 작업을 못했는데 마침 토요일 오후 1 시에 시간을 낼 수 있노라 는 연락이 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학생보고 1 시에 사무실로 나오라고 했었다.


메간이네 집에 가니 근처 UCSB와 SBCC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이 와서 아침부터 벌써 북적댄다.  메간 엄마가 교회 성가 대장이며 또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날도ㅍ무슨 행사 때문인지 한국교회 학생 성가 대원들이 모여 있었고 을 먹고 있는 듯 했다.  메간 엄마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는데 교회 피아노 반주자가 없으면 교회에서 피아노까지 치는 만능 재주꾼이다. 토요일이니까 교회 성가 연습을 이 집에서 하는가 보다. 


그런데 학생들이 아침을 못 먹고 와서 메간이네 집에 와서 먹는 듯 했다. 한국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언제나 저렇게 일이 많다. 나는 한국인 교회를 다니다 미국인 교회로 옮긴지가 몇년 되었다. 봉사 활동 하는 것도 좋았고, 또 한국인끼리 교회를 다니는 것도 좋기는 좋았지만 교회 안에 화평이 없는 듯해서 누구도 간섭 하지 않는  미국인 교회로 옮겼다.  


집에 들어가니 전부터 알던 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 동안 한국교회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는 학생들도 꽤 많이 있다.  그 학생들도 무엇을 먹다가 일어나 인사를한다.  메간의 엄마는 남에게 정말 잘한다. 싼타바바라에 사는 한국 교포들은 매건 엄마를 다 안다. 참 힘든 일인데.... 이처럼 여러 명을 집으로 오라고 하는 것 자체가 큰 결단이었다. 라면이나 국수를 준비해도 이 많은 학생들을 대접하는 하려면 그리 쉽지 않겠구먼… 어떻게 거의 매 주마다 학생들을 보살펴 주는지 참 대견 하다는 생각을 한다.


메간이 멋쟁이 치마를 입고 나타났다.  그렇게 입으니 예쁘기는 한데 좀 격에 맞지가 않아 보였다. 애가 가서 뛰어 놀 텐데... 무슨 대회에 나 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다른 옷으로 갈아 입히라고 했다. 청바지로 갈아 입히고 머리를 뒤로 묶으니 찬방지축 메간 다워 보였다. 


"천방지축! Give me a hug!"

오랜만에 만나서 인지 이 녀석이 좀 부끄러워하는 듯 하다. 그러더니 가까이 와서 가볍게 허깅(Hugging) 을 한다. "야, 메간이, 허깅을 하려면 좀 열정적으로 잘 해봐!" 뒤에 있는 엄마를 한번 쓱 쳐다 본다. 엄마가 빨리 삼춘에게 허깅을 잘 하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서먹서먹한 것이 풀렸는지 나에게 와락 안기며 나를 꼭 껴안고는 한참 동안 놓지를 않는다. 몇 년 만에 보니 메간이 많이 컸다. 같은 동네에 살 건만 이 아이가이렇게 크도록 무얼 하면 지냈나 하는 생각이 문뜩 들면 메간에게 미안해 진다. 나도 메간을 꼭 안아주었다.


그 광경을 둘러 서서 보고 있던 학생들이"와와"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니까 그제야 허깅 했던 손을 풀고 부끄럽다는듯한 표정을 한다. 어느새 이 천방지축이 부끄러운 것을 알게 되었나 하니 세월이 빠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몇 년 전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바비큐를 할 때면 기저기 차구 우유병 들고 디뚱 대며 걷고 매일 같이 삑삑 울어 대던 녀석이었던 것 같은데.....벌써 이렇게 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메간이 엄마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신나게 차 있는 곳으로 뛰어 나간다. "그럼 다녀 오세유..." 가끔 메간 엄마는 충청도사투리를 곧 잘 쓴다. 할머니가 충청도 사투리를 아직도 사용하는데 메간 엄마도 그 사투리를 집에서 곧 잘 사용한다. 내가 메간이 할머니 장권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에서 나오자 어느새 왔는지 메간이내 곁에 와서 내 손을 잡고 내 차가 있는 데로 막 끌고 간다.  나의 손을 잡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메간을 보니 불쑥 죽은 메간의아빠 생각이 났다.


메간이 아빠는 4 년 전에 죽었다.  마흔 살을 넘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암으로 죽었다. 메간이 아빠는 미국인 엔지니어로 이곳에 있는 어느 회사에 매니저(Manager)로 일했다. 교회는 잘 안 나오고 한국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생각 나는 것은 메간 아빠의 바베큐 솜씨는 이 동네에서 알아 준다.  서로 취미는 다르고 일하는 분야는 다르기는했지만 같은 엔지니어로서 회사에서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나와는 말이 그런대로 통하는 편이었다. 메간 아빠가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끼고 의사에 가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몇개월 만에 그는 죽었다. 


메간 아빠가 죽기 일주일 전쯤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메간 집에 갔다. 몸이 몹시 나빠져 있었다. 몸에 퍼지는 고통 때문에 모르핀을 맞아야했다. 그는 어깨 등이 저리다고 했다. 메간 엄마는 거의 쉬지 않고 그의 어깨와 팔 다리를 주물러 주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해 내가 해 줄까 했더니 메간 아빠가 메간 엄마에게 미안 했는지 나에게 해 보라고 한다. 5 분 하니까 내 손에서 쥐가 난다. 해 준다고 했는데 5 분 하고 끝낼 수 없어서 밍기적 거리니까 메간 엄마가 좀 쉬라면서 자기가 주무른다. 나는 10 분도 못하고힘들어 하는 저 일을 어떻게 메간 엄마는 하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메간 아빠와 죽음에 대해서 죽음 뒤에 오는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야기라기 보다는 어떻게 하던지 메간 아빠가 기독교적인 내세관을 갖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나뿐 아니라 메간 엄마도 많이 노력했다. 어느 정도 이야기의 방향이접근되는 듯싶었는데 암이 온 몸으로 퍼지면서 더 이상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정신이 안 되는 듯 했다. 죽음에 임박하면 똑 바로 생각하는 것 조차 힘 드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영화에서는 죽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멋있게 다 말하고 죽지? 몇 일 동안 나름대로 메간 아빠에 근처에 있으려노력했지만 원하는 만큼 하지 못했다.   


그런 후 어느 날 메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아빠가 천국에서 우리 셋이 만나자고 했어요 라며 울고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날 이 3 살짜리 메간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예쁜 옷을 입혀 주니까 그것이 신나서 펄쩍 펄쩍 뛰며 놀았다. 장례식이 아침에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우리 동네에 있는 컴퓨터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친구의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 아침부터 장례식장에 갔었다. 사람들이꽤 많이 모였다. 메간 아빠의 회사 사람들과 한국인들이 거의 다 모여서 북적대고 있었다. 장례식을 치러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마음이 덜 쓸쓸 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얼마 가지 못했다. 순서가 조가(弔歌)를 부르는 순서가 되었다. 조가를 부르는 대학생들은 메간 엄마의 조카들이었는데 메간은 아빠가 죽은 지도 모르고 조가를부르는 동안 아빠의 관 둘레를 깡충 깡충 뛰면서 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고 예쁜 치마를 입히고 구두까지 신 켜 놓으니 메간은 들떠 있는 듯 했다. 조가를 부르던 그 학생은 메간을 보고 도중에 울고 말았다. 나도 메간을 보면서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곳에 모인모두가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던 메간이 이제 4 년이란세월이 지나 7 살이 되어 예쁜 소녀로 자라고 있었다. 


(너의 아빠가살아 있었다면 너를 얼마나 예뻐 했겠니....) 나는 차의 문을 열어 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녀석이 차를 타고 가면서 나를 보고 시트벨트(Seatbelt) 를 하라고 한다. 학교 선생님이 시트벨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단다. 몇 년 전에 내가 신호가 파란 불에서 황색으로 바뀌는 찰나에 교차점을 지나 갔다고 우리 집 막내 아이가 나를보더니 아빠 지금 빨간 불에 지나간 거 아느냐고 항의를 하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는 아주 철저히 황색 신호에서는 철저히 정지를 하게 되었는데 아니 이 녀석도 시트 벨트를 하지 않고 차를 움직이기 시작한 나에게 조용히 충고를 한다. 아이들 학교 교육이 무섭다.


가만히 보니 이 녀석이 무언가를 염려 하는 눈치다. 이 아저씨가 제대로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공원까지 가는길은 잘 알까?... 아니면 이 사람이 나에게 페스티벌이 끝난 뒤에 맥도 널 햄버거 정도를 사줄 수있는 돈은 갖고 있는 사람인가?... 그런 정도의 걱정 하는 것 같다.


가만히 나를 쳐다 보더니 메간이 “You are not my real uncle, are you?” 라고 묻는다. 미국아이들은 눈이 크고 질문 할 때 눈을 똑바로 쳐다 보고 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려면 좀 힘이 들 때가 있다. 

 “Yes,I am. Don’t you believe me?”  답이궁해져서 이렇게 말하고 얼버무린다. 


이번에 한국말로 “야 짜식아 진짜야 임마.” 라고 말했지만 메간은 내가 뭐라고 해도 자기는 사실을 안다는 듯이 끄떡도 않는다. 메간이 어렸을 때는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믿었다. 한국인 엄마니까 내가 삼촌이라 해도 어렸을 때는 믿었는데……이제는 메간이 커서 내가 자기의 진짜 삼촌이 아니라는것도 아는 것 같았다. 


메간 아빠는 메간이 너무 어릴 때 죽어서 주변 사람들이 아빠는 외국에 출장 갔다고그렇게 말을 했다. 매번 크리스마스가 되면 엄마는 아빠가 외국에서 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냈다고 아빠가 보내 준 것처럼 큰 선물 보따리를 주었지만 처음에는 믿는 듯 하더니 나중에는 왜 아빠는 크리스마스에도 안 오냐고 한다더니…… 이제 메간은 아빠가 주었다는 사실을 아는 듯싶었다. 


메간이 나에게 키츠 페스티벌 하는 장소를 잘 아는가라고 조용하게 묻는다. 이 녀석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 녀석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기 위해 모르는데 찾아 가야 한다고 하며 지도를보여 주었다. 엄마와 할머니하고 다닐 때는 메간이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엄마도 영어를 잘 하지만 아마도 메간이 영어를 그 집에서는 제일 잘 하지 않을까 한다.  아빠가 없이 엄마와 살면서 메간은 영어로 뭔가를 해야 할 때는 아빠가 해야 할 일의 일부를 자기가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차가 키츠 페스티벌 장소에 가까이 가서 페스티벌 싸인 이 보이니 메간은 이제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You're pretty smart!" 

아이 참, 기가 막혀서. 이 어린것이 내가 지도를 보고 여기에 바르게 찾아 왔다고 나 보구 뭐? 스마트? 


어쩌면 엄마나 할머니와 지도를 보고 어디를 찾아 가다가 고생을 한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지도를 보고 찾아오니 메간이 생각에는 굉장한 일을 한 것처럼 느껴 졌을 것이다. 어쩐지 처음부터 좀 염려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제야 네 녀석이 무엇을 염려 했는지 알겠다.


차에서 내리자 깡충 깡충 뛰며 어쩔 줄을 모른다.지나 가는 사람들이 나의 손을 이끌고 가는 메간과 나를 번갈아 보며 이상 하다는 듯이 쳐다 본다. 메간은 미국 여자 아이처럼 생겼는데 데리구 가는 나는 동양 사람이고…… 그런데 애가 저렇게 좋아 하는 것을 보니 유괴 해가는 것 같지는 않구.... 그렇다구 아빠는 아닌것 같구....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페스티벌 장에 오니 벌써 아이들과 부모들이 많이 와 있다. 문을 연지 불과 30-40 분 밖에는 안 되었는데 벌써 사람들이 밀려 온다. 미국에 살면서 피부로 느끼는 것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 한다는 것이다. 메간이 조롱 말을 타고 싶단다. 그래서 말을 타는데 필요한 티켓(Ticket)을 사려고 티켓 사는 곳으로 가니 줄이 길다. 그 줄에서있던 어떤 여자 아이를 보더니 메간이 그 아이에게 뛰어 간다. 그 아이도 메간을 보더니 손을 붙잡고깡충깡충 뛴다.


학교 친구 인가 보다.  여자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7 살짜리들이 벌써 귓 속 말을 하고 까르르 때며 난리다. 내가 메간이 한 테로 가니까 그 여자 파란 눈을 한친구가 내가 누군가라고 메간에게 속삭이며 묻는다. 

"He is my uncle."

메간은 큰 소리로 자신 있게 대답한다. 아까 차에서 너는 내 진짜 삼촌이 아니지? 라고물었는데 이제는 메간이 나를 삼춘 이라고 하는 이 말을 듣고 보니 나 나름대로 메간의 입장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때 메간의 친구 엄마와 아빠가 내가 삼춘 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인사를해 왔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메간이 아주 예쁘고 똑똑 하다고 칭찬을 한다. 나는 졸지에 그 사람들에게 메간 삼촌이 되었다.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그 친구 부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메간과 그 친구는 여전히 속닥이며 까르르 댄다. 메간의 친구네가 먼저 표를 사가지고 갔다.


메간 친구와 빠이 빠이(bye bye)를하며 그 친구가 엄마와 아빠와 같이 총총 걸음으로 갔다. 메간은 모든 동작을 멈추고 친구가 아빠의 손을잡고 깡충 대며 가는 그들의 뒤 모습을 넋을 놓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메간이 까불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저렇게 물끄러미 보는 모습을 볼 때 마다 내 마음이 아프다.  오히려 천방지축처럼 까불고 재잘거리며 뛰노는 것이 내게는 훨씬 편했다.


메간은 말을 타고 꺼떡 꺼떡 고개를 흔들며 제법 재미 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보니 여기에 데리고 오기를 잘 했다 싶었다. 메간은 보는 것마다 하고 싶어했고, 사 달라고 했다. 나는 위험 한 것 만 제외 하고는 다 하게하고먹고 싶다는 모든 것을 다 사줬다. 가는 곳 마다 친구를 만난다. 그리고는내게 와서 보고 한다.

 

저 아이는 유치원 다닐 때 친구 저 아이는 여름 방학 학교에서 만난 아이, 저 아이는 피아노 교실에서 만난 아이.... 메간이 나에게 와서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갑자기 메간의 아빠가 된 기분 이었다. 

솜 사탕도 사먹었다. 메간은 엄마한테는솜 사탕을 사달라고는 할 엄두도 못 내는 일 이었겠지만 나에게 뭐든지 해 달라고 했다. 나는 메간이 소원을 다 들어 주고 싶어서 하게 내버려 두었다. 여자 아이라서 그런지 와서 무엇을 해 달라고 조를때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못 하겠다. 


딸이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하는 건데... 남자아이들만 둘 인 나는 딸이 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이 다음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결혼 해서 와이프(Wife)들이 우리 집에 들어오면 내 딸들이 생기는 것이나 마찬 가지니까 그때까지기다리는 수밖에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정말 잘 해 줄 것 같다.

또 누구를 만났는지 이 천방지축이 소리를 꽥 지르며 뛰어 간다. 이번에는 한국 여자 아이다. 


이곳에는 한국인 교포가 200 가구 정도 밖에 없어서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를 대부분 아는데 아무리보아도 모르는 아이다. 이번에는 한국 아이가 내가 누구냐고 묻는 모양이다. 

"앤디의 아빠야". 메간이 한국어로 대답 한다. 메간이 미국 친구들 앞에서는 나를 삼춘 이라고 하고 한국 사람들 앞에서는 다른 아이의 아빠라고 하는 것이 맘에 걸렸다.


아, 어쩌면 메간은 미국 아이들 앞에서 자기가 아빠는 없어도 자기한테 삼촌은 있다는 것을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국 아이들 앞에서는 어차피 내가 메간의 삼촌이아닌 것을 이미 아니까 앤디의 아빠라고 하는 것 같이 느껴지면서 메간이 느끼는 마음속의 갈등을 나도 조금은 느끼는 것 같았다. 


인간은 자기를 본능적으로 미화 하려고 한다는데 이 어린 아이도 그런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일까? 

(메간아, 아빠 없이 엄마 하고만 사니까 누군가 아빠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하니? 아빠 같이 의지 하고 싶은 사람이 그리운 것이구나? 그렇지?)


저 어린것이 다른 아이들이 아빠하고 같이 놀며 친구의 아빠가 친구를 목에 무등 태워주며 같이 놀아 주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자기 아빠가 보고 싶을까? 다른 힘든 것은 다 견딜 수 있는데 가끔 가다가 메간이 엄마한테 야단 맞고 갈데가 없어 지면 아빠를 부르며 우는데 정말 가슴이 찢어 질것 같다고 하던 메간 엄마의 말이 생각 났다. 가까이있는 나 라도 좀 잘해 주어야 하는데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그냥 메간이 녀석이안되었다는 생각만 들게 되었다.


뒤에 따라오던 그 한국 아이의 아빠를 만나서 인사를 했다. 몇 달 전에 이곳 UCSB에 교환교수로 왔는데 자기는 한국 교회에나가고 있노라고 인사를 한다. 나를 처음 보니까 미국에 처음 이민 온 사람인줄 착각을 했는지 나가는 교회가 없으면 자기네 한국 교회로 나오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끼리 모여 재미 있는 일이 많단다.  저 미국 생활 20년 짼데요.. 그렇게 말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한국인과 한국인 교회… 그 말에 특별하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아이들만 쳐다 보고 있었다.


천방지축은 어느새 다른 곳에 가서 놀고 있다. 메간을 따라 다니다 보면 특별히 다른 운동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시계를 보니 거의 12 시 반 정도가 되어온다.오늘 오후 1 시에 녹음 작업을 할 학생과 약속한 것이 문득 생각이나 좀 서두르면서도, 메간이 재미 있게 노는 것이 좋게 보여서 가능 한한 여기에 좀더 오래 있으리라 작정을 하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 얻어 왔는지 풍선 2 개를얻어 가지고 이 천방지축이 나타났다. 얼굴에 함박꽃을 피우고 풍선이 매어진 끈을 잡아 당겼다 놓았다하며 재주를 피운다. 이 키츠 페스티벌을 주최 하는 측에서 어린아이들에게 풍선에 수소를 넣어서 나누어주고 있었다. 여기 저기를 둘러 보면서 그 곳에 있는 모든 놀이는 다 놀아 본 것 같다. 

어느새 오후 1 시가 다 되어 온다. 


이제는 집에 가야 할 것 같다. 메간은그곳에서 더 놀고 싶어한다. 메간에게 내가 약속이 있어서 집에 가야 한다고 하니까 얼굴은 싫은 표정을 지었으나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메간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더 놀아 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약속이 있어서 서둘렀다. 메간이 내 앞에 서서 걸으며 차를 파킹 한곳으로 먼저 간다. 파킹을 한곳 까지는 족히 5 분은 걸릴 것 같다. 그런데 메간이 풍선을 가지고 까불 까불대며 재주를 피다가 풍선을 다 놓쳐 버렸다.


"Oh, my balloon!  Oh, No! No!”

아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날아 가는 풍선을 행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짜식아, 그러니까풍선을 가지고 너무 촐랑거리며 까불대니까 그렇지. 조심 해야지"라고 말했다. 메간의 얼굴이 슬픈 표정이 되어 일그러진다.


나는 그 까짓 얼마든지 다음에 구 할 수 있으니까 잊어 버리고 빨리 집에 가자고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심술을 부리며, 자기는 풍선이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두발을 땅에 떡 집고는 두 팔의 팔짱을 낀 채로 아래 입술을쭉 내밀고 땅을 멀리 쳐다 보는 모습. 이것은 고집 부리 전에 메간이 하는 습관이다. 발을 구르기 시작 한다. 조금 있으면 심술이 나올 것이다. 


 메간은 나의 손을 끌며 저기 풍선 있는 대로 가서 다시풍선을 얻어 가지고 오자고 떼를 쓴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설명을 했다.이 녀석이 심술을 부리며 떼를 쓰자 나의 마음이 더 급해 진다. 시간이 없어서 프로잭을 못하겠다는 학생을 모처럼 구슬려서 날을 잡아 놓았는데... 메간아 제발 이러지 마라. 우리가 빨리 집에 가지 않으면 내가 약속한 일에 지장이 생길 지도 몰라. 너 알겠어?  너 엄마한테도 1 시에 온다고약속했잖아. 이 천방지축 메간이 말을 듣지 않는다. 


지금까지 잘 데리고 놀다가 이 마지막에 이게 뭐람! 메간이 고집이 있는 것을 아는 내가 지는 수 밖에..... 그러나마음이 무거워져 온다. 나는 풍선 주는 데로 가면서 메간에게 우리 집 아이들에게 말 하듯이 야단 조로말했다. 

어른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는 착한 아이가 아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매우 어쩌구 저쩌구.....나도 속이 답답해 무어라고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잘 한다. 7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나와서 잘 놀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아이 하고 싸우고 있네.. 쯧쯧쯧.......  몇 시간 친구의 딸을 데리고 놀아 주다가도 이렇게 마음이 상하는데... 양 엄마나 혹은 양 아버지라는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고생각을 해본다. 그 근처에 가보니 풍선을 타기 위해서 서있는 아이들이 족히 7-8 명은 되어 보였다. 어쩌겠나? 긴 줄에 서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나는 메간이 이까짓 풍선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까지 고집을 피우는 것이 못 마땅하게생각 되어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메간이 좀 기가 죽는 것 같다. 메간이 이제 웃지도 않고 자기가 아는 아이를 만나도 인사도 하지 않고 그 커다란 눈만 껌벅 이며 내 눈치를보는 그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다시 찡 해 왔다. 이제까지 잘 데리고 놀다가 마지막에 메간을 이렇게기가 죽게 만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내 자세를 누그러뜨렸다. 


오늘 약속을 연이어 한 것이 잘 못이다. 메간 네가 무슨 잘못이 있냐?  메간의 차례가 왔다. 풍선을 받자 말자 나에게 자기 팔목에다 묶어 달라고 한다. 메간의 팔목에 풍선을 감아 주었다. 그랬더니 메간이 먼저 뛰기 시작 한다. 우리는 뛰어서 차로 왔다. 시계를 보니 1 시가 훌쩍 넘었다.  오늘 계획 했던 일은 잊는 수 밖에 없다.

 

만일 수잔이 기다리다가 가게 된다면 수잔이 나에게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나를 이해 해 주기를 바래 본다. 전에 급한 일로 수잔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가 있었다. 그 때 내가 어떻게 했나 생각 해 본다. 다행히도 그 학생이 약속을 지키지못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수잔에게 연락도 하지를 못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그냥 넘긴 적이 있었다. 수잔도 나를 그렇게생각 해 주기를 바래 보았다.


오히려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 하니까 이제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체념이 이런 여유를 가져다 주는 줄 예전에는 미쳐 몰랐다. 메간은 아직도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아직도 이 아이의 그 커다란 눈에 눈물로 젖어 있다. 메간이 내 손을 끌면서 주차장으로 뛰어 간다. 자기 때문에 일찍 떠 날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차에 올라 타면서 풍선이 터지지 않게 조심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보통 때 같으면 누가 뭐래도 자기가 차 앞 좌석에 앉겠다고 우기던 녀석이 차의 뒤 문 앞에 서있다. 앞 좌석이 아니라 뒷좌석에 타겠다는 표시다. 


메간은 내가 아직 화가 나있는 것으로 생각 하는 것을 느끼고 있음에 틀림 없다. 나는 정말 미안했다. 그 어린 아이가 풍선을 놓칠 수도 있지 그것을 가지고 왜 메간에게 뭐라고 싫은 소리를 했을까? 메간의 천방지축으로 불리는 그 발랄함은 이제 없다. 메간이 내 눈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진짜 아프다. 이 어린아이가아빠가 있었다면 내가 여기에 데리고 올 필요도 없었고 이 어린 메간이 이렇게 내 눈치를 볼 필요도 없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찡해 진다. 


이런 멍청이. 봐라 메간이 기가 죽어뒤 좌석에 타겠다고 하잖아. 이런 멍충이. 나는 자책하고있었다.

나는 차 앞 문을 열고 앞에 타라고 했다. 껌벅이며 나를 다시 한번 쳐다 보더니 앞에 탄다.

나는 서먹해져 있는 메간에게 뭔가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아서  메간에게 물었다. 


"메간은 풍선을 좋아하는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그랬어 미안하다.”

그랬더니 창 밖만을 보고 있던 고개를 돌리고 나서 입술을 좀 삐죽이며 나를 쳐다본다. 


(야, 메간아, 이제 수잔 언니하고 약속은 이미 깨졌으니 그 일은 잊어 버리고 너 라도 기분 좋게 집에 가라. 이게무슨 꼴이니.... 다 잘 놀고선... 내가 잘 못이다.) 


나는 될 수록 메간이 맘을 놓을 수 있도록 밝은 표정을 짓고 쳐다 보았다.

메간은 내가 아직 화가 나 있는 줄 알고 조심스럽게 나의 눈치를 보며 그 큰 눈을 껌벅 이며 조심스럽게 천천히 말을 한다. 


"우리 아빠는지금 천국에 있어요. 그런데 우리 아빠 생일이 내일 모래 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나에게 풍선을 주길래 이 풍선에다 생일 카드를 묶어서아빠에게 보낼라 구 했는데... 내가 풍선을 잃어 버리지 않으려고... 손목에다 묶으려고 했는데... 그만 잘못해서 그만.. 그만.. 그 풍선이 날라 가버렸어요. 난 아직 어려서 손 목에다 끈을 잘 못 묶거든요......내가 7 살인 거 알지요? 그래서 내가 다시 풍선 타러 가자고 했던 거예요...미안해요 "


" 뭐라구? 아빠 생일 카드를 이 풍선에 묶어서 아빠에게 보내?...."


나는 한대 펑 얻어 맞은 기분 이였다. 메간이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 자기 때문인 것을 이해는 하는데 자기도 이런 사정이 있었고 거기다가 자기가 나이가 어려서 풍선을 잘 못 매는 것을 이해 해 달라는 것이었다.


 메간이 너무나 예쁘게 보였다. 그 마음이 너무나 순수해 내 눈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며 목이 메어 옴을느꼈다. 내가 오래 전에, 아주 오래 전에 이 재미있는 이 세상과 타협하기 위해 다 팽개쳐 버린 그런 순수한  마음을 보는 순간이었다. 나는 너의 그런 마음도 모르고 내 약속만 생각을 했었구나.....메간아, 네가 나보다 몇 배 낫다. 나는 메간에게 나의 감정을 보이기가 싫어 왼쪽 창문을 보며 운전을 하면서 참아 보려고 했지만 눈물이 흐름을느낄 수 있었다. 


아빠 장례식장에서 뛰고 놀던 그 아이가 이제 그 아빠를 그리워하며 아빠의 생일 카드를 보내려고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너에게 야단을 쳤구나.


운전을 하며 메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제서야 맘이 노였는지 질문을 한다. 

"이 풍선이 천국까지가는데 얼마나 걸려요?"


(네가 보기에는아저씨가 꽤 스마트는 해 보여도 그런 것은 모르는데 어떻게 하니?.. 거짓말이지만... 하는 수 밖엔...)


"약 일 주일?"

나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어린 메간을 보면서 내 눈앞에 다시 흐려지며 다시 목이 메어져왔다.  메간은 얼마나 아빠가 그리울까? 얼마나 “아빠” 하고부르고 싶을까? 아까 놀이터에서 친구들이 아빠 등에 업히거나 무등 말을 타고 다닐 때 이 아이가 얼마나 아빠가 부러웠을까?


 아빠 혹은 Daddy” 라는 단어…. 이 얼마나 부르고 싶은 이름인가?

나도 그 이름을 그렇게 마음껏 부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 이름에 어떤 것을 기대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부친께서 돌아가신 뒤에 내가 힘들고 지쳐 쓰러져 있을 때 나도 그 이름을 그렇게 부르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물며 너에는 어떠했겠니? 3 세 이후로 아빠를 한번도 불러 본 적이 없었던 메간. 자기 또래 아이들은 뭐든지 아빠에게 말만 하면 다 들어 주었을 나이인데…… 메간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네 마음을 아프게 하다니.


아빠가 천국이라는 곳에서 자기가 풍선에 매달아 보내는 카드를 받으리라는 생각을하는 메간을 보면서 내 마음이 자꾸 자꾸 무너져 내린다. 아빠를 이처럼 그리워하는 메간을 보면서 내가 너무 미안 했다. 내 눈의 습기가 운전을 방해 한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게 느껴졌다. 메간이 내 눈치를 보면서 그 커다란 눈을 껌벅 이며 땅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이 찢기듯이 아파왔다. 아마 그것은 내가 내 아이들을 기르는 아빠의 입장에서 느끼고 있었던 어떤 부성애 적인 보호 본능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 아이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나마 내가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오래걸려요? 이거 큰 일이네... 아빠 생일은 내일 모랜데...."

메간이 너무 심각하게 답변을 해서 그제서야 내 자신의 감정을 추수 릴 수가 있었다.

 (7 살이면 아직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믿을 나이구나... 메간아, 

너의 아빠가 천국에서 이 모습을 보면 너의 아빠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니?)  


"메간아, 너 예수님 믿지? 그러면 기도해 봐. 그러면 내일 모래쯤에는 도착 할 수 있을 거야!" 

그러자 메간의 얼굴이 환해 지며 메간의 아빠가 있는 저 푸른 하늘을 차 창문을통해 본다.  메간의 그 예쁜 얼굴에  "아빠! 내가 생일 카드 풍선에 묶어서 곧 보낼 테니까 그것 받으시고 좋은 생일 맞으세요!" 라고 쓰여져 있었다.


메간은 외로운 아이다. 그래서인지 이천방지축 메간은 정이 많다. 집에 누가 오면 그 사람을 못 가게 붙잡는다.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다. 지금도 엄마에게 자기는 혼자라서 심심하니까남자든지 여자든지 동생 하나만 낳아 달라고 한단다. 


엄마에게 야단을 맞으면 자기 방에 들어가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아빠! 아빠!","난 아빠가 보고 싶어! 난 아빠가 보고 싶단 말야" “ 아빠 빨리 와” 하며 운단다. 


메간이 아빠가 보고 싶어서, 아빠를 찾으며 울 때... 

성경책에는 천국에는 눈물이 없다고 한다지만 

나는 천국에 있는 메간 아빠도 

메간과 같이 울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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