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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c Sep 04. 2015

Where wer you...?

Where were you when I needed?

Wherewere you when I needed you?


싼타바바라 (Santa Barbara) 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다. 인구가 15 만 명 정도의 적은 도시이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Los Angeles) 에서 101 High Way 를 타고 약 2 시간 정도 올라 가면 있다. 산과 바다 사이에 가로 17 마일 세로 5 마일 정도의 직사각형 모양의 땅이 싼타바바라이다. 요즘은 한국 유학생들이 이곳에 많이 와서 한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짜장면을 하는 중국집도 생겨 났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그 북경 집은 문을 닫았더라. 


어쨌건 도시가 크지않아서 소규모의 컴퓨터 쇼 (Computer Fair)를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간다. 우리나라 용산 전자 상가와 같이 컴퓨터 관련 부속품과 주변 기기를 싸게 구입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원래 직업이 컴퓨터 분야의 일을 하니까 그 쪽 분야에 관심과 열정이 대단한 나로서는 그런 컴퓨터 쇼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이번 컴퓨터 쇼는 싼타바바라에서 약 30 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벤츄라(Ventura)에서 한단다. 


Ventura 는 LA 와 싼타바바라 사이에 있는 중간 도시 정도로 생각 하면 된다. 토요일 오후 3 시가 다 돼서 하던 일을 마치고 차를 끌고 밴츄라로 내려 가기 위해서 101 High Way 로 진입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고 6 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고 잘 놀라고 하곤 나왔다. 꼬맹이가 아빠 없는 동안 코크를 먹어도 되냐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물론 예스다. 요 녀석들도 그걸 안다. 아빠가 급하게 나가야 하고 자기네 들끼리만 놀라고 할 때는 무엇을 요구 해도 아빠가 Yes 하는 것을 말이다. 


101 하이웨이로들어 서면서 라디오를 틀었다. 어떤 음악이 끝나고 다른 음악이 짙게 깔리면서 나오는 멘트가 나의 마음을쿵 하고 때렸다. 


Wherewere you when I needed you? 

나는 라디오를크게 하고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아나운서가 뭔가를 읽어 내려 간다.


아빠, 당신은 내가 아빠를 필요로 할 때 어디에 있었어요?

내가 아빠와 같이 공 놀이를 하고 싶었을 때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했는지 알아요?

내가 수학문제를 몰라서 쩔쩔 맬 때 

내가 다른 아이들이 다 사는 자전거 사고 싶었을 때

아빠는 어디에 있었어요?


아빠, 나 이제 이렇게 컸어요.

아빠 나는 이제 아빠의 도움 없이도 잘 해요.

아빠 나는 이제 당신의 도움이 필요 없어요. 

이제는 당신이 필요 없어요.

아빠, 당신은 내가 아빠를 필요로 할 때 

어디에 있었어요?


아나운서의 설명으로는 어떤 고등 학생이 어렸을 때 아빠가 엄마와 이혼 하고 다른 젊은 여자와 살면서 이 아들을 잘 돌 보지 않았단다.이 아들은 멋진 소년으로 컸고,  학교 풋볼 쿼터 백이 되었고 학교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청년이 되었단다. 이제 고등학교를 마치면 유명 대학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게 된단다. 가정을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가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에게 축하 전화를 하면서 아빠가 고등학교를 졸업식장에 참석해도 되겠냐고 물었단다. 


아들은 내가아빠를 필요로 했을 때 아빤 어디 있었던 거에요? 이제 나는 아빠 없이도 잘 해 나갈 수 있으니 아빠는 그 멋진 아빠의 삶이나 즐기시죠 라고 했단다. 


아나운서는 자신도이 방송을 준비 하면서 반성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우리 아빠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마 지금 일거다 라는 말을 한다.


나는 그 방송을듣는 순간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방송이 꼭 나에게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빠 컴퓨터 쇼에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라고 빠이 빠이 하며 문가에서 손을 흔들던 두 놈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몇 달에 한번 오는 기회인데, 컴퓨터 쇼에 가서 필요한 부속을 사다가 컴퓨터를 조립해야 할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어야 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핸들을 다음 출구 쪽으로 틀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면서 맥도 널에 들려서 아이들이 좋아하는메뉴를 사가지고 집으로 왔다. 


방송의 말 대로 아마도 아이들이 아빠가 필요한 것은 지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아이들에게는 그런대로  잘 해준다고 했지만 원하는 만큼 그들과 같이 시간을 못 보낸 것이 크게 증폭되어 나를 흔들었다. 이 아이들은 곧 크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아빠가 필요 없는 존재가 곧 되어 버릴 것이다.


아이들은 내가컴퓨터 쇼에 가면 적어도 3~4시간 정도 있다가 오는데, 간다고 한지 15 분 도 되지 않아 온 것을 보고 의아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빠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작은 녀석이 문을 열면서 묻는다.

그것도 순간 맥도 날 박스를 보더니 작은 놈이 형에게 빨리 와 보라고 큰소리로 부른다. 


아이들은 내가 왜 컴퓨터 쇼에 가지 않았는지 모른다.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햄버거를 신나게 먹으며, 내 입에 프랜치 프라이를 하나 넣어 주는 아이들을 보며 작은 소리로 아이들에게 말 하고 있었다.   


아빠가 왜 일찍 왔느냐고 물었지?


아빠는 컴퓨터쇼를 가는 도중에 Where were you when I needed you? 라는 말을 들었단다.

그게 꼭 너희들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어.


너희들도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아빠는 해야 할 일이 많단다.

아빠도 지칠때가 있고 하는 일이 안 풀려 화를 낼 때도 있단다.


너희들이 어렸을때 보다, 요즘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해. 

그래서 긴 출장도 가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때로는 늦게 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할 때가있단다.


그래도 너희들이 나에게 

“내가 아빠를 필요로 할 때 아빠는 어디에 있었어?” 라고 묻는 다면 

아빠는 너희들에게 할 말이 없단다.


미안해, 아빠가 하는 일 때문에 너희들과 같이 할 시간이 적었어.


내가 이제부터는너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 할게.



몇 일전에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어떤 한국 방송을 얼핏 들으니 어떤 여자 아이가 “아빠 오늘도 바쁘세요?“ 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Where were you when I needed you?” 의 한국 버전인 것 같다. 아빠들은 가정의 경제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도 아빠의 도움이 필요 할 때 가 있다. 그런  시기는 일생에 한번 밖에 없다. 그 시기를 지나면 아이들은 아빠의 도움 없이도 잘 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은 자란다. 자라면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다. 

아빠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가정을잘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고,  동시에 아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이것을 만족 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라서 아빠가 하는 그대로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가 오랜 동안 한국에서일 하던 것을 마치고 미국에 다시 갔었을 때 일이다. 한국에서는 길이 너무 복잡하고 한국 길을 잘 몰라 급한 일이 아니면 운전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몇 십 년 무사고 운전사였지만 미국에 가서 운전을하면 처음에는 좀 생소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십 수년 무사고 운전 실력이 어디 갔겠는가? 


나는 아이들에게 운전을 직접 가르쳤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16 살 정도만 되면 운전을 배운다. 학교에서 운전 법규에 대해서 가르치기도 하고 운전을 가르치는 학원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거의 형식적인 것이고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그 전에 아빠가 운전을 가르친다. 


큰 아이가 16 살이 되어 고등 학생이 되어 임시 면허를 받았 때, 나는 주말 새벽 1 시에 차를 끌고 나가서 우리 아이들에게 운전을 가르쳤다. 차를 2 대 가지고 나간다. 아이가 혼자서 운전을 한다. 뒤 차에는 내가 타고 워키 토키 무전기를 통해서 지시를 한다. 운전하면서 일어 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지시 해 주고 뒤에서 따라 가면서 지켜 본다. 대부분 야단만 진탕 얻어 먹는 경우가 많다. 대충 이런 식으로 진행이된다.  


자, 이제 우측으로 들어 간다. 

야, 임마 깜박이를 주고 난 뒤에 그렇게 빨리 들어 가면 어떻게? 

다시 해 이번에는좌측으로 들어 간다.

 깜박이 5 초. 너무 급하게 들어 갔잖아! 천천히.


이번에는 경찰이따라 왔다. 어떻게 해야 하니?

타이어가 터졌다. 어떻게 해?

앞 차와 거리가너무 가깝잖아!

야 임마. 여기는 좌 회전이 안 되는 곳 아냐?

아냐 아빠, 잘 보세요. 저녁 9 시이후에는 좌 회전이 된다고 표시가 있잖아요?

아빠 말에 대꾸하는 놈은 무조건 퇴학 이야. 잔 소리 말고 빨리 가기나 해... 


사람들은 왜 운전을 밤에 연습하냐고 묻는다. 우리 동네는 밤 1 시에는 차가 그리 많지 않아서 처음 운전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실제 길거리에서 운전을 해 보는 것이 쉽다. 몇 일 동안 그렇게 해 본 다음에는 그 다음 주에는 밤 12 시에, 밤 11 시, 밤 10 시이런 식으로 운전을 훈련 시켰다. 그 결과 아이들은 꽤 안전하게 운전을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일을 끝내고 미국 집에 돌아온지 몇 일 지났는데 몸이 지프듯 하다. 나는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서 오후에 약을 먹었다. 나는 감기약을 먹은 것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 하지 않고 그냥 운전을 했다. 긴 연휴 주말이 되어 식구가 같이 모이기로 했다. 싼타바바라로부터 작은 작은 아이가 다니고 있는 UCLA 로 내려갔다. 


엘 에이 (LA)로 내려가서 동치미 국수를 길목에 가서 먹고 작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올 예정이었다.  (길목이란 엘 에이 에 있는 동치미 국수가게다. 고기를 구어 먹은 뒤에 마지막으로 동치미 국수를 먹는 건데 맛이 일품이다.) 


엘 에이 까지내려 가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LA 거리로 나갔는데 내 앞에 어떤 차가 우 회전을 해서 골목으로 들어 가려는 듯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던 대로 갔다.


그 때 막내가 갑자기 “아빠 조심해!” 한다. 나는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지금 생각 해 보아도 위험한 순간이었다. 앞에 차는 우 회전을 하려다가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어서 정지 해 있었는데 나는 계속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운전을하는데다가 감기약을 먹어서 그 약 기운에 운전 감각이 떨어졌던 것 같다. 차가 급정거를 하고 나서 나도 놀랐고 아이들도 놀랐다. 앞 좌석에 앉아 있던 작은 녀석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아빠 무슨 일이 당신에게 일어났나요? 아빠 운전 아주 아니네요. 마치 술 먹고 하는 것 같아. 안 되겠어요. 여기 세우세요.” 나는 차를 정거 시키고 작은 녀석에게 밀려서 옆 좌석으로 옮겨 앉았다.  오후에 먹은 감기약의 효력이 서서히 나타나서 정신이 몽롱 해지는 것 같다. 이유야 어쨌건 사고가 났다면 어찌 됐을까? 사고가 안 났으니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몇 년 전 새벽 1 시에 일어나 운전 배우면서 그렇게 야단을 바가지로 얻어 먹으며 운전을 배우던 녀석들이 이제는 운전을 가르쳐준 나 보다 자기네들이 운전을 더 잘 한다며 내 운전을 믿지 못 하겠다 한다.


이제 아이들은 나의 도움이 없이도 뭐든지 잘 한다. 나 보다 훨씬 더 잘 한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일정한 시기 동안만 아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말을 안 해도 오늘도 아빠와 같이 있는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거 아닐까?


Dad,where were you when I needed you?


지금도 나는이 말을 들으면,

아무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그냥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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