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할 것도 없었지만, 빼곡히 들어찬 일기를 들여다보니 순간순간 근사한 감정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한 해였다. 자꾸만 무너질 때마다 자주 기록하며 다정함과 빛, 하얀 눈 같은 것들을 떠올려보자.
2023년 마지막 날은 눈 쌓인 길상사를 다녀왔다. 우리 다운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안녕, 2023년!
부조리하고 앙상한 내 방 책상 앞에서, 이름 없고 하찮은 사무원인 나는 쓴다. 글은 내 영혼의 구원이다. 나는 멀리 솟아난 높은 산 위로 가라앉는 불가능한 노을의 색채를 묘사하며 나 자신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내 석상으로, 삶의 희열을 대신해 주는 보상으로, 그리고 내 사도의 손가락을 장식하는 체념의 반지로, 무아지경의 경멸이라는 변치 않는 보석으로 나에게 황금의 옷을 입힌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 배수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