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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06. 2024

팀장을 위한 변명


난 최근 다른 언론사 사건팀장(캡)과 대화하다 공감한 적이 있다. 팀원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데, 오히려 캡들이 말을 참고 또 참는다는 거였다. 언뜻 들으면 민주주의적 체계가 이 고루한 언론계, 특히 사회부 사건팀에도 정착된 것 같다. 다만 사건팀은 다른 일반 회사와 달리 돌발적인 사건 사고에 대응하는 곳이다. 민감한 분야를 자주 다룬다. 그러다보니 빠른 판단 능력과 실행력을 요구한다.


오늘이 주말인데 지방에서 인명피해가 큰 폭발사고가 났다. 그러면 사건팀 누군가는 지방으로 빨리 출동해야 한다. 모두가 쉬고 싶고 가 싫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가야만 한다. 그러면 캡이 인원을 지정해서 보내고, 부장에게 보고하고, 파견 인력에게 지시를 내린다. 이 모든게 빠르게 이뤄져야 취재도 제대로 되고, 타사와의 경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캡의 위상이 막강했다. 팀원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표현이 맞았다. 캡에게 전화가 오면 심장이 두근댔다. 내가 또 뭐 잘못했나, 싶었다. 편하게 말을 건다든가 캡에게 농담을 하는 것 조차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카리스마있는 존재였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캡을 맡았더니 그런 시절은 다 지났다. 캡은 그저 팀장급 보직정도. 맡은 권한도 많이 사라졌다. Z세대와 함께 일해야 하니 욕은 커녕, 싫은 소리 하나도 신경써야 한다. 우리네 직장환경이 선진화 된 만큼 거기에 또 따라야만 한다.


그런데 가끔은 답답한것도 많다. 우선 지시를 내릴때 팀원을 이해시켜야 한다. 과거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디로 이동해" "이 번호로 전화해서 얘기 들어봐" 하는 건 분명 지양해야 한다. 근데 너무 자세하고 세세하게 오늘의 업무를 설명해야 한다. 가끔 가정교사가 된 느낌이다.


오늘 어디 르포를 보내면 중점적으로 이걸 보고, 또 이런 질문도 하고, 누구를 만나서 꼭 이거는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 사실 르포를 떠나는 기자가 차나 이동수단 안에서 스스로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우리 언론사와 사건팀은 기자 개인이 해야만 하는 것을 팀, 정확히는 팀장이 일러주고 조언해줘야 하는 조직이 됐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그냥 A부터 Z까지 캡 혼자서 모든걸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자 역량의 문제라기보단, 너무 막내들을 깨지기 쉬운 유리구슬처럼 키우고 있다. 깨지고 스스로 붙고 해야하는데도.


무슨 일을 시킬때 팀원을 설득하는 것도 일이다. 모든 지시가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도를 갖춘것도 있고, 누가봐도 무모해 보이는 업무도 많다. 그래도 윗선을 믿고 움직이고 뭐라도 취재해 보려고 하는게 기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새 젊은 기자들은 자신들이 봤을때 좀 이상하다 싶으면 하려고 하지 않는다. 100% 설득이 되어야 움직이고 열심히 한다. 그게 눈에 보인다. 자신이 좋아하고 재밌어 하는 분야의 기사를 발굴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사건팀은 우리 사회의 삼라만상을 다 다루는 조직인데, 그러면 구멍이 생긴다. 관심없어도 위에서 시키는 일을 열심히 성실하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그러면 그 빈틈은 또 캡이 채우게 된다.


과거 캡들은 편하게 일했다고 들었다. 점심부터 술을 마시고 연락이 두절되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말이 안되는 지금이다. 시간이 없어 점심을 아예 거르거나, 오후 1시까지 칼같이 기자실로 복귀해서 일을 한다. 누가 봐도 자잘한 업무까지 캡이 전부 다 하고 있다. 나는 지난 1월 캡 발령 이후 도대체 모든 언론사가 왜 이렇게 이런 지경으로 변했는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묻고 다녔다.


우선 취재 환경의 악화 요인이 있다. 일선 라인 경찰은 전화를 안받거나 문자도 씹고, 사건이 터져도 조사중이라며 제대로 된 응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캡이 일진에게 시켜도 "과장 전화 안 받습니다"하고 끝이다. 그들의 어투 말미에는 캡의 고공취재를 원하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어차피 라인에서 확인 안되니까, 라인 사건이 모이는 시경이나 경찰청에서 대신 확인해달라는 듯한 뉘앙스다. 근데 캡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아서 확인이 잘 안된다. 그래도 캡들은 책임과 부담이 커서 뭐라도 하나 확인하려고 부단히 전화 돌리고 한다. 전화 한번 띡하고 할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일부 팀원과는 다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팀원들은 기사를 잘 못 쓴다. 엄청 못쓰거나 조금 덜 못쓰거나 그 차이다. 나는 그래도 그들이 의도한 기사 흐름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래도 신경써서 썼을텐데 막 고치면 또 기분이 나쁠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뼈대를 그대로 두고, 잘 읽히도록 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스킬이다. 기사 하나하나 볼때마다 내 영혼이 1g씩 사라지는 것 같다. 노트북앞에서 홀로 괴롭고 지난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고친 결과를 팀원이 잘 보지 않는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비슷한 유형의 기사가 그 다음에 다시 올라왔을때 내가 고친 버전의 바이브가 아닌, 과거 자신이 써오던 그대로 또 써놨기 때문이다. 팀원의 기사를 고치는게 캡의 일이기에 난 매일 열심히 고친다. 영혼을 갈아가며 고친다. 그 이면에는 팀원들이 무럭무럭 성장해서 조금씩 그들의 기사가 진보하길 바라는 염원이 있다. 그런데 계속 그대로면 도대체 내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기사 출고한거 봤느냐, 조간 체크 했느냐고 하면 일부는 당당하게 못했다고 답한다. 나는 그 당당함에 짐짓 기가 죽고, 내가 반시대적인간이 된 것 같아 슬픈적도 있었다.


오히려 요새 기자들은 자신의 기사나 취재에 자부심이 크다. 선배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기사 작성과정에서 자신이 가져온 결과물이 쳐내지거나 하면 참지 못한다. 그 이유를 듣고싶어 한다. 말해줘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난 처음에 열심히 설명을 하다가 이내 지쳐버렸다. 사실, 좋은 기사와 기획으로 매일매일 어떻게 먹고살지 고민하는 내게 얼토당토 안 한 걸로 설명을 요구하는 상황에 퍽이나 지쳐버렸다.


권한은 없다. 팀원들에게 세게 얘기할 수도 없고, 윽박지르는 것도 못하고, 그저 웃으면서 사근사근 설명하면서 그렇게 좋은 결과를 갖고 오길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대신 책임은 그대로다. 기사가 별로거나 하면 모든 욕은 캡이 먹는다. 캡은 한 마디 한 마디를 참고, 오히려 팀원은 할말을 다하는 이 아이러니 속에 캡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치닫는다. 다들 몸이 아프다. 그러니 1년만 해도 다들 지치고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윗선은 팀원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다른부 전입을 원하면 캡에게 왜이리 애들을 괴롭히고, 강하게 몰아붙이느냐고 한다. 그런데 데일리한 단독이나 기획, 성과가 없으면 또 사건팀 놀고먹느냐고 한다. 쪼지는 말고 평화롭게 독려하며 기사를 가져오라고 한다. 말도 안되는 모순적인 이야기다. 소리없는 아우성 같은, 양립할 수 없는 명제들이다. 과거 그 때 그 시절 본인들은 실컷 편하게 팀을 이끌더니 이제와서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채근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캡을 온 것은 어차피 자원봉사였다. 이 자리를 기반으로 득세할 생각 따위 단 한번도 한적이 없다. 캡이 대단한 영예라는 시대는 지났다. 아무도 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광스런 보직이면 누구나 손들고 자원해야 하는데 정말 아무도 안하려고 한다. 욕은 욕대로 먹고, 힘은 힘대로 드는데 들이대는 잣대와 책임감만 넘쳐나서다. 나는 점점 더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화 되어가고 있는 이 언론사 하부 구조가 심히 걱정스럽다. 꼰대 문화, 말도 안되는 인격모독을 일삼던 과거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고 그냥 성실하게 스스로 할 일만 제대로 하면서 그 수준의 요구와 자존감을 부리는 정도면 좋겠다. 싫어도 좀 티내지 말고. 그래도 더 배워보자하면서 일하면 그 고충을 팀장이 모를거라고 생각하나.. 말 안해도 다 보고 있다.


이 친구는 처음에는 의욕이 넘쳤는데 요새는 왜 이리 아쉬울까. 이 친구도 성실하고 묵묵한 캐릭터였는데 왜 갑자기 이리 감정적으로 변했을까. 기사가 되는지 안되는지 판단을 왜 이리 못할까. 사실 팀장 탓이 가장 큰데 어떻게 변화를 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매일 매일이 전쟁이라 이리뛰고 저리뛰다 보면 밤늦게 이런 고민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고 맘을 다잡다가도 또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그런다. 팀원들이 이 팀에서 뭐라도 하나 기억에 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나갔으면 좋겠다 싶은데 그걸 내가 어떻게 만들어줘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나 혼자만 죽어라 열심히 해서 바뀌는 것도 없고, 근데 그렇게라도 안하면 팀이 망할거 같고. 그 와중에 내 개인적 삶은 사라지고 영혼도 갈리고 남는 것 없는 것 같고. 아무튼 고민이 많은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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