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팀장의 입장에서 쓴 글(https://brunch.co.kr/@highstem/309)을 두고 기자들 사이에서 반향이 제법 있었다. 다른 매체 캡이나 법조팀장, 금융팀장 선후배들이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잘 봤다거나 울컥했다는 식의 소회를 전했다. 누구한테 얘기하지도 못하고, 어디서 또 풀지도 못한채 맘속에 담아두고 살아가는 우리네 팀장들의 외로움이 전해져왔다.
한 방송사 사건팀 후배는 "선배 글 보고 반성 많이 했다"고 했다. 근데 사실 나는 절대 Z세대나 팀원 일부를 지적하고 비판하려고 쓴 게 아니다. 또 힘들게 살고있는 팀장급 기자들의 고충을 제발 알아달라고 적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나조차 매일 겪는 일을 정리하면서 해법을 찾아보려 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고민만 더 깊어졌지만.
사실 팀으로 일하면서 매일 외롭고 답답한 것은 아니다. 좋은 기억도 많다. 나는 최근 전임 사건팀원들을 만나 저녁을 했다. 내가 팀장이 되고나서 약 6개월가량 같이 일하다가 사건팀을 졸업하고 다른 부서로 옮긴 이들이다. 오랜만에 만나 과거 함께 겪었던 사건사고를 이야기하며 그때의 에피소드를 곱씹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참 힘들고 괴로웠지만 또 금방 지나고 나면 한줌의 추억이 된다.
그러다 김호중 음주운전 때 얘기가 나왔다. 당시 강남라인 일진 기자는 우연히 휴가를 갔고, 갓 수습을 뗀 20대 초반 막내가 사건을 맡고 있었다. 김호중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고, 이를 반박하는 타 매체의 단독이 쏟아져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타사 단독 확인조차 안되는 형국에서 나도 슬슬 성질이 났다. 그 어린친구에게 좀 심하게 얘기했던 것 같다. 우리 매체도 딱 하나라도 10개 매체 이상이 받을만한 관련 단독을, 더도말고 딱 하나만 하자고 했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쉽나. 대한민국 모든 사건팀 기자들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데 갓 수습을 마친 친구가 경쟁에서 승리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강하게 시킬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이었나. 새벽 4시가 넘어서 막내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제가 얘기되는 기사를 하나 잡은 것 같습니다." 실상은 이랬다. 팀장이 하도 뭐라고 하니까 그 막내는 새벽까지 강남경찰서에서 취재를 하다가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자겠다고 선배들에게 보고했다. 우리 사건팀 애들은 여성인 막내기자가 걱정돼 숙소를 잡아줬고, 한명은 야식까지 보내줬다. 결국 그 막내는 새벽 3시정도에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면서 혼자 취재를 했고 김호중이 음주운전 사고를 낸 직후 경기도 구리의 한 호텔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직후 신나서 팀장인 내게 보고를 한 것이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696419?sid=102
막내의 기사는 오전중에 온라인으로 나갔고, 연합을 비롯한 모든 통신사 뿐 아니라 그날 저녁 KBS, SBS, MBC 등 모든 방송이 우리 기사를 받아서 리포트를 했다. 아침보고를 올리자 팀원들은 내게 개인톡으로 "드디어 막내가 한건 하네요" "결국 노력을 하니까 되긴 하네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막내 덕분에 팀원 모두가 도파민 풀 충전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저도 반성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가짐 바로잡겠습니다'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전 팀원들과 얘기를 하는데 한명이 "그때 캡 엄청 행복해 보이셨다"고 했다. 회사 내 다른 부서 사람에게 "우리 막내가 한건했다"면서 자랑했었다고. 기억이 잘 안난다. 다만 타사 캡들이 내게 "이거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 막내가 새벽같이 경찰서 가서 취재했어요"라고 답했던 기억은 난다. 주 52시간 기조에 어긋나는 행태였으나, 그래도 팀이 똘똘 뭉쳐서 막내 스스로의 성취를 응원했고 결국 해내는 모습에 나도 퍽 기뻤다. 그는 그렇게 기자생활 초반에 작지만 성취의 경험을 안고 다른 부서로 갔다. 그 소중한 경험이 그의 힘든 기자생활을 버티게 해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 막내같은 시절이 있었을 터다. 난 사건팀을 3년 간 했는데, 기사를 잘 발굴하진 못했다.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았으나 대단한 기사를 가져온 적은 없다. 많이 혼나고 또 때로는 "전 기자가 안맞는 것 같다"며 사표 소동까지 벌이면서 팀원 생활을 했다. 선배들이 볼때 당연히 부족하고 했을 터다. 그래도 혼을 내면 다음날엔 더 열심히하자고 하고, 조금이나마 성과를 냈을 때는 칭찬도 하고 하면서 팀장과 선배들이 나를 길러왔던 것이다. 겉으로는 모진척 하지만 속으로는 걱정하고 신경쓰면서 나 스스로 벽과 틀을 깨고 성장하길 바라왔던 것 같다. 그런 인내의 시간을 거쳐 나도 팀장까지 오게 됐다.
그러니 내가 받은 배려만큼 나도 팀원들을 배려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좀 부족해보이고, 태도도 조금 오만해보이더라도 잘 가르치고 타이르면 그 진심이 언젠가는 통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나도 부족했고,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걸 채워주는 선배나 팀장이 있었기에 큰 문제 없이 1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언론사 일부 조직은 어쩔수 없이 팀플레이를 요하고, 이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힘들고 외롭고 또 답답한 나날이 일부 있겠지만 팀원들의 성장을 보며 나도 내 팀장 생활을 보람을 느끼는 그런 시간이 좀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건강한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나도 더 노력하면 그래도 답이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