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대중이 언론에 요구하는 잣대가 상충된다고 느낀적이 있다. 독자들은 요새 언론이 정권이나 정계, 재벌과 기업관련 감시 또는 폭로 기사를 제대로 쓰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서로서로 뭉쳐서 봐주기로 일관하며 기업이 주는 광고료 탓에 언론이 사회적 공기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근데 그런 기사는 어떻게 사회로 나오는가? 돈과 명예를 갖고 있는 권력자들의 치부는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누군가 내부자가 폭로를 하거나 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해야 세상에 알려진다. 그들만의 어두운 치부는 때로 국가 기밀처럼 다뤄지기도 한다. 양지로 끌어내면 국가 안보나 국격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식으로 쉬쉬하기도 한다. 결국 한국을 뒤흔들만한 이른바 무슨무슨 게이트-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기업인 등이 연루된 대형 특종-은 이런 다양한 장애물을 넘고 가뭄에 콩나듯 보도되는 사안이다. 힘있는 자들이 최대한 숨기고 은폐하려던 정보가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이다.
권력은 그 결과보단 과정을 지적한다. 결국 공개된 자신들의 행위보단그 정보를 언론이 어떻게 취득했느냐에 초점을 두며 요점을 흐린다. 국가 발전 과정에서 100 만큼의잘못을 저지른 집단이 이를 보도한 언론의 잘못을 1에서 1000으로 부풀리며 물타기를 한다.
대중은 쉽게 넘어간다. 취재 과정에서 범법행위가 없어야 된다고 강조한다. 그럴 경우 단독이나 특종에만 눈이 멀어 인간성을 상실한 기레기로 전락하게 된다. 요새는 개인정보보호, 명예훼손, 피의사실공표, 성폭력특별법과 이해충돌방지법 등이 더 강조되는 추세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최근 떠오르는 이런 가치를 모두 준수하려면 권력이나 대기업을 겨냥한 이른바 '워치독'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A기업의 차남이 강남의 한 클럽에서 마약을 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 기자가 해당 클럽에 가서 차남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 왔었어요?" 물어보면 최근에는 이런 답이 돌아올 거다. "개인정보를 제가 어떻게 알려줘요?" 만약 수사권을 가진 경찰에 의해 차남이 입건된 후 기자가 물어보면 경찰은 "피의사실공표 우려가 있다"면서 입을 다물 것이다.
어찌저찌 사실을 확인해서 기사를 쓰면 A기업 홍보팀이나 법무팀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그쪽 반론을 담지 않았다면서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 정정보도를 요구하거나 소송을 걸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다. 특히 요새는 보호가 절실한 소수자의 인권은 존중되지 않고, 범법자나 가해자의 인권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의 기사를 쓰면 으레 전화가 와서 "왜 내 입장은 반영 안 하느냐.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다" 하며 언중위 운운한다. 참 개같은 세상이 됐다.
아무튼 결론은 권력을 겨냥한 특종을 쫓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법을 위반하거나 비도덕적인 취재 방식이 쓰인다는 것이다. 기자가 피의자에 집에 잠입해서 뭘 훔친다든가, 경찰 사무실에서 범죄 관련 조사 자료를 몰래 사진을 찍는다든가 하는 것은 과거 쌍팔년도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확연히 범죄인 것 같은 취재 방식말고, 좀 아리까리한 것들이 있다. 또 누가봐도 자료를 입수하는 데 비상식적이거나 특수한 방법이 동원됐지만 그 자료의 내용이 청와대나 국회, 대기업의 비자금 내역을 담고 있다면? 현실에서 그런일이 벌어지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입수 과정에서 법이나 도덕적 문제가 의심되지만 그 내용이 국가 발전이나 국격 회복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사안이라면? 어떻게 판단을 내릴지 참 쉽지 않은 문제다.
나는 최근 10년간 한국언론사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권력감시 보도를 꼽으라면 2014년 세계일보의 '정윤회 십상시 문건' 보도와 2016년 JTBC의 '태블릿 PC 보도'라고 생각한다. 두 보도 모두 박근혜정권 몰락의 단초가 됐다.
젊은 독자를 위해 간단히 내용을 짚어보면 이렇다. 우선 정윤회 문건부터.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는 정윤회 문건을 인용하며 최순실 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 씨가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 이른바 '십상시'(十常侍)로 불리는 청와대 인사 10명과 월 2회 가량 만나 국정운영과 정부 동향을 보고받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교체설을 퍼뜨리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의 국정개입 의혹을 보도했다. 정윤회라는 이름이 레거시 언론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온 나라가 떠들썩해졌다. 청와대라는 국정운영 조직이 있는데, 느닷없이 비선실세가 뒤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조종하며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니까. 충격적인 스토리였는데,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근거없는 찌라시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명예훼손 혐의로 세계일보를 고소하고, 문서 작성과 유출자로 지목된 박관천 경정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문건 유출 창구로 지목된 경찰 한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문건 내용이 허위라고 결론짓고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박관천 경정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십상시 문건은 허위였는가? 일부 내용은 맞고, 일부는 조금 틀렸다. 다만 비선실세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소중한 보도였다. 이 문건이 세상으로 나온 과정은 불법적인 요소가 다분했다. 다만 준법적인 취재, 보도를 위해 이 기사를 접었다면 우리나라를 좀먹고 있던 세력의 존재가 알려지는게 더 늦어졌을 것이다. 난 이 세계일보 보도가 있었기에 2년 뒤 JTBC 보도도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윤회 문건이 남긴 후유증은 컸다. 스스로 세상을 달리한 분도 있고, 저 보도를 한 기자 일부는 세계일보를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요새 대중이 언론에게 들이대는 잣대로 보면 문제가 있는 보도였다. 다만 그렇게 잘나가고 영향력이 크다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죽었나 깨어나도 할수 없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꾼 특종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2016년 10월 19일 JTBC는 저녁뉴스에서 최순실 씨가 태블릿 PC를 들고다니며 대통령 연설문을 수시로 수정했다고 보도했다. 이틀 뒤 청와대는 "봉건시대에도 있을수 없는 얘기"라며 부정했다. 24일 JTBC는 1시간 20분동안 태블릿 PC와 관련해 14꼭지를 보도하며 최씨가 박근혜정부 청와대 문서 200여건과 드레스덴 연설문 수정에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JTBC측은 최씨가 남기고 간 짐에서 태블릿PC를 발견했다며 입수경위도 밝혔다.
해당 보도 이후 전 국민적인 탄핵 열풍이 일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고, 이듬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됐다.
이에 박 전 대통령 지지자 측에서는 JTBC의 태블릿 입수과정을 문제삼고 나섰다. JTBC 기자들은 더블루K 사무실에서 해당 PC를 입수했는데, 이게 특수주거침입죄라는 것이다. 당시 사무실 경비가 PC를 기자들에게 넘겼는데, 점유이탈물횡령죄도 성립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해당 PC의 개통자 및 요금납부자는 당시 김한수 청와대 행정관이었기에 그렇다. 김 행정관의 허락없이 PC의 내용을 전 국민에게 보도하고, PC 내 카카오톡이나 이메일에 접속한 것도 정보통신망비밀침해와 불법감청 혐의가 성립할 수도 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JTBC가 태블릿 PC를 입수하는 경로에 불법 행위가 포함됐다며 수사를 의뢰했지만,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건물 관리인이 사무실 문을 열어줘 태블릿 PC를 입수했다는 JTBC 입장을 고려하면 절도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아직도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태블릿 PC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요지경이다.
굳이 두 보도 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사에 길이 남을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싸우려면 법적, 도덕적 완결성 대신 확실한 정보와 믿을만한 취재원이 필요했다. 권력을 잡은 이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든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확실한 부패의 증거를 잡고, 이를 지지하고 동조해 줄 여론이 필요했다.
난 아직도 궁금하다. 정권과 기업 감시, 시사 영역에서 이런 보도를 할 수 있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가 있나? 없다. 절대 불가능하다. 일단 구조적으로 정권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만나서 얘기도 듣고, 제보자를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안 된다. 레거시 언론만 가능하다. 그런데 자꾸 언론 선진화 외치면서 법과 제도에 따라 취재하라고 한다. 소비자나 고객인 척 하고 악덕 기업에 뭔가를 물어보는 것도 함정 취재이자 인권 침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도대체 요새는 할수 있는 게 없다. 그렇게 따지면 언론은 아무것도 안하고 정부나 기업이 던져주는 미담이나 자화자찬 보도자료만 쓰고 밥이나 얻어먹고 살아야 한다. 그런 건 언론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사람들이 법을 운운하는 이 아이러니한 시대에 더 많은 특종을 내는 더 뛰어난 기자가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자는 어디까지 취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이뤄져야 할 것 같다. 난 요새 팀원들에게 취재를 시키면서 "무리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한다. 근데 가끔 드는 생각은 무리하지 않으면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 수 있나 싶기도 하다. 이 세상은 그렇게 무리하는 기자들이 써내는 특종에 의해 바뀌어왔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