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수습 때였다. 당시 검찰이 갑자기 국정원 압수수색에 돌입했는데, 내게도 뻗치기 명령이 떨어졌다. 어차피 국정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 검찰 압색 차량이 나오는 모습을 스케치하라는 지시였다. 국정원이 어딘지도 몰라서 수소문 끝내 내곡동 언저리에서 택시를 내렸다. 황량한 벌판 저쪽으로 국정원 정문이 보였다. 그때가 오후 2시쯤 됐다.
9시간이 지난 오후 11시까지 압색 차량은 나올 줄을 몰랐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굶은 상태여서 꼬르륵 소리가 귀로 들릴 정도였다. 잠시 자리를 비우면 검찰 차량이 나올 것 같아서 꼼짝할 수도 없었다. 그때 일진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밥은 먹었냐"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직 못 먹었습니다" 일진 선배는 압색이 더 늦어질 것 같다며 일단 밥을 먹고 오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근처 한식집으로 들어갔고, 육회비빔밥 2개를 시켰다. 그리고 밥이 나오자마자 한 그릇을 거의 마시다시피 흡입했다.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눈물 날 정도로 맛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주인아주머니가 "혹시 기자냐"라고 물었다. 이렇게 혼자 와서 정신없이 밥을 먹는 젊은 기자들이 몇 명 있었다고 했다. 그분이 내어주신 식혜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왜 이리 든든한지. 결국 6시간이 더 지나서야 검찰 차량이 국정원에서 나왔다. 육회비빔밥의 힘으로 뻗치기를 버텼다.
수습 때는 내내 배가 고팠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그다음 새벽 1시에 끝나는 일정 탓에 체력이 부족했다. 오전 6시 첫 보고를 하고, 보완 취재 지시를 받아 또 정신없이 돌아다니면 오전 8시가 된다. 그때 선배들은 아침 먹으라고 1시간가량 시간을 줬다. 신나게 혼나가다 일순간 평화가 찾아온 느낌이다. 멀리 가면 시간이 아까워서, 경찰서 구내식당에 앉아 경찰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배도 채우고, 영혼까지 채우는 느낌이었다. 곧 다가올 전쟁 같은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우리 동기들은 캡과 함께 한 치킨집에서 모든 메뉴를 다 시켜서 먹은 적도 있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만은 아니었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허전함 같은 게 있었다. 경찰관과 함께하는 해장국 한 그릇은 너무 든든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혼자 사 먹는 빵 두어 개는 참 쓸쓸했다. 나는 그렇게 어렵게 밥을 먹으면서, 말 그대로 밥벌이가 참 어렵구나 하는 것을 뼛속깊이 느꼈다.
수습을 떼고 정식 기자로 배치받았을 때, 나는 여전히 신기했다. 긴급한 일이 터져 선배나 부장이 더 긴급하게 지시를 시키면서도 식사 시간은 보장해 줬다. "바쁘더라도 밥은 먹고 해"라는 말이 항상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식사를 거를 정도로 긴급하게 일을 시키면 선배들은 항상 민망해했다. 식욕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보장해 주는 건가 싶었다. 밥을 먹어야 에너지가 생기고, 그 에너지로 일을 집중하면 된다는 논리인가 싶기도. 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내게 점심이나 저녁으로 뭘 먹었느냐고도 많이 물었다. 잘 챙겨 먹으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난 아직도 잘 챙겨 먹는다는 게 뭘 먹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알고 보니 기자에겐 밥자리도 일의 연장선이었다. 누군가와 밥을 한번 먹는다는 게 얼마나 큰 인연의 시작인지도 깨닫게 됐다. '언제 식사나 한번 하시지요'라는 말, 그 제안이 성사되고 실제로 밥상을 앞에 두고 누군가와 둘러앉아 1시간 혹은 그 이상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신상을 묻고, 현안을 논의하는 그 밥자리는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밥은 먹고 하라는 선배들의 말은 그저 배를 채우고 일하라는 뜻을 넘어서, 취재원 누군가와 점심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라는 뜻이었다. 그저 정보나 기사거리를 가져오는 걸 뛰어넘어 매일매일 새로운 이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리고 하라는 차원이다.
나는 밥을 먹으면 음식사진을 찍어둔다. 누구와 언제 어디서 뭐를 먹었는지 기록하고 싶어서다.
기자의 밥자리는 크게 3개로 나눠진다. 1대 1 독대 만남, 기자 여러 명과 취재원 1~2명의 만남, 출입처 기자 여러 명과 기관장 1명의 오만찬 등이다. 크게 형식이 나눠져 있지는 않지만 꾸미 문화가 있는 정치부에선 기자 5~6명과 국회의원 1명, 이런 식의 밥자리가 많다. 1대 1 독대 만남은 서로에게도 조금 부담이 된다. 식사 중간에 이야깃거리가 떨어지기도 하고, 취재원 입장에선 현안에 대해 말했다가 상대방 기자가 이를 혼자 단독으로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신뢰관계가 있거나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와 독대가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출입처 기자들과 장관 혹은 기관장이 오찬과 만찬을 하는 소위 떼밥 자리가 있다. 나는 이 떼밥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와 기관장이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도 어렵다. 헤드테이블엔 간사 선배나 연차 높은 선배들이 앉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 취재원들과 한 번에 인사 나눌 때만 떼밥을 가고 그다음에는 잘 가지 않는다. 뭐, 각자 선택인 듯 하지만.
기자의 밥자리는 단순히 식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친분을 쌓기 위한 것도 있지만, 정보를 한 줄이라도 듣기 위한 목적이 크다. 예전에는 식사자리에서 기사거리가 쏟아졌다고 하는데 요새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상대편 취재원도 기자들의 수요를 알고 있다. 경계를 하고 식사 자리에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현안을 물어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신뢰 관계도 없는데 딥한 사안을 물어보면 누가 대답을 해주겠나. 그래서 아이스 브레이킹 타임이 필요하다. 자녀 얘기도 하고 부동산 얘기도 하고 종교 얘기도 하면서 좀 시간을 보내다가 자연스럽게 현안을 묻거나 해야 한다. 참 어려운 스킬인데, 난 유능한 타사 선배 혹은 후배들과 꾸미를 하면서 이런 스킬을 많이 배웠다.
꼭 각을 잡고 한 시간 내내 취재원의 경계심을 키우며 하고 싶은 질문만 하는 게 좋은 기자는 아닌 듯하다. 서로 간의 예의는 지키면서, 그래도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도록 취재원의 마음을 편하게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정보는 최대치로 듣는 그런 기자가 좋은 기자라고 생각한다. 식사가 끝나면 복기가 필요하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야마를 잡아서 정리한 뒤 선배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취재원이 오프를 요청했으면 기사를 안 쓰는 게 맞다. 하지만 변수는 여전히 있다. 이런 사안을 계속 염두에 두고 긴장한 채 식사를 하다 보면 사실 음식맛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밥자리를 잡는 것도 기자의 역량이다. 나는 청와대에 처음 배치받은 이후 몇 달간 밥을 혼자 먹었다. 꾸미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억울할 건 없었다. 타사 기자들은 다들 대선을 뛰고 대통령이 된 후보 마크맨을 하며 열심히 일하다가 그대로 청와대에 들어온 이들이다. 서로 열심히 하는 걸 다 알고, 친한 이들끼리 꾸미를 만들고 청와대 참모들과 밥자리도 했다. 산업부에 있다가 갑자기 청와대로 온 나는 아는 이가 없었다. 정치부 경험도 처음이라 꾸미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홀로 구내식당을 갔는데, 보는 눈이 많았다. 그래서 삼각김밥을 사서 근처 공원에서 먹은 적도 많았다. 결국 나도 열심히 일했고 몇 달 만에 좋은 꾸미를 만났다. 선배들이 참모들을 소개해주면서 나도 친분을 쌓고, 점점 더 밥자리가 쌓여갔다.
기자라고 맨날 누군가에게 얻어먹는 건 아니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기자랑 교수, 검사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식당 주인이 밥값을 낸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건 머나먼 과거 편하게 기자생활했던 선배 기자들의 이야기다. MZ 세대는 절대로 무작정 얻어먹지 않는다. 빚지는 걸 싫어하고, 명분과 논리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민단체 사람들이나 퇴직한 분들에겐 기자들이 많이 밥을 산다.
하지만 기업 홍보팀과의 만남에선 얻어먹는다. 나는 이게 불편해서 내가 먼저 밥값을 계산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들이 오히려 말했다. 밥을 먹는 건 말 그대로 거래처 사람을 만나듯 비즈니스를 하는 거지, 무작정 빚을 지우고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어차피 그들 사비로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같이 밥을 먹는다고 무조건 그 기업에 좋은 기사만 쓰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이들과의 만남은 편하게 하고, 내 돈을 아껴서 후배나 더 어려운 이들과의 밥자리에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사람 만나는 게 내 일이고, 만나려면 식사를 해야 한다. 내 월급이나 법인카드로는 감당이 안된다. 내 돈으로 다 하려면 마이너스 통장을 뚫거나 아예 사람 안 만나는 다른 직업을 택해야 한다. 그럴 수는 없으니 나도 타협을 하게 된 것이다.
난 그래서 일부 참기자를 자칭하는 분들이나, 과거 언론계 풍속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기자를 거지로 볼 때 좀 어이가 없다. 무슨 비싼 밥만 얻어먹으려는 하이에나처럼 간주한다. 물론 그런 기자들이 일부 아직도 있겠지만, 젊은 기자 중에 그런 치는 거의 없을 거라고 믿는다. 진짜 열심히 일하는 기자들에겐 맛있는 메뉴 고집하는 사치 따위 부릴 시간과 여유가 없다.
나는 얼마 전까지 밥자리가 없으면 불안했다. 달력마다 점심저녁이 꽉 차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다음 달까지 빈틈없이 채워진 약속을 보면 "나도 열심히 하고 있구나"하는 안심이 됐다.
나는 출입처에 배치받으면 그 연락망에 있는 간부들은 한 번씩은 꼭 밥을 먹자는 주의였다. 기재부 출입 때는 과장급 이상 인사가 너무 많아서 실패했지만.. 그러려면 최소한 6개월은 걸린다. 한 바퀴 도는 게 최소 그 정도다. 그렇게 하기도 사실 매우 매우 힘들다. 그래도 한번 식사를 하면 안면을 트고, 그 이후에 전화를 해야 단순한 기계적인 대답 대신 딥한 얘기도 묻고 답할 수 있다. 식사가 주는 힘이 대단해서, 나와 함께 밥을 나눈 상대방에겐 아주 조금의 신뢰가 쌓이게 된다. 취재원들도 매우 바쁜 사람들이다.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만날 사람이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많은 이들이다. 그들이 내게 내는 점심시간, 또 저녁시간은 참 귀하고 소중하다. 그만큼 나를 위해 그들 자신의 시간을 희생한 것이다.
그러니 나도 안절부절못한다. 그들도 그 시간에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 한마디 조심하고, 일부러 재밌는 얘기도 하고 좀 모자란 척도 하면서 그들의 성격과 심기에 맞춰 밥자리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결국 밥자리는 편하지 않고 어렵다. 실언을 한 것 같으면 다음날 또 이불킥을 하고, 사과도 하고. 좀 재미없거나 했으면 어쩌지, 하고 혼자 고민하기도 한다.
다만 요새는 점점 더 밥자리가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어쩌다 한번 약속이 깨지고 혼자 밥을 먹거나 아예 식사를 거르고 산책을 하면 참 즐겁고 홀가분하다. 내가 이럴 시간에 다른 매체 기자들은 중요한 누군가를 만나서 단독 기사를 취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10년 넘게 그런 긴장 속에 살면서 거의 체할 거 같은 밥자리도 꾸역꾸역 소화해 왔다. 맛깔스럽고 풍성한 산해진미가 밥상에 쌓여있던 적이 많지만, 정말 맛있고 즐거웠던 밥자리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비싸고 진귀한 식재료를 앞에 두고도 긴장과 고민 탓에 머리가 아팠던 기억도 즐비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순대국밥에 소주 한잔하더라도 좀 편하고 재밌는 이와 함께하고 싶다. 단독 기사는 됐고, 정보보고 거리 안 줘도 되니까 사회적 지위나 직급고하에 상관없이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나름의 조언도 해주고, 또 그의 고민이 나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고, 서로의 한 마디에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과 밥을 먹고 싶다. 또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편하고 든든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기자와 취재원이 아니라 그저 함께 인생을 살아내는 동료로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음식 앞에 마주 앉아 함께 웃는 그런 사람과 자리가 간절히 그리운 때가 됐다. 간간한 그런 밥자리야말로 요새 나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