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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Nov 20. 2024

기사 쓰기와 글 쓰기


학창 시절 나는 글쓰기를 곧잘 했다. 초중고를 지나며 항상 문예반에 등록했고, 무수한 백일장에 나가 입상했다. 대학생 때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일보가 각각 주최하는 전국 단위 논술대회에 나가 두 대회에서 모두 1등을 했다. 


비결은 따로 없었다. 그냥 글쓰기가 재미있고,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많았지만, 남들앞에 서서 말하는 걸 부끄러워했다. 대신 내 생각을 차분이 글로 적고, 그 글을 읽고 누군가 반응을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쓰면 더 많은 이의 관심을 끌고, 더욱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했다. 


그러려면 남의 글을 많이 읽어야 했고, 또 나만의 글감을 찾아 쟁여놔야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독 다작 다상량이 가능했다. 기자를 선택한 것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먹고 살수 있는 직업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만 기사 쓰기는 글 쓰기와 확연히 달랐다. 신문 기사는 틀이 정해져 있다. 원고지 3매, 5매, 6매, 7매, 8매, 12매. 정해진 분량을 채워야 했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역삼각형 구조로 써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정보를 맨 위로 올려서 쓰는 것이다. 박스 기사는 스트보다는 형태가 다양하지만 그래도 기사의 형식을 갖춰 작성해야 한다. 내 마음대로 쓰는 글 쓰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나의 시각과 관점이 얼마간은 반영되지만, 결국 주어진 틀과 형식에 내가 취재한 정보를 털어넣고 이를 다시 분류하는 작업이 기사 쓰기다. 시작부터 끝까지 오롯이 나의 선택과 판단과 감정을 담아 적어내려가는 글 쓰기와는 성질 자체가 다르다.


수습으로 입사한 나는 선배들로부터 기사 쓰는 법을 배우면서 나만의 글 쓰기 방법은 내려놔야 했다. 완전한 신세계에 도달한 원시인 같았다. 그래도 '세환이 참 글 잘쓰네' '세환이 글은 차원이 달라' 하던 말만 듣던 나였는데.. 충격이 컸다. 


사실 입사 12년이 지나고 지금은 후배들 글까지 고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아직도 어떤 기사가 잘 쓴 기사인지 잘 모르겠다. 취재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가장 잘 전달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일텐데. 


다만 그 표현 방식은 기자마다 다 다를 것이고, 맞고 틀리고는 없을 터다. 각자 어떻게 해야 정보 전달이 가장 용이한 기사인지에 대한 판단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은 서열과 직급 구도를 거쳐 기사는 하나의 최종 버전으로 나간다. 신문을 펼쳐볼때마다 나는 각진 기사들이 한개면에 쫙 펴져서 쭉 이어지는 모습이 신기하다. 깔끔하다. 그렇게 정제된 모습으로 나가는 기사를 쓰는 것은 그만큼 정제돼야 할 필요가 있다. 10년 넘게 나도 이런 기사 쓰기에 익숙해져 왔다. 짧고, 단문으로, 조사는 반복하지 말고, 야마만 간명하게, 논술 쓰듯이 문단별로 주제를 나눠서.. 참 지키고 따질 게 많기도 많다. 


그러다 문득 최근 집에 굴러다니던 대학시절 습작 노트를 꺼내 보았다. 언론고시를 준비하기 전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내가 강의 시간이 지겨워 썼던 짧은 글들이었다. 나는 신입생 때 봉사활동 동아리를 잠깐 했는데, 활동을 하며 찾았던 한빛 맹아원 방문기를 쓴 게 있었다. 내가 쓴 글이었지만 참 생생했다. 태어날때부터 혹은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은 친구들과 처음 만났을 때, 나와 매칭됐던 친구는 내게 "무슨 색 옷을 입고 있느냐"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하고 있던 머리끈과 같은 연두색이라고 답했다. 


나는 당시 그 친구와 함께 노래도 부르고, 과자도 먹었다. 선물로 준비해 간 인형도 줬다. 곰인형이었다. 봉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두눈으로 세상을 볼수 있는게 감사하다 싶으면서도 저 친구의 처지와 나를 비교하며 행복을 느끼는 태도가 옳지 못하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짧은 글에서 이런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진심을 다해 봉사에 임하고 나도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썼다. 문장은 너무 길고, 단어 선택도 투박했지만 그때 그 시절 나의 마음이 잔잔히 전해져왔다. 벌써 2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지만, 이 짧은 글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나의 과거를 눈앞에 소환해냈다. 아무런 의도와 편견 없이 그저 내가 겪은 바를 정직하게 글로 적어내려갔던 순수한 글 쓰기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기사를 쓰면서 먹고살고 있지만 나의 글 쓰기 실력은 20년 전에 비해 퇴화했다. 마치 풍화되는 모래처럼 점점 더 내 마음속에서 글 잘 쓰는 방법을 담은 글 주머니가 산화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감정은 숨기고, 제 3자로서 관찰하고 듣는 글만 쓰다보니 정작 내 자신의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진심을 가지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하는데 그게 부끄럽고 잘 안 된다. 누가 보면 전문적인 글쟁이로 살고 있는데도,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까먹은 것 같다. 


나는 원래 페이스북에 글을 많이 썼다. 관종이기도 하지만, 그냥 오늘의 소소한 생각과 상념을 짧게 짧게 남겨두면서 기록하고 싶었다. 다만 사고도 많이 쳤다. 중요한 부서나 직책을 맡으면서 선배들은 SNS을 자제하라고 했다. 그만큼 내 글 한줄이 누군가에겐 오해가 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인데, 나는 점점 더 내 글을 쓸 공간을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솔직했던, 그래서 글 쓰기도 거침이 없고, 글 자체가 활어처럼 살아 숨쉬어서, 그 글을 생산한 나 조차도 글을 읽으며 에너지를 얻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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