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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vs 연금저축 vs IRP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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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연금저축, IRP. 세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일단 눈을 감는다. 뭔가 어려운 말 같고, 나랑은 아직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세 가지는 결국 미래의 내 월급통장이다. 지금은 잘 와닿지 않아도, 언젠가 내 노후를 먹여 살릴 아주 현실적인 돈 이야기다.


옛날에는 퇴직하면 회사에서 봉투를 건넸다. “고생 많았어요.” 한 마디와 함께 퇴직금이 현금으로 들어있었다. 그걸로 자녀 결혼자금을 보태거나 전세를 올리던 시절이었다. 그 돈을 밑천으로 치킨집을 열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만약 회사가 부도가 나면? 퇴직금도 함께 사라졌다. 평생 일한 대가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일이 수두룩했다. 야만의 시절이었다.


그래서 2005년, 정부가 나섰다. 회사가 퇴직금을 쌓아두는 게 아니라, 외부 금융기관에 매달 돈을 맡기게 했다. 이름하여 ‘퇴직연금제도’. 회사가 근로자 명의로 계좌를 만들고, 매달 일정 금액을 넣는 방식이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돈은 남는다. 퇴직금이 회사의 운명에 끌려다니지 않게 된 것이다.




퇴직연금의 2가지 유형


퇴직연금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회사가 알아서 굴리는 DB형(확정급여형), 다른 하나는 근로자가 직접 굴리는 DC형(확정기여형)이다.


DB형은 퇴직할 때 받을 금액이 미리 정해진 제도로, 회사가 대신 돈을 굴려 운용한다. 예를 들어 10년 근무한 직원이 월평균 400만 원을 받았다면 퇴직금은 ‘400만 원 × 근속연수 × 일정 비율’로 계산되어 지급된다. 근로자는 투자 성과와 상관없이 정해진 퇴직금을 받을 수 있지만 대신 회사가 운용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그래서 투자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주로 DB형을 운영한다. 쉽게 말해 회사가 대신 알아서 운용해주고, 근로자는 정해진 금액을 안전하게 받는 구조다.


반면 DC형은 매년 회사가 납입하는 금액이 확정된 제도로, 그 돈을 어떻게 굴릴지는 근로자에게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연봉이 4800만 원이면 회사는 매년 그 1/12인 400만 원을 DC형 계좌에 넣어준다. 이후 근로자가 직접 펀드, 예금, 채권 등 투자상품을 선택해 운용하며, 수익이 나면 퇴직금이 불어나고 손실이 나면 줄어든다. 즉 투자 성과에 따라 내 퇴직금이 달라지는 셈이다. 안정보다는 스스로 운용해 더 큰 수익을 노리고 싶은 사람에게 유리하지만, 투자에 무심하거나 손실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


보통 회사에 들어가면 기본 전제가 DB형으로 깔려있다. 만약 직접 퇴직연금을 굴리고 싶다면, 회사에 요청하면 된다. 근데 이건 회사별로 해주는 곳도 있고, 안 해주는 곳도 있다. 그러니 입사후 퇴직연금 유형 전환이 가능한지 가능한 빠르게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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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P와 연금저축


퇴직연금의 도입으로 생긴 변화는 단순히 제도 뿐만은 아니었다. 이제 근로자는 회사가 망해도 퇴직금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고, 나아가 그 돈을 불릴 수도 있다. 과거엔 퇴직금이 ‘그냥 받는 돈’이었다면 지금은 ‘운용하는 자산’이 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IRP.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즉 개인형 퇴직연금이다. 말 그대로 개인이 직접 만드는 퇴직연금 계좌다. 회사에서 퇴직연금을 안 해주거나, 이직할 때 받은 퇴직금을 보관하고 싶을 때 IRP를 쓴다. 퇴직금을 현금으로 받으면 세금이 붙지만, IRP로 옮기면 세금을 미룰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금, 펀드, 채권 등으로 투자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10년 일하고 퇴직해 퇴직금 3천만원을 받았다. 그냥 현금으로 받으면 세금이 수십만 원 붙는다. 하지만 IRP로 옮기면 세금을 당장 내지 않는다. 게다가 그 돈을 굴려서 수익을 낼 수도 있다. 퇴직금을 단순히 ‘받는 돈’에서 ‘운용하는 돈’으로 바꾸는 셈이다.


연금저축은 또 다르다. 회사와는 상관없이, 개인이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만드는 통장이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어디서든 만들 수 있고, 매달 납입하면 연말정산 때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쉽게 말해, “나중을 위해 지금 저축하면, 세금 깎아줄게”라는 제도다.


그렇다면 IRP와 연금저축은 어떻게 다를까. IRP는 퇴직금이 들어갈 수도 있고, 개인이 추가 납입도 가능하다. 연금저축은 오직 개인 돈만 넣는다. 즉 IRP는 ‘퇴직금 + 개인저축’, 연금저축은 ‘순수 개인저축’이다. 두 계좌 모두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중도해지하면 세금 혜택을 반납해야 한다.




돈의 주체가 다르다


퇴직연금과 IRP, 연금저축은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돈의 주체가 다르다. 퇴직연금은 회사가 내주는 돈, IRP는 내가 굴리는 퇴직금, 연금저축은 내가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돈이다. 세 가지를 잘 활용하면 ‘국민연금 외에 또 하나의 월급’을 만들 수 있다.


퇴직연금의 납입 구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재미있다. 회사는 근로자 급여의 약 8.3%를 매달 퇴직연금으로 낸다. 1년 단위로 계산하면 근로자 연봉의 1/12 정도다. 이 돈은 회사 장부상 ‘비용’으로 처리되고, 근로자 급여 명세서에는 따로 표시되지 않는다. 회사가 대신 외부 금융기관에 넣어주는 구조다. 그래서 근로자 입장에서는 내 월급에 표시되지 않지만, 내 이름으로 돈이 쌓인다.


이때 회사가 지정한 금융기관(은행, 증권사 등)은 퇴직연금 계좌를 관리하고, 운용 수익을 기록한다. DB형이라면 회사가 알아서 운용하지만, DC형이라면 근로자가 로그인해서 직접 투자 비율을 조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예금 40%, 채권형펀드 30%, 주식형펀드 30%' 식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퇴직연금이나 연금저축, IRP를 꾸준히 모으다 은퇴하면? 연금으로 나눠 받을 수 있다. 과거처럼 일시금으로 받으면 당장은 좋지만 세금이 더 붙고, 금세 돈이 사라진다. 반대로 연금으로 받으면 세금이 훨씬 적고, 매달 일정 금액이 들어온다. 60세 이후 10년에 걸쳐 나누어 받으면 세율이 3.3~5.5%로 낮아진다. 요즘은 그래서 퇴직금을 IRP로 옮겨서 ‘노후 월급통장’으로 만들어두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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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액공제 혜택은 얼마나?


연금저축이나 IRP에 돈을 넣으면, 국가가 “노후 대비 잘했어” 하며 세금을 줄여준다. 예를 들어 연말정산 때 내야 할 세금이 100만 원이라면, 세액공제로 그 일부(보통 13.2~16.5%)를 빼준다. 단순히 돈을 돌려주는 게 아니라 ‘세금 계산식에서 아예 깎이는 구조’라 효과가 꽤 크다.


연금저축만 따로 보면, 1년에 최대 600만 원까지 세액공제 대상이다. 공제율은 총급여 5500만 원 이하(또는 종합소득 4000만 원 이하)는 16.5%, 그 이상은 13.2%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월 50만 원씩 1년(총 600만 원)을 납입했다면, 최대 약 99만 원(16.5%)까지 세금이 줄어드는 셈이다.


IRP(개인형퇴직연금)는 단독으로는 700만 원까지 납입 가능하지만, 세액공제 한도는 연금저축 포함 최대 900만 원이다. 즉, 연금저축 600 + IRP 300 조합이 가장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연금저축 600만 원, IRP 300만 원을 납입했다면, 900만 원 × 16.5% = 최대 148,500원 정도의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퇴직연금(DC·DB형)은 회사가 적립해주는 돈이라, 근로자가 세액공제를 받을 구조는 아니다. 대신 퇴직 후 IRP로 옮겨두면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 즉, ‘퇴직연금은 회사가 쌓아주고, IRP·연금저축은 내가 세금 깎는 용도로 쓴다’고 구분하면 깔끔하다.


정리하면, 세액공제를 제대로 받으려면 순서가 있다. 먼저 연금저축에 600만 원을 채우고, 남는 여유가 있으면 IRP에 300만 원을 넣는 방식이다. 연금저축은 펀드나 ETF 등으로 수익을 노릴 수 있고, IRP는 예금이나 채권처럼 안정적인 자산에 두면 좋다. 정리하자면, 연금저축은 공격형 절세통장, IRP는 수비형 절세통장. 둘을 합치면 ‘노후 대비 + 세금 절약’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IRP나 연금저축의 장점은 세금 혜택만이 아니다. 장기복리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매달 50만 원씩 30년 동안 넣으면 원금이 1억8천만 원이다. 연평균 5% 수익률을 낸다면, 30년 후엔 3억 이상으로 불어난다. 여기에 세액공제 환급분까지 고려하면 실제 수익률은 훨씬 높다.


물론 투자라고 하면 겁이 난다. 하지만 꼭 주식만 있는 건 아니다. IRP나 퇴직연금은 예금, 채권, 안정형펀드 등 다양한 상품을 섞을 수 있다. 최근엔 ‘디폴트옵션’ 제도도 생겼다. 근로자가 상품을 따로 고르지 않아도, 회사가 지정한 기본 포트폴리오로 자동 운용된다. 시장 상황에 맞춰 주식 비중을 조정해주기도 한다. 초보자에게는 이보다 편한 제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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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운용해야?


노후 준비를 잘하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적절히 섞는다. 예를 들어 회사에 다닌다면 퇴직연금으로 기본 틀을 만들고, 여유자금은 IRP나 연금저축에 추가로 넣는다. 세금 혜택을 꽉 채우면서, 노후 자산을 분산 투자하는 방식이다. 회사가 DB형이라면 개인은 IRP에서 적극적으로 운용해 균형을 맞춘다.


퇴직 후엔 이 계좌들이 내 ‘제2의 월급통장’이 된다. 국민연금이 정부가 주는 월급이라면, 퇴직연금과 IRP는 내가 만든 월급이다. 매달 돈이 들어오니까 생활 리듬이 깨지지 않는다. 은퇴 후에도 ‘월급날’을 유지하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후 준비를 미룬다. “아직 젊은데 뭐” “돈이 남아야 하지” 하지만 노후 자금은 한 번에 만드는 게 아니라, 오래 걸려서 만들어진다. 지금의 작은 금액이 나중의 큰 차이를 만든다. 퇴직연금은 회사가 자동으로 해주지만, IRP와 연금저축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회사가 퇴직금을 대신 넣어주는 동안, 나는 내 노후 월급을 준비하는 셈이다.


결국 이 세 가지는 모두 같은 목적을 향한다.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20년 뒤, 퇴직금 봉투 대신 스마트폰 알림이 뜬다. “이번 달 퇴직연금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때의 나를 위해, 오늘의 커피 한 잔 값을 IRP에 넣어보는 건 어떨까. 돈은 모으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결국 나를 먹여 살린다.




IRP 계좌, 제발 증권사로 옮기시라


혹시 IRP를 추가 납입하고 그냥 은행에 묵혀두는 분이 있다면 제발 증권사로 옮기시라. 절세의 시작이다’ 싶어서 신나게 추가 납입까지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어디에 투자되는지도 모르고 그냥 은행 앱에서 잔액만 확인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내 돈이 고스란히 예금형 상품에 묶여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수익률은 1% 남짓, 사실상 잠자는 돈이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IRP로 ETF 투자하면 진짜 다르다”는 말을 꺼냈다. 반신반의하면서 증권사로 계좌를 옮겼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때부터 미국 S&P500 ETF랑 채권형 ETF에 나눠서 투자하기 시작했다. 한두 달은 조용했지만, 점점 그래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꿈쩍도 안 하던 숫자들이 조금씩 올라갔다.


지금 수익률을 보면 그때 은행에 그냥 두었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같은 돈인데 운용 방법 하나로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세액공제만 신경 쓰다 보면 ‘투자’라는 본질을 놓치기 쉽다. 나처럼 IRP를 만들어놓고 손 놓고 있다면, 오늘 바로 앱을 열어보길 권한다. 돈은 넣는다고 불어나는 게 아니라, 굴려야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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