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와 한국은행이 고환율의 원인을 서학개미에게 돌리는 듯한 메시지를 계속 내놓고 있습니다. 환율이 1400원 후반을 넘나들자 불안감이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곧 초유의 1500원을 넘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개인 투자자들만 겨냥하는 듯한 분위기라 더 큰 반발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해외투자 확대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왜 해외 투자하냐고 물어보니 ‘쿨해서’라고 답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서학개미를 철없는 투기 참가자로 묘사한 겁니다.
현 이재명 정부는 아예 대놓고 주식을 하라고 판을 깔아주고 있습니다. 코스피 1500 시대를 예고하며 주식 투자를 권유하는 정책을 연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해외투자를 하지 말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그럼 국장만 하라고요? 우리 투자자는 바보라서 국장 말고 미장을 하고 있을까요?
국내 기업이 더 노력해서 건실해지고, 계속된 혁신으로 주가를 높여가면 알아서 국장에 투자할 겁니다. 근데 그게 아니니까 당연히 내 피같은 돈을 투입해서 좀더 이득을 얻을만한 시장을 찾는거고, 저같은 개미들도 미국주식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를 환율 상승의 주범으로 몬다고요? 너무나 억울하고 답답할 지경입니다.
좀 황당하긴 한게, 이창용 총재는 자녀 유학비로 20억 원 이상을 쓴 사실이 이미 청문회에서 밝혀졌습니다. 금통위원 중 한 명은 미국 빅테크 주식을 40억 원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니까 저같은 개인 투자자들은 “본인들은 수십억 달러를 쓰고 해외 자산을 쌓아놓고, 왜 우리만 문제 삼느냐”고 하는 겁니다.
통계를 한 번 볼까요?
수치로 확인하면 치솟는 환율이 개인 투자자들 탓만은 아니라는 게 명확합니다.
개인의 해외 주식 순매수는 올해 238억 달러 정도입니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는 같은 기간 300억 달러에 가깝습니다. 기업의 해외 투자 규모도 200억 달러에 육박합니다.
즉, 시장에서 나가는 달러의 3분의 1이 개인 투자자 몫이고, 나머지는 연금·기업 등 제도권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흐름을 무시하고 서학개미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환율을 잡아야 하는 금융당국이 본연의 책임을 그저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것밖에 안되는 겁니다.
환율은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금리 차이, 수출 경쟁력, 외국인 투자 흐름, 글로벌 경기, 지정학 리스크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최근 원·달러 상승은 미국 장기 금리 강세, 중국 경기 둔화, 세계 경제 불안정성, 외국인의 신흥국 이탈 심리 등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여기에 국내 증시 매력이 떨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 약화와 경기 부진이 원화를 약하게 만든 측면도 큽니다.
결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서학개미를 탓하는 게 아닙니다. 환율을 잡고 싶다면 우선 국내 시장을 ‘투자할 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부는 이 부분을 유독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부는 서학개미를 탓할 시간에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먼저 국내 기업의 투자·성장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규제가 많고, 산업정책의 방향이 계속 흔들리면 기업들은 기회를 찾기 어렵습니다. 국내 기업이 성장할 여지가 없으면, 투자자들도 당연히 해외로 눈을 돌립니다.
또 자본시장을 키우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한국 증시는 늘 ‘저평가’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배당은 낮고, 미래 성장성도 불확실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금으로 개인을 압박할 게 아니라, 기업의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투명한 경영 유도 같은 기본적인 신뢰 회복 정책이 먼저입니다.
아울러 국민연금을 단기 환율 방어에 동원하려는 시도는 버려야 합니다. 노후 자금은 외환시장 안정화 기금이 아닙니다. 국민연금이 “원화가 약세이니 들여오라, 강세니 내보내라”는 식으로 움직이면 수익률이 불안해지고, 국민 불신만 커질 뿐입니다.
동시에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산업정책이 필요합니다. 환율은 결국 그 나라의 먹거리와 직결됩니다. 수출이 강하면 환율은 자연스럽게 안정됩니다. 반대로 성장 산업이 부족하고, 내수만 바라보는 경제 구조에서는 원화가 강해지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외환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말폭탄’을 줄여야 합니다. 정책 신뢰는 말 한마디에 흔들립니다. “검토할 수도 있다” “열려 있다” 같은 표현은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듭니다. 정확하고 일관된 메시지가 외환시장 안정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지금처럼 정부와 한국은행이 서학개미를 원인 삼는 방식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 투자자들은 “우리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당신들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고 되묻게 됩니다.
환율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휘청이는 단순한 구조가 아닙니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요인이 더 큽니다. 정부가 제대로 된 처방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들을 탓하는 건 너무 편한 방법입니다.
시장이 원하는 건 책임 전가가 아니라 신뢰 회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그냥 남들처럼 열심히 돈모아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미국 주식도 시작했고, 악착같이 재테크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를 무슨 잠재적 사회악처럼 묘사하는 정부 관계자의 모습이 참 씁쓸하네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